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어느 일요일 오후의 참회록


“제게는 이 세상 누구도 알면 안 되는 비밀이 있습니다. 근데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았는지…. 당신이라는 사람이 가볍게 입을 놀리는 바람에 저는 큰 상처를 입고 말았습니다. 무참히 짓밟혔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17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아직도 용서할 수 없습니다. 결코 당신을….”

가톨릭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좋은 부모 영성학교’ 프로그램에 참석한 40대 중후반의 여성이 강사 신부에게 던진 질문인데요. ‘당신’은 누구를 말하고 ‘비밀’ ‘상처’는 또 무슨 얘긴지…. 듣는 이들은 모두 내용 파악이 안 돼 어리둥절했고 느닷없이 황당한 질문을 받은 신부도 ‘누가 자매에게 그런 상처를 줬느냐’는 요지로 되묻고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대각선 좌석에 앉아 있던 백발의 할머니가 벌떡 일어나 외쳤습니다. “나는 부끄러울 게 없어요. 내 나이 스물 일곱부터 저 아이와 형제들 키우는 데 인생을 바쳤기 때문에…. 그 사이 미안하다고 빌 만큼 빌었지만 아직도 원수처럼 나를 대하는 게 이해가 안 돼. 하지만…. 지금이라도 화해를 하고 싶어. 여기 옆 자리에 있는 며느리도 내 마음 다 알고 있어요.”

처음 대쪽처럼 단호했던 어조는 상대방의 이해를 구하는 쪽으로 급격하게 기울었습니다. 사람들의 표정은 그제서야 ‘저 두 사람은 모녀 관계이고, 무슨 비밀인지는 모르겠으나 당신(어머니)이 발설하는 통에 딸이 제3자로부터 상처를 받았다. 제3자는 딸의 남편일지도 몰라. 모녀는 용서를 구하고 용서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모임에 어렵게 동참했지만 쌓인 감정만 폭발하고 말았다’고 이해하는 것 같았습니다.

일순 침묵이 흐르나 했는데 즉각 딸의 반격이 이어졌습니다. 재차 책임 소재를 따지는 그녀의 어투는 인간의 덕목이랄 수 있는 ‘용서’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보였습니다. 할머니는 눈물만 흘리고 있었고요. 난감해진 신부는 쉬는 시간이 됐다며 서둘러 상황을 종료시켰습니다. 십수 년 복잡하게 얽힌 사연을 경청할 여유도 없었지만 무엇보다 공개된 장소에서 거론하기엔 부적절한 사안이라는 판단이 앞섰겠지요.

나 역시 적잖이 놀란 동시에 이런저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충격이 어느 정도길래 그 질기다는 혈육의 정까지 끊게 만들었을까.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잊혀지지 않는 악몽이 있다는 말인가. 설사 부모가 잘못해도 자식은 관용을 베풀지 못하는 것인가. 부모는 언제나 자식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하는 존재일까. 저 딸 또한 자녀가 있을텐데…. 화해의 눈물은 진정 말라버린 것일까.

휴식 시간이 끝나고 교육이 재개됐습니다. 우리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강의에 몰두했지요. ‘자아 존중, 정서적 언어를 통한 부모 역할’이란 주제 아래 ‘인격을 말하라, 지금의 자기 모습을 보려면 자녀를 보라, 칭찬과 지지가 있어야 줄줄이 대화 가능, 아빠의 인정과 엄마의 사랑은 목숨보다 중요하다’ 등 실천 사항들을 배웠습니다.

“아이는 스스로의 잘못에 대해 느끼지 못한다. 단지 부모의 말과 행동만 생각한다. 그들은 부모의 고통을 먹고 자란다.”

교육이 끝나고 수도회 문을 나서며 기도했습니다. ‘헌신과 잔소리의 힘’을 믿는 아내와 그에 맞서 무한 자유를 달라고 외쳐대는 내 아이들, 이쪽도 저쪽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로 직무 유기하고 있는 나를 변화시켜 달라고. 지금 비록 생각과 행동의 방식이 달라 평행선을 달릴지언정 언젠가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트라이앵글에서 따뜻하게 손잡을 수 있기를….

 

 

 

 

 

 

 

 

마산에서 태어나 중앙대 국문과를 졸업했습니다. 주부생활ㆍ일요신문을 거쳐 한국경제신문에 입사,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으로 일했고요.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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