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한 아줌마들

입력 2009-10-29 09:45 수정 2011-07-04 17:37
지난 주 구로근린공원에서 있었던 마로니에여성백일장에 다녀왔습니다. 전국 곳곳에서 모인 5백여 명의 여성 중에는 간간이 앳된 얼굴도 눈에 띄었지만 대부분은 주름살 깊게 패인 아줌마들이었습니다. 분위기는 매우 뜨거웠지요. 옷깃을 여미게 하는 쌀쌀한 날씨에도 벤치와 의자에 앉아 집중하는 그들의 열정이 매우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각자의 마음 밭에 뿌린 생각의 씨앗을 한 나절 사이에 키워내려 애쓰는 모습들. 쓰고 지우고 다시 쓰고… 가끔 부는 바람의 줄기를 타고 셀 수 없이 많은 자음과 모음이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무엇을 그토록 갈망하고 있었을까요. 어떻게 해서든 뽑혀서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유명한 시인 소설가와 악수도 하고 상금도 받아 남편과 자녀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일까요. 아니면 이번 기회에 아예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길로 들어서기로 단단히 마음 먹은 걸까요.

점심 시간이 지나고 오후 2시부터 시인 유안진 선생의 강연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습작 시절 겪었던 소박한 경험담과 짧지만 매우 요긴한 조언 등이 대강의 내용이었지요. 듣는 이들의 눈이 소녀처럼 초롱초롱 빛났습니다. 물론 귀도 활짝 열린 듯했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강연자와 상대방이 공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뒤이어 서너 명의 질문을 받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선생님은 마음이 어떨 때 글을 쓰시는지…. 살기 힘들고 슬프고 우울할 때 진짜 글이 나온다는데 저는 왜 잘 안 되는지요?”
“시간 내기가 정말 힘들어요. 어느 시각에 책상 앞에 앉으세요?”
“존경하는 분을 이렇게 직접 뵈니 말할 수 없는 감동입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아뿔싸! 그들은 여유가 넘쳐, 시간이 남아돌아 글쟁이가 되려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유명해지려는 마음이나 명예 따위는 더더구나 없었겠지요. 단지 생활의 애환을 글로써 달래고 싶었던 겁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던 마음의 상처를 자신이 보듬고 감싸주고 싶었던 겁니다. 살아오면서 남편과 아이에게조차 토로하지 못했던 골 깊은 사연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시상식이 있은 후 내가 소속된 문학회 일행은 장원의 영광을 안은 두 명의 아줌마와 저녁을 먹었습니다. 최근까지 직장 생활을 열심히 하다가 뒤늦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공통점을 가진 40대 중반, 50대 초반의 아리따운(?) 어머니들이었습니다. 수상 사실에 모두 놀란 듯했고 이제부터 등단 문인이 된다는 말에 더욱 상기된 표정들이었습니다. 자신들의 새 세계를 열고 싶다는 소박하지만 진지한 수상 소감에 우리는 큰 박수와 응원으로 화답했습니다.
“용감한 아줌마들, 만세!”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을 거쳐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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