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고양이 입양할 사람을 찾습니다

지난 10월 마로니에전국여성백일장에서 산문부문 장원을 차지한 서한씨의 작품 전문을 본인의 동의를 얻어 올립니다. 그는 당선 소감에서 ‘살아 있는 것이 녹록하지 않아’ 마냥 조급했던 마음이 문학을 찾게 만들었고 창작으로써 ‘생각’의 온전한 치유를 희망한다고 밝혔습니다. 심사를 했던 소설가 오정희 선생은 ‘자신의 삶과 타자에 대한 사랑, 삶의 고통과 어려움까지 껴안는 넉넉함’을 수상 이유로 밝혔습니다. 제목은 <골목 끝에도 찾아올 봄을 기다리며>입니다.

 녀석을 처음 본 게 너덧 달 전이다. 재활용 분리수거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재개발추진위원회’ 간판을 내건 컨테이너 박스 아래 구멍에서 뭔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어린 길고양이였다. 녀석은 구멍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주위를 살피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재빨리 안으로 사라졌다.

 그날 이후로 이삼 일에 한번 재활용 집하장에 갈 때마다 나는 짐짓 그 구멍을 지켜보았다. 어쩌다 얼핏 녀석이 보이기도 했다. 어찌나 조심성이 많은지 구멍 안에서 고개도 내밀지 않은 채 눈만 반짝이는 모습이었다. 가만히 보니 벽돌 한 장만한 넓이의 구멍은 바로 옆에 있는 다른 컨테이너 박스와도 통하게 되어 있어 녀석은 비록 세들어 살지만 집을 두 채나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컨테이너 아래는 시멘트 바닥이지만 버젓이 1층이니 반지하같이 칙칙하지는 않겠구나 하는 생뚱맞은 생각도 들었다. 나는 상상으로나마 도저히 들어가볼 수 없는 녀석의 방안에 수시로 들락거렸다. 내가 우리집 베란다 한구석에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 책을 읽거나 사색을 즐기듯 녀석도 혹 그런 걸까, 하는 지레짐작을 하면서.

 올 여름은 무척 짧았다. 녀석의 집 앞을 오가는 사이 어느새 계절이 바뀌었다. 컨테이너 사무실 가까이 있는 메타세쿼이아가 키만 뻘쭘하니 녀석의 집 앞까지 그림자만 길게 두고, 단풍이 미처 들지 못한 등나무 잎이 둥글게 말려 바닥에 깔렸다. 나는 공연히 애꿎은 나뭇잎을 걷어차며 가을을 느낄 새도 없이 바삐 가는 시간을 탓했다. 늦가을을 재촉하는 찬바람을 맞으며 월말 관리비를 정산하러 가는 길, 통장의 잔고를 떠올리며 녀석은 월동준비나 제대로 하고 있는지 구멍 안을 잠깐 들여다보았다. 물가는 오르고 집안 경제는 해가 다르게 곤두박질을 친다고 다들 아우성인데 나는 주머니에 동전 소리가 나도 제 잘난 맛에 자존심만 세워 의연한 척 사는 것 같아 공연히 쑥스러웠다.

 때 아닌 소낙비가 내렸다. 구멍 앞 쌓인 흙 위에 녀석의 앙증맞은 흔적이 보였다. 새끼손가락으로 콕콕콕 세 번 찍은 모양의 뒤쪽에 다시 엄지손가락으로 쿡 누른 듯한 선명한 발자국이 옆 컨테이너 구멍까지 나 있었다. 녀석이 소통한 거리라야 고작 10미터 남짓이다. 하기야 요 며칠 내 걸음걸이를 어림잡아 보니 우리 집에서 골목 끄트머리를 돌아 녀석의 집 앞을 거쳐 재활용 집하장까지 80미터 정도다. 녀석과 나의 몸집으로 비교해 보면 우리의 행동반경은 얼추 비슷한 듯하다. 동안거나 면벽참선을 하는 것도 아닌데, 이 좋은 계절에 그 흔한 여행 한번 못 가고 동네나 왔다갔다 하는 나나 녀석이나 신세가 비슷해 보인다. 그래서 흉흉한 세상 인심에 잔뜩 주눅이 들어 살 맛 죽을 맛 곱씹지나 말자며 밑도 끝도 없는 한 마디를 툭 던져 주었다.

