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김경호

바람은
강을 거슬러 올라
나무들의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고
눈을 감으면
언 땅에서 풀려나는
시냇물 소리

개나리꽃은 피어서
설레는 마을을 덮고
낯익은 들판마다
천의 젖니를 반짝이며
돌아오는 강물처럼
저 결 고운 사구(砂丘)를
건너오시는 그대

그대 걸음, 걸음마다
꽃씨들은 눈부신 껍질을 벗는데
하얀 발목 빛내면서
잠든 아가의 숨소리처럼
내게 다가오는 이
그대, 누구신가

- 시집「봄날」(두엄, 2012) 중에서

 

글쎄, 목련꽃 한 송이가

김은령

수타사 요사채에
우중충한 사람 여럿 모여있었는데요
저마다 수만 가지 생각들을 품고
수만 가지 알력을 겨루며 앉아있었는데요
마당 가 한 그루 목련 나무에서
봉긋한 꽃송이 하나가
공양주 보살 손에 살랑살랑 따라와서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맑은 차 주전자 속으로 살폿 들어갔다 이겁니다
어이쿠, 저 여린 꽃잎 다 짓무르겠다
말할 틈도 주지 않고
그 꽃송이 스르르 저를 다 열어젖히고는
달짝지근 젖 내음 뿜어내는데
아 글쎄, 그 순간 방안 가득 뻗쳐있던
그 수만 가지 알력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
꼭 목련꽃 피는 소리로 들려
사람들 뱃속에 찰랑찰랑 꽃 피고, 마당 가득 꽃 피고
물결, 꽃물결 골목 밖으로 찰랑찰랑 넘쳐서는
세상도 덩달아 봄이 됩디다
피어남도 좋지만 순절도 참 괜찮다 싶데요
- 시집「차경」(황금알, 2012) 중에서


봄, 봄…. 참 좋습니다. 동사 ‘본다’가 어원이라는 학설이 있는데요. 보기에 좋은, 볼 것 많은 계절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어디선가 ‘잠든 아가의 숨소리’가 들리고 ‘달짝지근한 젖 내음’이 나는 듯도 싶습니다. 무릇 시심(詩心)을 탐하는 자에게 봄밤은 위험하다고들 하지만요. 때가 되면 싹을 틔우고 꽃잎을 여는 우주의 언어를 이해하고 노래하려면 명백히 도발적인 시적 감성일지언정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어도 좋겠고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 언덕 위에서’ 동무 생각을 하는 것도 괜찮겠지요. 이 찬란한 봄을 노래한 두 편의 시 위에 그리스 태생의 키보디스트이자 영화음악 작곡가인  반젤리스(Vangelis)의 음악을 살포시 얹어봅니다. 




 ▲ To The Unknown Man


 ▲ La Petite Fille De La Mer


 ▲ Hymn


 ▲ Chariots Of Fire


 ▲ Reve


 ▲ 12 O'clock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을 거쳐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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