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젊은 날의 초상

누군가 말했습니다. ‘자신의 미래가 23.5도로 기울어진 지구의 자전축과 똑 같은 궤도로 달리고 있다고 생각하던 날은 얼마나 행복했던가. 하지만 이러한 충만감은 어린 시절 이후로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다’라고. 실제로 우리는 미국 소설가 레이먼드 카버의 작품 속 사람들처럼 공허한 일상에 비틀거리며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엎질러진 커피, 수시로 날아드는 광고 문자 메시지, 웨이트리스의 허벅지, 아무리 기다려도 내려오지 않는 엘리베이터에 전전긍긍하면서…

학창시절 자주 만나던 선배의 체험을 배경으로 쓴 산문시 한 편 올립니다. 


인간과 개의 소통양식 2

서울 모 대학 앞에 개업 연도 기준 자타칭 75학번이라는 주모가 운영하던 술집이 있었다. 한낮의 무더위가 혓바닥을 길게 빼낸 어느 여름날, 술버릇 고약하다고 소문난 미대생 한 명이 이곳을 찾았다. 함께 대작하던 여학생들에게 ‘평소 술도 잘 못 사주는 너희들에게 해 줄 거라곤 이것밖에 없다’면서 면전에서 바지를 내리고 자기 물건을 보여 주던 넉넉한 마음씨의 청년이었다. 방학이라 특별히 할 일도 없고 목이나 축이려 들린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만 큰 사고를 내고 말았다.

사연인즉슨 활짝 열린 문 옆 테이블에 앉아 무심코 바깥을 내다본 게 발단이었다. 홀짝홀짝 술잔을 기울이던 그의 시야에 세상 모르게 자고 있는 불도그 한 마리가 들어온 것. 평화롭기 그지없는 하오의 그림을 허, 그놈 잠 한 번 달게 자네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던 그가 느닷없이 꼬부라진 혀로 뭐라뭐라 하더란다. 주모가 속으로 또 웬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싶었는데, 갑자기 일어난 그가 휘청 상체를 굽히더니 개 있는 방향 십여 미터를 네 발로 기어 가더라고. 순식간에 두 마리의 개가 통성명하듯 얼굴을 맞대고 있더라나.

평소 이웃 집 개의 불 같은 성격을 잘 알고 있던 주모가 이 일을 어째 하며 어쩔줄 몰라 하는 사이 자기 영역을 침범당해 화가 머리 끝까지 치민 견공의 달구어진 이빨이 우리의 선수 얼굴을 정면으로 물고 늘어졌다. 안그래도 더워 미치겠는데 단잠까지 방해받은 점, 게다가 자기 종족의 포즈로 야릇하게 서 있는 낯선 동물의 무례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한 달만에 붕대를 푼 그를 본 사람들이 속으로 킥킥거리며 도대체 왜 그랬냐고 캐묻자 ‘나를 개XX이라 부르는 인간들이 하도 많아 진짜 같은 족보인지 따져보고 싶었다’면서 ‘그 눔의 개새끼, 좆 같은 성깔 하나는 날 빼닮았더구만’라며 투덜거리더라고.

그는 한 마리의 인간이면서 한 명의 개였다. 몸으로 예술적 진화를 거듭하는…

– 졸시(『시선』겨울호, 2009)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을 거쳐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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