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액자에서 탈출한 ‘전람회의 그림’


반젤리스는 대중적인 단선율 위주의 사운드로 인기를 얻었고 릭 웨이크먼은 예술적이면서 웅장한 스케일을 고집했던 건반 주자입니다. 반면 키스 에머슨은 키보드를 멜로디 악기가 아닌 리듬 파트의 타악기로 이해하고자 했던 독창적 발상의 소유자입니다. 공격적인 즉흥 연주와 공연 도중 피아노를 칼로 찌르는 등의 격렬한 행위 예술로 명성이 자자했지요. 그가 킹 크림슨 출신의 그랙 레이크, 아토믹 루스터에 있었던 칼 파머와 함께 결성한 밴드가 바로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EL&P)입니다.

EL&P는 통째로 클래식을 끌어들이는 웅대한 실험을 감행했습니다. 다른 프로그래시브 록 밴드가 편곡, 협연을 통해 부분적으로 고전의 요소를 도입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단순한 물리적 결합이 아니라 화학적 재탄생을 의미하는 게지요. 1972년 발표했던 ‘전람회의 그림(Pictures At An Exhibition, 더블 재킷. 아래 사진은 두 장을 펼친 안쪽 면)’이 대표적 앨범입니다. 러시아 음악가 무소르그스키의 작품을 완전히 록으로 둔갑시킨 이 걸작은 영미 팝 차트 톱10에 진입하는 성공을 거두면서 프로그래시브 록의 시장성을 확립하는 데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키스 에머슨의 증폭된 건반 음은 원곡의 현악기가 묘사한 섬세하면서도 서정적인 음색을 산산이 찢어놓았고요. 칼 팔머의 드럼은 기존의 우아하면서도 절도 있는 리듬을 잘게 분해한 후 원시적 타음으로 대체시켰습니다. 그랙 레이크의 보컬은 ‘기계 사운드’를 ‘육체의 소리’로 변환했지요. 하지만 그들은 오리지널의 웅장함과 묘사의 효과만큼은 고스란히 보존해 놓았는데요. 고전 음악이 추구하는 세계와 그 사운드의 유혹에 함몰됐던 일부 다른 그룹과는 달리 록의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클래식 거장에 대한 예의를 지켰다고 할 수 있겠네요.

‘Tarkus’와 ‘Trilogy’, ‘Brain Salad Surgery’도 대단한 앨범입니다. 특히 후자에 수록된 3부작 ‘Karn Evil’은 세 명이 꿈꾸었던 음악적 야망의 핵심이 담긴 곡이지요. 한 세대가 흐른 지금 들어도 짜릿한 전율이 느껴집니다. 초현실적인 가사와 극단적 기교의 연주로 자신들만의 ‘섬’에 도달하고자 했던 EL&P. 비록 그들의 유토피아가 실현 불가능이라는 판정(?)을 받긴 했지만 그 수준에 도달한 밴드는 이전과 이후를 통틀어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 Pictures At An Exhibition, Part 1
– Promenade/The gnome/Promenade reprise/The sage (London, 1970)


 ▲ From The Beginning


 ▲ Lucky Man


 ▲ C’est La Vie


 ▲ Trilogy


 ▲ Karn Evil 9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을 거쳐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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