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휴전협정 조인, 피카소 타계, 말론 브란도의 오스카상 거부, 워터게이트 청문회 등의 굵직한 사건이 이어졌던 1973년. 영국 밴드인 핑크 플로이드가 자신들 음악의 결정판인 ‘달의 어두운 저편(Dark Side Of The Moon)’을 공개하면서 프로그래시브 록의 최고봉에 오릅니다. 발매되자마자 전 세계 지성인들을 매료시킨 이 앨범은 판매량을 집계하는 ‘빌보드’ 정상은 물론 73년부터 88년까지 무려 741주간 차트에 머무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웁니다. 롤링스톤이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앨범’ 2위라는 영예도 얻게 되지요.

“햇볕 아래 누워 있는 것이 지겨워 집에 틀어박혀 내리는 비를 바라보네. 당신은 젊고 인생은 길어. 그리고 오늘은 흘려보낼 시간이 있어. 그러다보면 어느 날 알게 되지. 10년이 훌쩍 지나버렸다는 걸. 아무도 당신에게 언제 달려야 한다는 걸 말해주지 않았지. 당신은 출발 신호를 놓친 거야….”- ‘Time’ 부분

소외감과 스트레스, 조울증 등 현대인의 어두운 측면을 소재로 자본주의 병폐를 통렬하게 고발한 이 앨범은 가사와 사운드, 효과음 모두 진보적이라는 평을 듣습니다. 심장의 고동, 남자의 비열한 웃음과 교차하는 비명, 무엇엔가에 쫓기는 듯한 발자국 소리가 예사롭지 않은데요. 멤버 전원이 함께 만들었다는 ‘Time’은 요란한 시계 소리를 동원해 물밀듯 엄습해오는 인간성 상실을 표현했고요. ‘Money’는 금전등록기 소리를 이용, 황금 만능주의에 대한 혐오감과 중산층의 고뇌를 토로합니다. ‘창공의 위대한 쇼(The Great Gig In The Sky)’는 나레이션과 함께 Claire Torry라는 흑인여성 성악가의 허밍으로만 이루어진 곡으로 죽음의 공포에 대한 성찰이 돋보입니다.

앨범 디자인도 특이합니다. 보통 빨주노초파남보로 표현되는 빛의 스펙트럼 중 남색이 빠져 있는데요. 눈에 쉽게 띄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놓치기 십상입니다. 담당 디자이너는 보라색과 거의 비슷해서 생략했다고 말하지만 ‘과학 이전에 예술’이라는 그들의 고집스런 예술관이 반영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1967년의 첫 앨범 ‘The Piper At The Gates Of Dawn’부터 94년 ‘The Division Bell’까지 모두 14장의 정규 앨범을 남긴 핑크 플로이드. 전 세계적으로 2억 장 이상의 판매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지금도 여전히 팔리고 있는 스테디 셀러들입니다. 이는 기타 피드백과 오르간 연주가 빚어내는 그들 특유의 환각적 사운드가 세대를 뛰어넘어 감동을 주고 있다는 증거고요. 하나의 앨범에 아방가르드적인 아름다운 포크송, 하드 록, 아기자기한 소품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장르를 녹여낸 디스코그래피의 힘이기도 합니다. 음향학적으로는 비틀스 이후 인공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모든 소리에 도전했고 공연에서는 여러 가지 상징과 현란한 조명을 사용하는 초대형 비주얼 콘서트를 개척했다는 점에서 혁신적입니다. 록 뮤지션들의 로망으로 불리는 그들의 앨범 중 가장 인기 있고 영향력이 큰 작품들을 골라봤습니다.

‘Wish You Were Here’(1975). 그룹 리더인 로저 워터스가 밴드의 영혼을 지배했던 초창기 멤버 시드 배럿(약물 복용으로 인한 정신 착란이 문제가 돼 탈퇴)에게 바친 헌정 앨범입니다. 총 9부, 26분7초의 대작인 ‘Shine On You Crazy Diamond’는 릭 라이트의 신시사이저와 데이비드 길모어의 기타가 서로 주거니받거니 손에 땀을 쥐게 만들며 ‘광기의 인생’을 걸었던 옛 친구를 추억하는데요. 니힐리즘의 극치라는 평을 듣습니다. 옷에 불이 붙은 남자가 악수하는 재킷 사진이 충격적이지요. 배경은 미국 유니버설 스튜디오이고 스턴트 맨들을 모델로 썼다고 하네요.


‘Animals’(1977).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 농장’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당시 영국 사회를 향해 거침없는 독설을 날리고 있습니다. 탐욕스럽게 부를 축척하는 자본가와 힘으로 세상을 맘대로 휘젓고 다니는 권력자, 그들에게 이용당하는 순진한 대중을 개, 돼지, 양으로 비유해 노래한 컨셉트 앨범입니다.

그리고 ‘The Wall’(1979)이 있습니다. 15주 동안 빌보드 앨범차트 정상을 차지했던 명반. 대중 음악 사상 처음 교육의 역기능을 거론하는 등 현대 사회가 감추고 싶어하는 치부를 거칠면서도 단도직입적으로 여론화했습니다. ‘Dark Side Of The Moon’이 사운드의 결정판이라면 이 앨범은 의식의 완결편이라고 할 수 있지요. 빅 히트곡 ‘Another Brick In The Wall’에서 코러스를 맡았던 23명의 아이들이 세월이 한참 흐른 2004년에야 자신들의 목소리에 대한 로열티를 요구했다는 후일담이 있습니다. 달의 밝은 면보다는 어두운 저편을 바라보았던 핑크 플로이드가 마침내 발견한 그 어둠의 근원…. 그것은 바로 ‘벽’이었네요.

“교육은 필요 없어요. 꼭두각시 교육은 싫어요. 선생님, 우리를 그냥 내버려둬요.” - ‘Another Brick In The Wall’ 부분




 ▲ Time




 ▲ Great Gig In The Sky




 ▲ Shine On You Crazy Diamond




 ▲ Sorrow 




 ▲ Pigs




 ▲ Atom Heart Mother




 ▲ Another Brick In The Wall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을 거쳐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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