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이태석 신부 '당신의 이름은 사랑'


“인류 정신사를 발전시킨 이들 대다수는 그전에 알려지지 않았던 것을 새롭게 발견한 자들이 아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가지고 시대에 맞게 말하고 필요한 것을 강조했을 뿐이다. 이런 점에서 다음 말은 맞는 말이다. 교육이란 새로운 사실을 말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 실천하도록 하는 데 있다.”(송봉모『세상 한복판에서 그분과 함께』바오로딸, 2006) 

그렇습니다. ‘실천’은 인간 행동의 본질로서 삶을 바꾸는 양식입니다. 어떤 위대한 이론도 실천 앞에서는 무력하겠지요. 특히 ‘그럭저럭’ ‘마지못해’ ‘죽지 못해’ 살아가는 현대인으로서 긍정적 변화를 희망한다면 반드시 요구되는 구체적 행위가 있습니다. 위 책의 저자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단언합니다. ‘언젠가 더 여유로워질 때 영혼의 바람을 채워주겠다고 말하지 말자. 그런 날은 오지 않는다. 죽는 그날까지 우리는 바쁘게 살아갈지 모른다. 그러니 지금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고.

여기 몸과 마음을 다해 사랑을 실천한 아름다운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고 이태석 신부지요. 2004년부터 4년 간 남수단 톤즈에서 행한 미사 강론을 엮은 ‘당신의 이름은 사랑’(다른우리)으로 다시 우리 곁으로 왔는데요. 다큐 영화 ‘울지마 톤즈’에 감동했던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그가 왜 그렇게 살았는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랑은 한 마디로 신비입니다. 여러분은 사랑 고백을 해 본 적이 있습니까? 어땠습니까? 심장은 숨도 쉴 수 없을 만큼 두근두근 뛰고, 달콤하고, 너무 행복하고, 잠들 수도 없는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사랑한다’는 말은 특별한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진실로 세상을 바꿀 수 있으며, 어떤 것을 하나로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이웃을 이해하고 용서하며 배려하는 마음을 선천적으로 타고난 ‘천사표’입니다. 그 고귀한 봉사 정신 앞에 나 같은 사람은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습니다.

“손발이 부러지거나 머리를 다쳐 피를 줄줄 흘리고 오는 분들을 보면 정신이 다 아득해집니다. 오랫동안 전쟁을 겪어 질렸을 테니 무슨 일이 있더라도 같은 동네 사람들끼리 싸움은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음에도, 그런 일로 병원에 오면 화가 나 치료를 해 주고 싶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미약한 저도 그러한데 예수님은 이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사건 사고를 보면서 가슴이 미어지다 못해 찢어지실 것 같습니다.”

병원에 왔던 환자를 성당에서 만나면 몸이 나은 게 기쁘고 반갑다 못해 끌어 안아주고 싶어 안달인 사람. 보름달 아래서 책을 읽는 아이들을 보고 감동하고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 같은 사람들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진무구한 영혼이지요.

“여러분, 톤즈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건 어린이들의 눈동자입니다. 엄청 크고 맑고 순수해서 손만 대면 금방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아이들의 눈망울. 참으로 아름다운 것을 볼 때 흘러나오는 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늘의 샛별보다 더 영롱한 아이들 눈빛이 어른이 되면서 흐릿해지는 게 안타깝습니다.”

우리가 이태석 신부에게 감동하는 이면엔 어떤 ‘결정적 힘’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가 미국 LA 강연을 마친 후 밝힌 소감에서 어렴풋이나마 그 실체를 가늠할 수 있는데요. 매우 솔직하면서 소박한 성찰이 반짝반짝 빛납니다.

“(강연을 듣는) 그들의 눈은 서서히 빛나기 시작했고 눈가에 맺힌 이슬은 투명한 보석과도 같았다. 그들은 내 보잘 것 없는 이야기를 마치 물을 빨아들이는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있었다. 그 순간의 일치와 일치된 시간 안에서 느껴지는 행복한 전율은 내 능력도, 그들의 능력도 아닌 바로 성령의 힘에 의한 것이라는 걸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어떤 네티즌은 이태석 신부의 삶을 흠모한 나머지 ‘그를 닮고 싶은 이유’를 네 가지로 압축했습니다. 글로벌 시대의 진정한 선구자(사제면서 의사, 음악가, 교육자, 사회복지사인 행동하는 천재), 큰 사랑의 실천가(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어주는 헌신), 더 나은 미래를 창출하는 혜안의 소유자(과거 우리가 받았던 선진국의 도움을 되갚는다는 각오로 일함), 하느님과 가장 많이 닮은 사람(최악의 환경에 몸을 던져 일반인의 관심을 증폭시킴)이라는 겁니다.

하늘나라에 가서도 ‘어디 봉사할 곳 없나’ 하며 ‘가장 낮은 곳’을 찾고 있을 것 같은 이 신부. 내가 좋아하는 성경 한 구절을 ‘가장 겸허하게’ 바칩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마산에서 태어나 중앙대 국문과를 졸업했습니다. 주부생활ㆍ일요신문을 거쳐 한국경제신문에 입사,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으로 일했고요.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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