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하늘카페의 동백아가씨

가끔(?) 출출해지면 집 뒤편 언덕에 오릅니다. 이름 있는 산은 아니지만 야트막한 정상에 서면 관악산이 보이는 전망 좋은 곳입니다.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리면 63빌딩이 있는 여의도와 한강, 멀리 남산타워까지 한 눈에 들어오지요. 그만큼 고지대입니다. 관악구와 동작구가 나뉘는 이곳 능선을 따라 걷기 열풍에 동참한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집니다. 한 손에 지도를 펼쳐든 일본 관광객들도 심심찮게 눈에 띄는데요. 몇 년 전 방영됐던 인기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의 여주인공이 살던 판잣집이 여기 있기 때문입니다.

이 관광 명소(?) 바로 옆에 ‘하늘카페’가 있습니다. 하늘을 이고 있는 집이지요. 두세 개의 탁자, 추위를 막으려 둘러친 비닐이 인테리어의 전부지만 매력 있는 곳입니다. 양평 용문산에서 직접 공수돼 온 지평막걸리 큰 잔 하나에 1500원, 기본 안주는 무료. 아련하기 그지없는 7080 음악도 있습니다. 몇 잔을 마시든 주인 눈치 안 봐도 되고 오래 있어도 시비 거는 사람 없어 좋습니다. 요즘은 날씨가 추워 손님이 뜸하지만 여름과 가을이 걸쳐 있던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간단히 목을 축이려는 사람들로 꽤 북적거렸습니다.


▲ 해거름 직전의 속초 대포항.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한두 시간은 앉아 있습니다. 술 한 잔 채우고 근심 한 잔 비우고 다시 채워 비우고… 목젖을 타고 번지는 취기따라 배포도 슬슬 커집니다. 세상사 급할 게 무어 있으며 성과 속 경계가 어디 있으랴. 교만한 중생이 감히 부처의 경지를 넘보고 태클을 겁니다. 지난 한 철 이 소박한 언덕을 정겹게 만들었던 맨드라미와 코스모스, 국화와 백일홍을 ‘때 됐다’고 불러들인 게 잘한 일이냐고 따집니다. 몹쓸 병에 걸린 여자를 며칠씩 껴안았던 경허 스님이나 스스로 한센 병자가 된 다미안 신부가 그리 대단하냐고 빈정거립니다.   

아까 올라오던 산보객이 이제 내려갑니다. 찬 바람에 취기도 반환점을 돕니다. 그 사이 배호 노래를 좋아하는, 대학가 음식점 사장님도 다녀가고 하루 일 일찍 끝낸 공사판 인부들도 댕그랗게 빈 잔만 남겼습니다. 다시 조용해진 카페. 막걸리 잔을 든 주인이 무료한 듯 시디 플레이어 전원을 넣습니다.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오늘따라 애틋한 트로트 메들리, 여과 없이 쏟아지는 그리움의 폭포수 세례를 받은 이 가슴도 멍들면… 언덕 아래 아파트촌 붉은 불빛 하나 둘 들어옵니다. 동백 꽃망울 터지듯.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을 거쳐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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