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현 ‘미인’ - 한 번 봤으면 됐지 뭘 자꾸 보고 싶다는 거야? 너무 퇴폐적!
김추자 ‘거짓말이야’ - 높은 분 연설이 끝난 직후 이런 노래를 트는 이유가 뭐야?
한대수 ‘행복의 나라로’ - 그럼 지금은 불행하다는 거냐? 안 돼!
양희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 허무주의를 조장하는 거냐?
양희은 ‘늙은 군인의 노래’ - 늙은 군인이라니. 이거, 군인들 사기 떨어뜨리는 노래잖아.
이장희 ‘그건 너’ - 늦은 밤까지 잠 못 드는 이유가 뭐야. 딴 생각 말아.
배호 ‘영시의 이별’ - 통금 시간인 자정에 이별을 하는 게 말이 되니?
송창식 ‘왜 불러’ - 왜 부르긴 왜 불러? 장발 단속하려고 불렀지. 지금 반항하냐?
조영남 ‘불 꺼진 창’ - 쓸 데 없는 상상을 하게 만든다. 노!
이장희 ‘한 잔의 추억’ - 술 마시고 또 뭔 짓을 하려고?
전인권 ‘사노라면’ - 내일은 해가 뜬다니? 그럼 오늘은 안 떴다는 거냐? 말이 좀 되는 소리를 해라.

지난 시절 금지곡으로 묶였던 노래들의 ‘금지 사유’입니다. 그야말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데요. 엊그제, 1998년 폐지된 한국공연윤리위원회(공륜)의 대중가요 심의 자료가 발견돼 화제입니다. 1976년 5월부터 1998년 6월까지의 자료가 ‘가나다’ 순으로 정리돼 국립중앙도서관 지하 5층 서고에서 잠자고 있었다지요. 공륜은 이전의 한국문화예술윤리위원회(예륜)의 심의 자료를 이관받은 뒤 주요 노래에 대한 소급 재심 작업을 벌였다고 합니다. 그간 대중음악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음반은 물론 가사, 악보 심의 자료가 모두 망실된 것으로 알려져 왔다지요.

자료에 의하면 정태춘의 ‘시인의 마을’ 가사 중 ‘맑은 한 줄기 산들바람’은 원래 ‘더운 열기의 세찬 바람’이었고 ‘숨가쁜 자연의 생명의 소리’는 ‘숨가쁜 벗들의 말발굽 소리’였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1978년 공륜의 두 차례 심의와 수정 지시 후 내용이 바뀐 것이지요. 당시 음반 회사는 ‘지적받은 사항들을 위와 같이 개사하였으니 선처를 바란다’는 의견을 첨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972년 예륜에 제출된 김민기 ‘아침 이슬’의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등의 가사에는 밑줄이 그어져 있다고 합니다. 1차 심의란에는 이 같은 가사가 문제가 돼 ‘개작’이라는 수정 지시가 있었는데요. 볼펜으로 쓴 ‘개작’ 판정 위에 굵은 사인펜 글씨로 ‘가(可·통과)’라고 고쳐져 있다지요. 서태지와 아이들의 4집 ‘컴백 홈’에 수록된 ‘시대 유감’은 ‘정직한 사람들의 시대는 갔어’ ‘모두를 뒤집어 새로운 세상이 오길 바라네’ 등의 가사가 문제가 돼 공륜으로부터 개작 지시를 받았다고 하는군요.

1933년 일제에 의해 ‘치안 방해’로 금지 목록 제일 위에 오른 ‘아리랑’ 이후 왜색, 창법 저조, 비탄조, 가사 무기력, 현실 도피, 허무감 조장, 현실불만 의식 조장, 선정적, 냉소적, 치졸, 야유조, 주체성 없음, 너무 우울, 품위 없음, 반항적, 비참, 잔인 등 갖가지 이유로 ‘입이 묶였던’ 금지곡들은 ‘불온’이라는 낙인에도 시대를 이끌었고 지금까지 살아남았습니다. ‘모든 살아 있는 문화는 본질적으로 불온하다. 두 말 할 것도 없이 꿈을, 불가능을 추구하기 때문이다’라는 시인 김수영의 말이 생각납니다.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는 ‘이 같은 공륜의 악보심의 내용은 음악이 정치의 희생양이었다는 명백한 자료이며 록과 포크 양대 부문에서 청년들의 건강한 표현 욕구를 억누른 대중 음악계의 중세 암흑기가 있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미자는 가수 중 가장 많은 27곡의 금지 판정을 받은 최대 피해자인데요. 1968년 공식적으로 ‘금’ 딱지가 붙은 ‘동백 아가씨’는 당시 ‘어떤 분’이 금지곡인지 모르고 술자리에서 자주 불렀다고 하네요. ㅋㅋ. 인터넷에는 한때 다음과 같은 ‘코믹판 금지곡 리스트’가 올라와 누리꾼들을 한바탕 웃긴 적이 있습니다.

2PM ‘10점 만점에 10점’ - ‘입술은 맛있다’가 에이즈 감염의 위험을 초래할 수 있음.
이현지 ‘키스 미’ - 키스를 강제로 요구하는 제목이 문제.
보아 ‘Girls on Top’ - 여자가 위에서 무엇을 하느냐? 건전하지 못한 상상력을 심어줌.
이효리 ‘유고걸’ - ‘동전의 앞면이 나올지 뒷면이 나올지 고민하지 마’라는 가사가 도박을 떠
올림.
백지영 ‘사랑 안 해’ - 사랑을 하지 않으면 저출산으로 인해 인구 감소를 초래함.
빅뱅 ‘모두 다 소리쳐’ - 고성방가를 유도함.
빅뱅 ‘천국’ - 청소년들로 하여금 천국이 어떤지 궁금증을 자아내 자살을 조장.
손담비 ‘미쳤어’ - 멀쩡한 사람을 괜히 미친 놈 취급함.
원더걸스 ‘노바디’ - 몸이 없다는 괴기스러움 유발.
슈퍼주니어 ‘미라클’ - ‘널 품에 안고 날아’라는 가사가 납치를 유발할 수 있음.
원더걸스 ‘So Hot’ - 지구 온난화를 부추긴다.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을 거쳐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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