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예쁜 여자> 독점공개
⑦로미오의 첫사랑은 줄리엣이 아니었다



예뻤던 여자가 자기보다 더 예쁜 여자에게 그 지위를 빼앗기는 과정이 얼마나 쏜살같이 진행되는지는 셰익스피어의 명작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도 여실히 드러납니다.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안에는 들어가지 않습니다.

원수로 지내는 두 집안의 반대에 부딪힌 청춘남녀가 사랑에 빠져 목숨마저 버리는 이 비극적 사건이 어째서 4대 비극 안에는 들어가지 못한 것일까요? 플롯의 외형만 보면 비극의 요소를 다분히 띠고 있지만 막상 읽어보면 안 그렇습니다. 이 작품에서 절망이 차지하는 지분은 그야말로 제로. 전혀 없습니다.

작품을 시작하는 방식부터가 그렇습니다. 극작가 셰익스피어는 이 작품을 소설이 아닌 희곡으로 집필했습니다. 막이 올라가면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인물은 로미오도 줄리엣도 아닌 ‘해설자’입니다.

(전략)

그들은 불운하고 불쌍하게 파멸하며

부모들의 싸움을 죽음으로 묻었도다.

죽음표가 붙은 이 사랑의 두려운 여정과

계속되는 부모들의 격렬한 분노를

자식들의 최후밖엔 아무것도 못 막는데
그 내용을 두어 시간 무대 위에 펼치오니

여러분이 인내하며 귀 기울여 주시면

여기서 잘못된 건 열심히 고쳐보겠나이다.

(퇴장)



셰익스피어는 해설자를 등장시켜 이 이야기가 결국 주인공 두 사람의 죽음으로 귀결될 것을 의도적으로 폭로합니다. 그로써 관객들은 죽음이라는 결과가 아니라 그들이 만들어가는 연애의 과정 하나하나에 포커스를 맞추게 되는 것입니다.

과연 그들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 관객들은 육체적 결말보다는 정신적 과정에 주목할 것을 다짐하며, 70%의 다크초콜릿을 혀로 녹이는 달콤쌉싸름한 러브스토리를 아무런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게 됩니다.

이 작품은 불과 5일 동안에 일어난 일을 다루고 있습니다. 1일차 만남. 2일차 둘만의 결혼. 3일차 로미오의 살인. 4일차 야반도주. 5일차 죽음. 끝입니다. 비극적인 분위기라고는 조금도 낄 틈이 없는 익스트림 러브 하이웨이인 것입니다.

그러나 5일 짜리가 도달할 수 있는 사랑의 깊이는 어느 정도일까요. 이 작품에는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 주요 인물이 한 명 더 있습니다. 로미오의 첫사랑, 로잘린입니다.

줄리엣을 처음 만난 파티장에 갔을 때 로미오는 로잘린에 빠져 있는 상태였습니다. 1막에서 처음으로 등장할 때 로미오는 슬픔에 잠겨 있는데 그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못 얻어서’입니다. 여기에서의 사랑하는 사람은 로잘린입니다.

로미오는 친구인 벤볼리오를 향해 로잘린의 아름다움을 끊임없이 찬미하며 영원한 사랑을 맹세합니다. 파티장에 간 이유도 그곳에 로잘린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미녀를 보더라도 로잘린의 병풍에 불과할 것이라던 로미오의 장담은, 그러나 줄리엣을 발견한 즉시 산산조각 나버리고 맙니다.

"내가 사랑했었던가? 시각이여 부인하라
진정한 아름다움 이 밤에야 봤으니까"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예쁜 여자_그녀들의 4대 비극>이 드디어 출간되었습니다.




( YES24에서 주문하기 )

1983년에 출생한 자칭 “서른 살의 자유주의자”.
'유니크', '연애의 뒷면' 등 두 권의 책을 저술한 작가.
'미래한국', 'StoryK'를 포함한 각종 매체에 글을 기고하는 칼럼리스트.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