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뒷방’으로 물러나지 않기

“시속 20㎞로 달릴 때는 몰랐는데 40㎞가 돼 가속이 붙으니 금세 50㎞로 달리고 있더라.”

드라이버라면 누구나 경험해 본 말이지요? 우리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나이듦도 갈수록 가속이 붙어 20대에서 50대가 한 순간이니까요. ‘어느 날 문득 눈을 떠보니 고개에 올라 있었다’는 많은 선배들의 회고담이 이를 증명합니다. 나 역시 퇴임식에서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요지의 인사말을 했습니다.

인생의 제2부. 엑셀에 발을 올려 놓고 여전히 관망만 하고 있습니다. 서서히 군불을 지필 것인가, 아니면 예열 없이 곧장 불을 질러버릴 것인가. 주변 사람들의 조언은 크게 둘로 나뉘더군요. 지겨울 때까지 쉬어 완전 방전시키는 게 곧 충전이라는 ‘이지 리스닝’과 폐인이 되기 싫으면 텀을 짧게 하라는 ‘하드 코어’였습니다. 다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지요.

붉은소나무님의 권고처럼 ‘3식이’가 안 되기 위해, 최악의 경우겠지만 ‘뒷방’으로 물러나는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메아쿨파․촌닭왕자님과 슛골님의 응원에 큰 힘을 얻습니다. 추천해주신 여러 분들의 성원에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시 데뷔 작품 셋 중 두 편을 올립니다.


어비계곡의 여름

막내딸 손 잡고 흥얼흥얼
맑은 고기 날아오른다는
유명산 어비계곡
물 줄기 거슬러 올라보니

홀연 하늘 열리고
제 땅의 만물 온전히 감싸안은
드넓은 분지
이런 복음도 있었구나

온갖 간지러운 세상 뒷얘기
상승기류 타고 올라올 때마다
다문다문 앉은
늙은 인가 몇 채
서로 등 긁어주는 시간

뙤약볕에 풀 죽은
고랭지 채소들 놀랠라
살금살금 발걸음 옮기는데

아빠 이거 뭐야
딸아이 고사리 손
풀섶 속 모로 누운 팻말 가리켜
빛 바랜 글자 하나씩 깨워보니

오호라 이 은둔의 놀이터에
언제 분교 자리잡았던가

상고머리 바람 한 줄기
키 작은 단발머리
은사시나무 발 걸어 넘어뜨리자
하늘로 일제히 달음박질치는
씩씩한 함성 되살아났다

감자에 싹이 났다
잎이 났다
가위
바위

그동안 얼마나 심심했을까

 

남도 기행

유달산에서 발원한
목포의 눈물
1분에 78회전 에스피 판
홈따라 덧나고 번져

영암 월출산
해남 땅끝마을
진도 세방낙조
목울대 피멍 들게 하다가

세상 돌아가는 톱니바퀴 속
맞물리지 못한 축음기 바늘
숨 막히고 기 막혀
턱 턱
발걸음도 막히자

보길도 세연정
영원한 경계인으로 들어앉았네
 
아따!
징한 팔자라니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을 거쳐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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