 비 온 다음날은 춥다더니 영락없이 한겨울 날씨다. 주말의 거리는 한산하고 한길에 보이는 사람들조차 몸을 움츠리고 종종걸음이다. 찬바람이 불고 어제 내린 비에 길바닥까지 질퍽했다. 관리소에서 낙엽을 녀석의 집 쪽으로 쓸었는지 구멍 앞이 완전히 막혀 있었다. 안에서 잠가야 할 대문인데 밖에서 걸었으니 녀석이 놀라지나 않았을까. 나는 얼른 맨손으로 젖은 낙엽을 파헤쳤다. 주춤주춤 엉덩이를 들고 안을 들여다보니 휑한 게 바깥보다 더 한기가 느껴졌다. 재건축을 위해서 만들어 놓은 추진위원회 사무실인데 사람들이 오가지를 않으니 온기가 있을 리 없다. 그런데 세입자끼리도 저렴하고 괜찮은 전셋방 구하기 추진위원회 같은 뭔가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고 보니 집 문제로 녀석과 내가 논의해야 할 공통 주제가 생긴 셈이다.

 겨울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어디에 꼭꼭 숨어 있는 봄이 내일이라도 곧장 달려올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종일 햇볕이 따뜻하다. 신문을 보면서 깜박 졸다가, 다니는 직장에 하루 휴가를 내고 신촌에 간 큰 애의 전화를 받았다. “엄마, 졸고 있었죠?” 하고 묻는 큰 애의 졸린 듯한 목소리가 되레 내 잠을 깨웠다. 작은 애 학교 교정에 왔는데 평일인데도 휴일같이 한가로워 생각하니 자기만 노는 날이고, 오늘 날씨가 너무 좋다고 일러 준다. 요즘 날이 춥다는 핑계로 내가 집에만 있는 게 마음에 걸렸는지 “지금 밖에 나가 보세요.”라고 아이 달래듯 말한다. 나는 트레이닝복 차림 그대로 운동화를 끌고 현관문을 나섰다. 해거름이 되려면 좀더 있어야 하지만 혹시 녀석을 볼 수 있을까 걸음을 재촉했더니 구멍 안이 빈 듯하다. 녀석의 코에도 이미 따뜻한 기운이 들어갔나 보다.

 그런데 녀석의 집 위층에서는 곧 재개발건 회의가 열릴 거라는 소문이다. 주택단지를 허물지 말지 결정이 난다는데, 올해가 녀석과 내가 보내는 마지막 해가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아무튼, 누가 알까. 왠지 허기진 겨울을 벗어나기만 하면 느끼기만 해도 배부른 계절, 봄을 기다리는 들뜬 심정을. 골목 끝에 있는 우리 집이나 녀석의 집에도 봄은 찾아올 것이라는 믿음을. 봄이 오면 나는 가장 먼저 베란다로 나가는 덧문을 떼어낼 것이다. 그동안 직장에 다니느라 몸보다 마음이 바빠 덧문을 떼어내면 집안이 환해질 거라는 생각만 했다. 진종일 햇볕이 들어 스멀스멀 집안이 통째로 낮잠에 빠지면, 나는 그저 거기 베란다 한 구석에 앉아 글을 쓰고 싶다. 녀석은 어떨까. 아마 춘정을 못 이겨 동네방네 마실 다닐 것 같다. 풀밭엔 제철 맞은 개망초가 피어나 지난해보다 더 환한 봄이 녀석을 찾을지 모른다. 그 사이를 우리는 누비며…

***이 글에 등장한 고양이는 동물 병원에 일 주일간 입원, 전염병 치료와 중성화 수술까지 받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작가가 당선 상금 중 상당액을 떼어 소재가 되어준 ‘감사의 턱’을 크게 쏜 것이지요. 지금 입양할 주인을 찾고 있다 합니다.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을 거쳐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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