스내커

밤에 쓰는 이력서




밤에 쓰는 이력서 

이렇게 빈 칸을 메운다고
살아온 날들의 빚을 갚을 수 있을까
이름, 주소, 학력, 경력, 병역…
일동 기립!
강등당한 퇴역 군인처럼 빛바랜 이력
연필에 침을 발라 꾹꾹 눌러 쓰듯
한 자 한 자 힘주어 정렬시킨다
삶의 방향을 규정했던 명령어들이
올림 차순으로 불려나온다
차렷, 좌향좌, 우향우, 뒤로 돌아, 뛰어 갓!
헤쳐 모여, 열중 셧,
편히 쉬어!

편히 쉬던 자세를 이 밤에 바꾼다고
살아갈 날들의 빚이 없을 수 없겠지만
이미 길들여진 대로
희망을 여기 적기로 한다
지원 동기, 업무 계획, 성장 배경…
A4용지 석 장에 우격다짐으로 처넣고 나니
왠지 배가 부른 건 무슨 까닭일까
아침이 되면 빠른 등기로 배달될 통통한 압축 파일
단돈 이천팔백칠십 원이면 전 생애가 이동할 것이고
뒤에 남은 나는 주어진 깜냥대로
늘 목이 메고
가난할 것인데


▲ Branford Marsalis & Joey Calderazzo – La Valse Kendall



고해성사 2

빛을 토해내는 어둠이 빛을 삼키는 어둠에게 자리를 내줬습니다
쏘여야 할 세상도 명분도 사라진 늙은 빛
강보에 싸인 어린 그리움에 입 맞추며
어둠의 자궁으로 귀환합니다

심지 없는 사랑의 불씨가 애꿎은 애간장만 태웁니다
채 못 탄 안타까움이 상처가 되고 미움으로 변해도
애써 태연한 척하는 위선이 중증이라
입 닫고 귀 닫고, 당신의 말씀도 닫습니다

영혼의 무기력한 아랫도리를 도발하는 육체와
육체의 끈적거리는 열락을 염탐하는 영혼의
합일만 기다리는
즐거운 노이로제를 앓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 졸시 (문학무크『시에티카』제7호, 2012)


▲ Taize(프랑스 떼제 공동체 노래) – Bleibet hier 


▲ Taize – Tui Amoris Ignem 


▲ Taize – Bless the Lord  


▲ Taize – In God Alone  


▲ Taize – Wait for the Lord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을 거쳐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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