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민은 영혼의 항독소(抗毒素)이며 귀 먹은 사람도 들을 수 있고 눈 먼 사람도 볼 수 있는 언어라고 합니다. 일례로 가진 자가 남에게 베푼다고 해서 가난해지는 일은 없을 뿐더러 사회적 약자와 소통하는 관계 속에서 그간 체험하지 못했던 영적 건강을 얻는 결과를 가져 옵니다. 영국의 철학자 러셀은 자서전에서 ‘단순하지만 누를 길 없는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해 왔다.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이 그것이다’라고 밝혔습니다. 이 말은 노암 촘스키의 미국 MIT 연구실에도 적혀 있다지요.

프랑스 화가 도미에(Daumier) 역시 타인에 대한 연민이 깊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1860년대 가난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노동자, 소외된 여성들에게 단순한 동정을 뛰어 넘는 존경심까지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들 계층이 당시의 풍진 세상을 떠받치고 있다는 생각에서였는데요. 때문에 예술적 직관, 사람과 사물에 대한 냉철한 분석에 의하여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는 자본주의 초기 ‘착한’ 예술가들에 유행처럼 번졌던 빈자에 대한 ‘의무적’ 동정과는 근본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특히 철도에서 영감을 많이 얻었습니다. 대표작 ‘삼등 열차’도 그 중 하나이지요. 바구니를 손에 꼭 쥔 노인, 아기에게 젖을 물린 여인, 졸고 있는 어린 아이의 모습에서 지난한 삶의 고단함이 엿보입니다. ‘(예술과 예술가는) 그 시대에 존재해야 한다(Il faut être de son temps)’라는 그의 확고한 신념이 반영된 작품입니다. 이는 19세기 당대의 현실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던 프랑스 리얼리즘 예술의 핵심인 ‘동 시대성 개념’의 산물인데요.

시공을 뛰어넘어 150년이 지난 지금, 한국에서도 ‘삼등 열차’는 달리고 있어 도미에의 정신과 예술철학을 일깨웁니다. 새벽 1시 이후 서울역사 내 노숙인 퇴거 조처를 시행한 지 100일이 넘었으나 여전히 갈 곳 없는 사람들이 근처를 맴돌고 있다지요. 평소 280여 명에서 30여 명 줄었다고는 하나 이는 겨울철마다 약간씩 감소하는 수준이랍니다. 역사 안에서 잠을 못 자게 된 이들은 지하철 통로와 지하 보도를 새 거처로 삼았다고 합니다. 날씨는 점점 추워지고 구호정책은 오늘도 겉돌고 있는데….

국내 유일한 장애인 문예지 ‘○○문학’ 창간 때의 얘기인데요. 당시 문인 3천 명에게 창간호와 취지 공문, 지로 용지를 보냈다고 합니다. 발행인은 이들 중 1천 명만 구독료를 내주면 운영이 가능하다 싶었답니다. 하지만 꿈을 너무 야무지게(?) 꾸었던 탓인지, 시인 한 사람 외에는 아무에게도 연락이 안 왔다고 하네요. 그럼에도 이 잡지는 ‘찬 바람’ 속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아 20년을 버텨냈습니다.
연민은 사랑의 출발점. 불경을 읽는 현인이나 록 음악을 하는 세속인이나 메시지는 한결 같습니다.

“내 인생을 돌이켜 보면 결코 순탄치 않았습니다. 살아오면서 내가 배운 게 하나 있다면 바로 ‘연민’입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행복과 안위를 염려해 주는 마음이지요. 연민이 내게 내적인 힘을 줬습니다. 내 인생의 목적을 정해줬습니다.
(…)
누구를 위한 기도보다는 보다 적극적인 행동이 더 중요합니다. 희망이 희망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옮겨져서 현실이 되도록 봉사해야 합니다. 나는 무한한 타인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달라이라마)




“오늘밤 잠자리에 들기 전 주변을 살피고
문을 잠글 때는 추위와 어둠 속에서 떨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봐요
거기엔 사랑이 충분하지 못하니까요
(…)
세상의 반은 풍요롭게 살면서
나머지 반에게 상처를 주지요
그 나머지 반은 쓰러져 말없이 굶주리고 있어요
이 모두가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지요” (Rare Bird - Sympathy 1,3절)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을 거쳐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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