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였던가요. 마크 로마넥 감독의 영화 ‘네버 렛 미 고’를 보고 한동안 우울했던 적이 있습니다. 원작이 일본 태생인 영국 작가의 동명 소설이라지요. 장기 기증을 목적으로 탄생한 복제 인간들의 슬픈 삶과 사랑을 그렸는데요.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운명의 스케줄대로 움직이게끔 교육받은 세 젊은이에게 한없는 연민을 느꼈습니다. 동시에 과학 기술이 지금의 속도로 발전한다면 언젠가는 그런 사회가 올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인간’이 사라진 인류의 미래, 소름 끼치는 일입니다. 그것은 조지 오웰의 ‘1984’나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 묘사된 디스토피아의 세계를 무작정 외면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킹 크림슨은 음악으로 미래의 낙관주의를 경고했습니다. 1969년의 기념비적인 데뷔 앨범 ‘크림슨 왕의 궁전에서(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의 오프닝 곡 ‘21세기의 광인(21st Century Schizoid Man)’은 간결하고 함축적인 노랫말로 디스토피아를 예견하고 있지요. 작사자인 그룹 멤버 피터 신필드는 ‘시인들은 굶주리고 아이들은 피 흘리는’ 기계와 물질의 세상이 올 것이라고 했는데요. 오웰이나 헉슬리가 내다본 눈부신 통찰력의 록 버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앨범의 최대 히트곡인 ‘묘비명(Epitaph)’의 가사 역시 지극히 묵시적입니다.

“예언자의 말이 새겨진 벽의 / 이음새들이 갈라지고 있어요(파멸의 징후) / (핵무기 같은) 죽음의 도구들 위에 / 햇빛이 번쩍입니다 / 모든 사람이 악몽과 (헛된) 꿈으로 / 갈가리 찢길 때는(종말 이후엔) / 아무도 월계관을 씌워주지 못해요 / 적막이 비명을 삼켜버리고 나면 // 내 묘비엔 (인간의 유산인) 혼란이란 말이 새겨질 거예요 (…) // 운명의 (견고한) 철문들 사이에 / 시간의 씨앗을 뿌리고(운명적 시간의 원인을 제공하고) / 물을 주어 길렀습니다 / 식자와 명사의 하는 짓들이 그렇죠 / 지식은 죽음을 불러오는 친구 / 아무도 규칙을 정하지 않으면 / 내가 아는 인간의 운명은 / (탐욕에 눈먼) 바보들의 손아귀에 있어요.”
킹 크림슨은 사운드 면에서도 독보적입니다. 프로콜 하럼과 무디 블루스가 실험했던 프로그래시브 록을 완성한 최초의 밴드로서 서사적인 음악 구조와 다양한 사운드 효과를 자랑합니다. 논스톱 형식의 트랙에서 연출되는 몽환적 드라마가 혼돈 속의 질서를 추구하지요. 그들의 걸출한 음악성은 Latte E Miele나 New Trolls 같은 이탈리아 아트록 그룹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는데요. 타협을 불허하는 극단적인 작가주의 때문에 동시대의 무디 블루스나 핑크 플로이드가 획득했던 광범위한 대중적 호응을 이끌어내지는 못했습니다.

‘21st Century…’는 기계 처리된 보컬과 강렬한 기타가 혼란스럽게 연주되는데요. 리더인 로버트 프립의 광기와 환각의 미학이 극렬하게 표출된 노래입니다. 차분한 플륫 연주로 시작되는 ‘I Talk To The Wind’는 낭만적인 노랫말과 어우러진 멜로디가 편안하고요. 록 음악의 긴장감과 포크 뮤직의 소박함, 클래식의 웅장함이 집대성된 ‘묘비명’은 장대한 멜로트론 음향과 그 사이에서 공명을 일으키는 기타 연주가 듣는 이를 황홀경으로 이끕니다. 과거 한국의 팝송 시대를 불 밝혔던 다운타운의 음악 다방을 강타, 당시 DJ들을 짜증나게 만들었던 8분52초짜리 긴 신청곡이기도 했지요.

















고딕 양식의 초현실주의적인 ‘크림슨 왕…’의 커버 아트(사진)도 이후의 밴드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공포에 질린 듯한 얼굴을 풀로 담은 이 장면은 단 한 번만 봐도 잊을 수 없는 이미지의 잔상을 남깁니다. 어떤 평론가는 ‘공포’를 표현한 것이 아니라 편집증적 피해망상과 정신 분열을 포착한 것이라고 했는데요. 사실 ‘망상과 분열’은 킹 크림슨 음악의 저변에 깔린 일관된 주제면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일그러진 초상일지도 모릅니다.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을 거쳐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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