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가수 나윤선. 잘 웃습니다. 무구한 소녀처럼. 꾸밈이 없습니다. 살캉살캉 상큼한 어린 유채잎 같은 느낌이랄까. 청명하면서 정갈하지요. 그러면서도 절실한 감정이 단단하게 응축된 노래를 부릅니다. 그 맛에 유럽인들이 반했습니다. 콧대 높기로 소문난 잡지 ‘재즈맨’이 ‘별점 다섯 개가 부족하다’라는 극찬을 했고요. 상복도 많네요. 프랑스 문화예술 공로훈장인 슈발리에장을 받았으며 올해 프랑스, 독일의 저명한 재즈 아티스트상을 연거푸 수상했습니다. 

작년 30개 나라에 소개된 7집 앨범 ‘Same Girl’은 발매 즉시 프랑스 최고의 음반판매 차트에서 재즈 부문 1위를 차지했습니다. 더불어 동양인 최초로 프랑스 전체 재즈 차트 4주 연속 톱을 기록하는 진기록을 세웠지요. 한 언론은 '재즈라는 하나의 장르나 문화적 카테고리 안에 가두기 어려울 만큼 폭과 깊이가 넓다'는 평을 내놨습니다. 기립 박수에 인색한 독일인들을 벌떡 일어서게 만드는 몇 안 되는 가수입니다.











본인의 입을 빌리자면 특별한 끼도 없고 춤도 못 추며 술도 못 마신다고 합니다. 평소의 행동도 느림보라는데요. 집안에 틀어박혀 있는 걸 좋아해 노래방 같은 곳도 잘 안 가고, 그렇다고 해서 텔레비전을 즐겨 보는 것도 아니어서 최신 유행이 뭔지도 모른답니다. 있는 듯 없는 듯했던 학창 시절, 회사 생활을 거쳤다지요. 지하철1호선 등 뮤지컬에 출연했으나 스스로 자질이 없다고 판단한 끝에 1995년 27세라는 늦은 나이에 프랑스로 날아가 재즈의 망망대해에 뛰어듭니다.

한 번에 네 개의 음악학교를 다니는 등 출발은 당찼으나 시련이 없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자국민 우선'에 밀려 출연 거절을 당하기도 하고 뛰어난 뮤지션을 보며 좌절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지요. “지금도 그렇지만 실력이 미흡하다는 걸 느낄 때가 많았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어느 지점 이상까지는 발전할 수 없다는, 저의 한계를 분명히 알게 된 거죠. 제가 엘라 핏제럴드나 빌리 할리데이, 사라 본이 될 수는 없겠지요. 그런데 이를 부정적으로 얘기하면 정말 한계인 거고, 좋게 생각하면 행복한 겁니다. 지금도 ‘우연히 시작했으니 하는 데까지 열심히 하자’는 식의 긍정적 생각을 합니다.”









파워 있는 재즈 디바가 되는 데 걸림돌이라고 생각했던 맑고 높은 목소리를 자신만의 장점이자 ‘색깔’로 바꿔버린 나윤선. 미국 다음으로 큰 재즈 시장인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 전체의 유명 인사가 되어 20여개 국의 50여 도시를 순회 공연했는데요. 절제미의 극치를 보여주는 보컬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내공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수직으로 떨어지다가 일순간 솟구치는 고음과 저음의 교차는 화선지에 번지는 먹빛처럼 자연스럽고요. 목구멍을 울리거나 긁는 특유의 소리는 강약, 속도 조절이 뛰어난 기타 반주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리듬감을 극대화합니다. 코와 혀를 동시에 사용해 리드미컬하게 넘어가는 스캣도 일품이지요.

그런 그도 혼자 있을 땐 외로움을 심하게 탄답니다. ‘심심하고 쓸쓸하고. 날씨가 흐린 날이면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하는 엉뚱한 생각도 든다네요. 개인적으로는 슬픈 노래를 좋아해 공연 중에도 속으로 잘 운다고 합니다. 음유시인 레오 페레의 곡인 ‘Avec le Temps’를 부를 때는 임계점을 향해 치닫는 슬픔을 간곡히 달래며 삭이는 모습이 역력합니다.

허공을 당기다가 밀쳐내고 쥐는가 하면 곧 놓아주는 '정교하게 연출된 듯한' 손 동작, 아프리카의 칼림바 등 상상력을 확장시키는 악기 사용,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독창적인 곡의 해석 속에 ‘온유한 카리스마’가 숨어 있습니다.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을 거쳐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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