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내 인생에 이의를 제기하라


“아이고, 이를 어쩌나. 아자씨 점심 자시라고 콩나물 국 끓이고 있는디. 그냥 가시면 안되어유.”

옆집 할머니가 작별 인사를 하는 내 손을 놓지 않고 아쉬워합니다. 마치 아들이라도 떠나보내는 양 어쩔 줄 몰라 하는 얼굴에서 진한 인정이 느껴집니다. 도회에서 쉽게 보기 힘든 모습이지요. 동구밖으로 연결된 꼬부라진 골목을 돌기 직전 뒤를 돌아보니 그때까지 손을 흔들고 있습니다. 날씨 서늘해지면 다시 내려오고, 그땐 꼭 자기 집에서 식사를 하라는 ‘따뜻한 말’이 두고두고 귓전에 맴돌았습니다.

감골에서 두 밤을 보내면서 2년 전 맞닥뜨렸던 꽃뱀은 만날 수 없었습니다. 대신 할머니로부터 ‘사람 꽃뱀’을 조심하라는 주의를 받았는데요. 인근에 사지가 온전하지만 말문 닫히고 귀 먹은 여자가 한 명 사는데 남자 혼자 있는 집만 골라 다니며 유혹한다는 겁니다. 부인이 며칠 간 집을 비운 어느 낙향한 남자에게도 손길을 뻗치려다 미수에 그쳤고 여기 친구 집에도 여러 차례 찾아와 평상에 우두커니 앉아 있다 간다네요.

얼핏 여자의 멀쩡한 허우대가 떠올랐습니다. 언젠가 친구 집 앞을 지나는 모습을 본 적이 있거든요. 정상인 남자를 만나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다는데 그만 버림을 받았다고 합니다. 결국 부모 손에 이끌려 여기까지 왔다는데요. 속으로 ‘많이 외로우면 그럴 수도 있겠지’라는 생각을 하다가 ‘밤에 창문을 한참 두드리니 대꾸를 말아야 물러간다’는 할머니 조언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내가 있는 동안 찾아오지는 않았지만…. ㅎㅎ

배 고프면 밥 한 술 뜨고 졸리면 자고, 멍청하게 앉아 있다가 심심하면 책 읽고…. 뒷짐 지고 어슬렁어슬렁, 친구 집 주위를 맴돈 동선이 꼭 가로등 불빛을 벗어나지 못하는 불나방 같았습니다. 우리 인생의 동선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네요. 회사와 가정이라는 ‘대로’만 죽기 살기로 왔다갔다 하는 보통 사람들. 한 세월이 지나서야 쪼글쪼글해진 자신의 ‘작지만 소중한 길’이 보입니다. 뒤늦은 깨달음에 한탄하지만 어쩔 수가 없습니다.

에빌린의 역설이란 말이 있지요. 무더운 여름날 미국 텍사스의 어느 집 어른이 ‘에빌린에 가서 부드러운 스테이크를 먹자’는 제안을 합니다. 가족들은 80㎞를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으나 음식점에서 나온 고기는 그야말로 형편없었다는 군요. 돌아가는 길, 모두 투덜대며 자기 마음을 털어놓은 결과 사실은 아무도 에빌린에 가고 싶지 않았다는 건데요. 누구도 원하지 않지만 누구도 거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따른 데 대한 책임은 스스로 져야겠지요.

예컨대 회식 자리에서 누군가 2,3차 깃발을 들면 싫어도 그냥 따라 가는 것이 에빌린 패러독스인데요. 구성원들의 자신감, 리더십 결여에서 나오는 이런 현상을 우리 개인에게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즉 나 자신이 스스로의 인생에 대해 입을 봉하고 이의 제기를 하지 않았다든가 남의 방식을 그대로 좇은 삶이라면 결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따질 이유가 없겠지요. 지금의 내가 딱 그 모양새입니다.

부안을 떠난 발걸음은 다시 인천으로 향했습니다. 김제평야를 달리고 당진항과 화성을 통과한 버스가 터미널에 도착한 시각이 밤 8시. 예정보다 한 시간이 초과됐습니다. 그곳에 사는 대학 선배의 집에서 다시 하루 밤을 자고 아직 술이 덜 깬 상태에서 어물쩍(?) 귀가했습니다. 영동에서 시작된 4박5일 간의 휴가 여행. 내내 나를 붙잡았던 ‘한 생각’이 있었지요.

“이제는 어머니를 떠나 보내자. 내 삶으로부터….”

마산에서 태어나 중앙대 국문과를 졸업했습니다. 주부생활ㆍ일요신문을 거쳐 한국경제신문에 입사,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으로 일했고요.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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