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발칙하지만 불쾌하지 않고 생뚱맞으나 불편하지 않습니다. 황혼에 다시 찾아오는 사춘기라니, 주책이라고 혀를 찰 만도 하지만요. 죽었던 감각을 되살리는 따뜻한 위무를 2시간(런닝 타임)이나 받게 해 주는 ‘아주 귀여운’ 로맨틱 코미디입니다. 낸시 마이어스 감독의 2003년작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Something’s Gotta Give). 헐리우드에서도 찬밥 신세이며 그동안 인권의 사각 지대로 내몰려왔던 노년의 성에 카메라를 정면으로 들이댑니다.

결혼도 하지 않고 영계 꽁무니만 쫓아다니던 63세 해리 샌본(잭 니콜슨)은 젊은 마린(아만다 피트)과 막 ‘작업’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때 그녀의 엄마 에리카 베리(다이앤 키튼)가 나타납니다. 50대 중반의 이혼녀인 에리카는 자신의 입술을 립스틱 바르고 휘파람 부는 용도로만 사용해온 새침데기 작가이지요. 근데 맙소사! 딸의 남자 친구라는 작자가 저런 늙다리라니. 게다가 그 인간이 심장 발작을 일으켜 당분간 함께 지내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전작 ‘왓 위민 원트’와 ‘로맨틱 홀리데이’로 대박을 냈던 낸시 마이어스는 여성의 마음을 가장 잘 짚어낸다는 감독인데요. 이 작품의 각본도 직접 썼지요. 서로에게 최악인 두 인간 유형을 한 지붕 아래 모아놓고 사사건건 대립시키는 극적 장치는 로맨틱 코미디에서 미세한 디테일과 리듬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집안에 담배 냄새 배는 게 싫다며 굵은 시가를 물고 있는 해리의 코 앞에 물잔을 들이대는 에리카. 해리는 지지 않고 한여름에 웬 목티를 입고 있느냐고 태클을 겁니다.

30곡 가까운 배경 음악도 노친네들 감정의 물결따라 출렁입니다. 마빈 게이의 히트곡 ‘Let’s Get It On(슬슬 즐겨볼까)’이 들리자 고개부터 절레절레 흔드는 에리카. 힙합 레이블의 사장이라는 해리의 말에 ‘Bitch(몹쓸 ×)라는 가사부터 싫다’고 지레 방어막을 구축하는 그녀의 작업실에는 고상한 재즈가 흘러나옵니다. 음악감독 한스 짐머는 풋풋한 첫 맛과 원숙한 뒷 맛을 멋지게 대비시키지요. 경쾌한 랩으로 시작된 영화는 조지 거쉰과 루이 암스트롱, 샤를르 트레네를 거쳐 엔딩 크레딧이 오르면서 폴 사이먼의 ‘Learn How to Fall’과 ‘장미빛 인생’으로 마무리를 하는데요.

“돌아보면 시간 참 빨리 지나가지 않았어요?”
“눈 깜빡할 순간이었소.”
“맞아요.”

그림 같은 바닷가를 걷던 두 사람은 이제 막 무관심과 혐오의 터널을 통과하기 시작합니다.(마린의 중도 하차와 도움주기가 있었음.) 급격히 레벨 업되는 스킨십. 마침내 대망의 ‘짝짓기’에 성공하고 진정한 사랑의 고봉에 방점을 찍습니다. ‘여섯 시 내 고향’에 나옴직한 쭈글쭈글한 피부 아래 뜨거운 심장이 뛰고 있음을 발견하고 환호합니다. 야호! 나도 할 수 있다. ‘애들 같은’ 사랑은 그렇게 공식화됩니다.

사랑의 방정식에 돌출이 없다면 싱거운 법. ‘늙은 남자와 젊은 여자’의 사랑을 밀치고 들어온 ‘늙은 남자와 늙은 여자’의 사랑에 변수가 생깁니다. ‘젊은 남자와 늙은 여자’의 사랑이 개입하기 시작한 게지요. 바로 해리를 치료하던 의사 줄리안 머서(키아누 리브스)가 20세 연상녀인 에리카에게 적극적 구애를 한 겁니다. 이 중요한 시점에서 해리는 결정적 실수를 합니다. 예전에 잡혀 있던 데이트 약속을 가볍게 생각하고 현장에 나갔다가 그만 에리카에게 들키고 맙니다. 제 버릇 ×주랴. “오, 마이 갓!”

다이앤 키튼은 이 영화에서 포복절도와 대성통곡하는 열연으로 2003년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을 받았는데요. 상현달 모양의 눈매에 접힌 주름살이 사랑스럽고 단 몇 초에 걸쳐 선보인 전신 누드도 매우 아름답습니다. 해롱대며 흔들어대는 잭 니콜슨의 노출된 엉덩이는 그저 귀여울 따름이고요. 미국의 어느 잡지는 ‘(배우) 잭 니콜슨이 (인간) 잭 니콜슨을 연기했다’는 평을 내렸습니다. 그만큼 적역이었다는 말이죠.

“60대 후반의 여성입니다. 신로심불로(身老心不老)라고 아직도 성적인 생각이 납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혹은 그 이상 하고 싶은데요. 성욕이 일어나게 하는 방법이 없을까요?” 네이버 지식검색에 올라온 이 ‘거부할 수 없는’ 질문을 해리가 본다면 어떻게 답할까요. 아마 이럴 겁니다. “황혼의 성에는 정년이 없답니다. 나이 든 사람도 달콤한 로맨스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아직도 늦지 않았습니다. 참사랑을 찾으세요. 그리고 마음껏 즐기세요.”

*** 월간 ‘공무원연금’ 11월호 ‘이 한 편의 영화’ 기고문입니다.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을 거쳐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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