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갑산으로 가신다고 떠난 형님은 석 달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폭격은 날로 심해지고, 우리는 피난길을 떠나야 했다. 형수님은 친정으로, 나는 아버님이 계신 둘째 형님 댁으로 가고 있었다. 빨갛게 익어가는 사과밭을 지나면 갈림길이 나온다. 우리는 거기서 헤어져야 하는 것이다. 나는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정자나무가 나오고 그 정자나무만 지나면 내 모습이 보이지 않으리라. 뒤통수에 자꾸만 마음이 쓰였다.
내가 막 정자나무 뒤로 사라지려는 순간 멀리서 형수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되련님, 몸 조심하세요… 아버님 말씀도 잘 듣구요….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저녁 해를 등지고 계시리라. 목소리가 떨리는 것 같았다. 울고 계실까.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손광성 「돌절구」중에서)

수필가 손광성이 6·25때 셋째 형수와 헤어지던 상황을 그린 작품의 일부입니다. 이별의 슬픔을 ‘슬프다’는 표현 하나 없이 어떻게 이토록 ‘슬프게’ 묘사할 수 있을까요. 감정의 절제와 생략에 힘입은 ‘슬픔의 미학’이 빛납니다. 뒤 돌아보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던 이별…. 그 형수는 종전 후에도 만나지 못했다지요. 아쉬움과 탄식이 증폭될수록 오래 기억될 애잔한 추억. 해가 아무리 바뀌어도 지울 수 없는….

2011년. 개인적으로 잊기 힘든 한 해로 기록될 듯 싶습니다. 시인 랭보가 ‘지옥에서 보낸 한 철’에서 ‘사나운 짐승처럼 음험하게 날뛰었던’ 것같이 가슴의 철창 안에 갇혀 있던 한 쪽 자아가 꽤나 아우성을 쳤지요. 숱한 생채기가 나고 딱지가 앉으면 스스로 이를 뜯어내고…. 결국 제풀에 지쳐 조용해졌지만요. 삶의 허기와 갈증, 이성과 감성의 갈등이 연소되지 못한 채 가슴 속 둔중한 낙진으로 남아 있습니다. ‘모든 고통은 극복의 기쁨이 기다리고 있는 미래로 가는 과정이며 그것을 깨달아야 궁극적 자기 사랑이 시작되고 타인에 대한 사랑도 싹튼다’는 진리를 잊고 있었던 것이 아쉽네요.  

1월1일은 가톨릭에서 ‘성모 마리아 대축일’로 지정한 날. 신자가 아닌 사람도 좋아하는 가곡 ‘아베 마리아(Ave Maria)’로 새해 아침을 엽니다. ‘아베’는 ‘안녕하세요’라는 뜻이고요. 천사 가브리엘이 예수 탄생 예고를 위해 나자렛의 마리아 집에 들어가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기뻐하소서(루가복음)’라고 했던 라틴어 인사말에 곡을 붙인 것이지요. 일반적으로 구노와 슈베르트가 유명하지만요. ‘아베 마리아’만 연호하는 카치니도 훌륭합니다. 그 중 라트비아 태생의 소프라노 이네사 갈란테(사진)가 부르는 노래는 압권이지요. “복 많이 받으세요.”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을 거쳐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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