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궁핍한 시대 ‘신이 선택한’ 영웅들


러시아에서 시인은 ‘십자가를 지도록 신이 선택한 사람’으로 이해됩니다. 블라디미르 비쇼츠키(Vladimir Vysotsky, 1938~1980)는 이 사명에 순결하게 복무했던 시인 중 한 명입니다. 구소련 체제 속 생필품을 사기 위해 길게 줄을 선 국민의 궁핍을 생생하게 그렸을 뿐만 아니라 상류 계급의 특권을 낱낱이 까발렸습니다. 체제 비판으로 비쳐질 수밖에 없었던 시들은 애초부터 출판이 불가능했겠죠. 자신의 메시지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데 목말라했던 그는 과감히 기타를 집어 들었습니다.



민중의 삶과 고통을 노래한 테이프가 비공식 루트를 통해 대학가, 공장, 클럽 등지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술과 섹스, 감옥 생활, 거리의 패싸움 등 당시 금기로 했던 내용까지 적나라하게 묘사했는데요. 간단한 포크 리듬에 시를 낭송하는 형태의 곡들이지만 듣는 이로 하여금 우울한 정서와 간결한 파워를 동시에 느끼게 합니다. 단순히 저항의 이념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파고들어 진실을 호소하는 파괴력이 전율을 일으킬 정도지요.

“카랑카랑한 쇳소리를 내는 목소리, 피를 토하는 듯한 절규가 예리한 칼날이 되어 폐부를 찌를 때 고깃덩이에 갇혀 있던 우리 영혼은 파열음을 일으키며 해방된다. 그의 목소리는 짓눌려 신음하는 영혼의 뇌관을 격발시키는 강렬함을 지니고 있다. 칼바람처럼 매섭게 귓전을 때리는 강렬한 목소리는 분열된 의식을 완벽하게 해체시키고 더 이상 허위의식이 들어설 자리를 용납하지 않는다.”(『월드 뮤직』심영보 지음, 해토, 2005)

러시아 어느 광산 회사에 시찰 나온 공산당 간부가 광부들에게 백지를 내밀고 ‘당신들이 존경하는 시인을 쓰시오’라고 했답니다. 그러자 대부분의 광부들은 블라디미르 비쇼츠키를 적었다는데요. 놀란 간부가 ‘아니 이 사람은 가수 아닌가’ 하고 묻자 ‘아니오, 그야말로 우리 시대의 진정한 시인이오’라는 답이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작 비쇼츠키는 자신을 번듯한 시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가수라고 여기지도 않았습니다. ‘얼굴 없는 스타’로 사랑을 받기 시작해 ‘전설’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공식적인 시집 한 권, 음반 한 장 내놓지 않았으니까요. 그럼에도 대중의 기억엔 자유를 갈망했던 위대한 음유 시인으로 각인돼 있습니다. 한국인에게는 영화 ‘백야’에서 발레리노 미하일 바리시니코프가 춤출 때 나오는 노래 ‘야생마’로 이름이 알려졌지요.


▲ ‘우리 영혼을 구하소서’


 ▲ ‘야생마’


▲ ‘늑대 사냥’

비쇼츠키가 러시아 음유 시가(詩歌) 대중화의 주역이라면 불라트 오쿠자바(Bulat Okudshawa, 1924~1997)는 선구자라 할 수 있습니다. 유년 시절부터 경험한 소비에트의 정치적 박해는 그에게 독재에 대한 비판과 함께 강한 저항의식을 심어 주었는데요. 소박한 기타 연주와 지적인 음성으로 대변되는 외롭고 멜랑콜리한 음악은 서민들의 고단한 삶을 어루만지며 시공을 초월한 감동을 남깁니다. ‘노래시’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 러시아 문학과 음악에 활력을 불어 넣었지요.

여러 권의 시집을 남겼으며 소설 쓰기에도 몰두했던 그는 특정한 이념이나 영웅주의를 아주 싫어했다는데요. 대부분의 노래는 모스크바의 거리, 전쟁 그리고 사랑이라는 테마에 집중돼 있습니다.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며
그는 조용한 삶을 원하지 않고
계속 외쳤어. 발사, 발사!
그가 종이 병정이라는 걸 잊고서.

불 속으로? 좋다. 가자! 가야지?
어느 날 그는 앞으로 행군해 갔지.
거기서 그는 허망하게 죽어 버렸어
종이 병정이었기에.

– 불라트 오쿠자바 ‘종이 병정’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을 거쳐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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