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부모님 이혼 허락해 주세요”


성미 급한 겨울이 행장을 덜 꾸린 가을에게 빨리 떠나라고 아우성이다. 찬 기운을 불러내 살집을 후벼 파고 강풍을 일으켜 등을 떠민다. 예상하지 못했던 혹한 세례에 질린 은행나무는 아직 물이 덜 든 잎까지 서둘러 떨군다. 의연하던 보랏빛 쑥부쟁이도 고개가 꺾인 채 운명의 부름만 기다리고 있다. 10월, 서울의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졌다. 8년 만이란다.

한파를 견디지 못한 노숙자 한 명이 동사했다.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을 나는 새도 집이 있다는데 이 세상에서 ‘머리 둘 곳조차 없는’ 사람들은 어쩌란 말인지 때 이른 겨울이 무심할 뿐이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일찍 철든’ 여중생이 부모의 이혼을 허락해 달라는 진술서를 법원에 제출했다는 소식도 안타깝다. 빚 갚을 돈을 벌기 위해 지방으로 떠난 후 연락이 끊긴 아버지, 그와 어머니의 이혼을 허락해 달라는 호소인데….

졸지에 생계를 책임지게 된 어머니는 자신과 네 자녀, 시어머니까지 모두 6명을 부양하게 됐다. 편의점에서 하루 11시간씩 매달 26일을 일해 한 달 150만 원을 받았지만 생계는 늘 빠듯했다. 딸의 고교 진학을 앞두고 마침내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렸다. 이혼 소송을 내고 ‘한 부모 가정’이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정부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였다.

15세 딸은 어머니가 내린 ‘쓰라린 결정’을 헤아려 재판부에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그렇게 되면 엄마의 부담을 덜 수 있고 동생을 유치원에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현재 아버지와 연락이 안 돼 공시송달로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며 ‘민감한 시기에 자칫 상처가 될 수 있는 경험을 잘 극복하고 희망을 키우도록 독려하는 차원’에서 결론을 내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의 반응은 격려와 안타까움 일색이다. “부모사랑 받고 열심히 공부해야 할 나이인데, 추운 날씨에 따듯하게 옷 입고 힘내라.” “한참 연예인 오빠들 좋아서 소리 지르고 할 땐데…. 자신이 학교 갈 걱정까지 하게 만드는 사회가 정말 서글프다.” “지금 곁에 내 부모님이 계신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에리히 프롬이 말했던가. 사랑이 없으면 인간성은 단 하루도 존재하지 못한다고. 우리가 강추위와 싸워가며 살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이 글은 대한불교 진각종에서 발행하는 ‘밀교신문’ 11월1일자 기고문입니다.

마산에서 태어나 중앙대 국문과를 졸업했습니다. 주부생활ㆍ일요신문을 거쳐 한국경제신문에 입사,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으로 일했고요.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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