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온몸이 긴장해 손으로 권총을 힘 있게 그러쥐었다. 방아쇠가 당겨졌고, 권총 자루의 매끈한 배가 만져졌다. 그리하여 짤막하고도 요란한 소리와 함께 모든 것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나는 땀과 태양을 떨쳐 버렸다. 나는 한낮의 균형과, 내가 행복을 느끼고 있던 바닷가의 예외적인 침묵을 깨뜨려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나는 그 움직이지 않는 몸뚱이에 다시 네 방을 쏘았다. 총탄은 깊이, 보이지도 않게 들어 박혔다. 그것은 마치,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

알베르 카뮈(사진)의 문제작 ‘이방인’에서 주인공 뫼르소가 살인하는 대목입니다. 해변에서 자신을 뒤따르는 아랍인을 향해 무턱대고 총을 쏘는데요. 재판에 회부된 그가 말하는 살인 동기가 황당합니다. 여름 태양이 너무 눈부셨기 때문에 죽였다고요. 소설은 사건 직전 뫼르소의 감정 상태를 ‘뜨거운 햇볕에 뺨이 타는 듯했고 땀방울들이 눈썹 위에 고이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엄마의 장례식을 치르던 그날과 똑같은 태양이었다. 특히 그날과 똑같이 머리가 아팠고, 이마의 모든 핏대가 한꺼번에 다 피부 밑에서 지끈거렸다’라고 묘사합니다. 작가는 결국 뫼르소란 인물을 통해 ‘부조리의 전형’을 제시하지만 한편으로 인간은 햇빛을 거부하는 원초적 심리를 지니고 있음을 시사하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북반구에서는 태양을 지향하고 남쪽에서는 햇빛을 거부하는 문화가 발전해 왔습니다. 고대 이집트의 해는 ‘주검을 나르는 배’로 인식되었고 그리스 신화에서 헤라클레스의 광기가 발동하는 시각은 한여름 대낮입니다. 뫼르소가 살인을 저지른 알제리도 뜨거운 지중해에 접해 있는 지역이지요. 우리 나라는 햇빛 지향이면서 거부 성향이 남아 있는 완충 문화권이라고 합니다. 눈의 흰 자위에 핏기운이 도는 것을 ‘삼이 든다’ 했는데요. 햇빛을 너무 많이 받은 탓이라 여겨 달빛도 없는 깊은 밤에 캄캄한 단지 속을 들여다보게 해 치료했다는 속설이 전해집니다.

태양열 온도가 가장 높은 달에 자살률이 20~50% 상승했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미국 하버드 대학 연구팀이 4년 동안 20개 국의 자살률과 일조량의 관계를 조사했더니 상식을 뒤집는 이러한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심리는 비 내리고 흐린 날씨에 안정되는 반면 햇빛이 강해질수록 충동적이 된다는 해석이 가능한 건지 모르겠네요. 자살을 ‘자신에 대한 살인’으로 간주한다면 이 리포트가 뫼르소의 ‘햇빛 살인’에 과학적 타당성을 부여할 수도 있겠습니다. 패트리샤 하이스미스(Patricia Highsmith, 1921~1995)의 소설을 영화화, 알랑 드롱과 마리 라포레가 주연한 ‘태양은 가득히’의 살인 역시 햇빛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상상해봅니다.

오늘은 절기상으로 대서(大暑). 염소 뿔이 녹을 정도로 덥다는 날이지요. 게릴라성 소나기가 쏟아지는 가운데 30도가 넘는 불볕 더위가 이어지면서 불쾌지수까지 높습니다. “살인 햇빛 조심하세요!”





▲ 영화 ‘태양은 가득히’ Theme  


▲ Terry Jacks - Seasons In The Sun, 1974  


▲ Gordon Lightfoot - Sundown 


▲ John Denver - Sunshine On My Shoulders  


▲ Bobby Hebb - Sunny, 1966  


▲ Goombay Dance Band - Sun of Jamaica


▲ Temptations - Ain't No Sunshine  


▲ Beatles - Here Comes The Sun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을 거쳐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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