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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오키나와 (20)...사랑하는 사람을 보내야 할 때

이수는 그날 가네야마 순사가 이수에게 향하던 총구를 감나무에게로 향하게 한 건 감나무의 기력 때문이란 걸 가네야마가 화를 가라앉히지 못해 혼자서 괴성을 지르며 돌아간 뒤 금방 알아차렸다.가네야마가 이수에게 총질을 했다간, 경산군민들의 과격한 집단반발에 부딪칠 거라는 걸 인지하도록 한 것도 감나무의 기력 때문이란 걸 곧 바로 인지했다. 어쨌든 그날 감나무 덕택에 이수는 아직은 살아서 이렇게 오키나와에서 ‘감꽃향기’를 맡고 있지 않은가.

“이수씨, 우친향이 그렇게 좋아요?”

이수가 우친 바구니에 코를 박고 ‘감꽃향기’에 완전히 몰입해 있는 동안, 우타가 ‘우진’이라고 불리는 낡고 네모난 오키나와 밥상에 아침밥을 차려 들고 와서 환하게 웃으며 눈을 흘겼다.

<우타는 일본말로 ‘노래’라는 뜻이다. 정확한 발음은 ‘웃다’에 가깝다  사진 =이파 DB>

우타가 들고 들어온 우진에는 하얀 쌀밥과 두부를 띄운 해조류 탕, 그리고 야채들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매일 바구미 섞인 현미밥만 먹느라 소화시키기 어려웠던 그는 백미 밥을 보자 체면 차릴 틈이 없었다.

“잘 먹겠습니다!”

이수는 왼손으로 밥그릇을 들고 오른 손으로 젓가락을 휘저으며, 밥을 국물 삼키듯 단숨에 비웠다. 그가 밥 먹는 방식과 속도를 유심히 지켜보던 우타는 얼른 부엌으로 달려 나가서 밥 한 그릇을 더 담아와 상 위에 놓았다.

“이수씨, 제발 천천히 드세요”

이수는 언제나 식물채집을 하러 바삐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조갈증 때문에 늘 밥을 다급하게 물에 말아먹었으며, 그때마다 어머니는 “제발 천천히 먹어라”라고 간청하곤 했다. 근데, 그렇게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삼켜대던 이수의 식사속도도 이곳 오키나와에 끌려와선 밥을 천천히 먹는다는 이유로 여러 번 밥그릇을 빼앗기거나 기합을 받았다. 그런 이수에게 우타가 “제발 천천히 먹어라”고 충고하자 갑자기 마음이 울컥해지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는 “천천히 먹어라”고 충고할 사람을 죽을 때까지 다시 못 만날 줄 알았다. 아니, 죽기 전에 밥상에 놓인 하얀 쌀밥을 다시 먹어보진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흰 쌀밥이 놓인 상을 앞에 두고 천천히 먹으라는 충고까지 듣다니.그런 충고에도 불구하고 이수는 짠 눈물이 밥그릇에 떨어질 틈을 주지 않고 어느새 두 번째 밥그릇까지 깨끗이 다 비운 다음 상위에 젓가락을 소리 나게 탁 내려놓았다.

<이수가 먹은 것과 비슷한 오키나와식  밥상. 사진=이파>

“근데…우타, 이 우친은 다 어디서 난 거지?”

“아, 이거요. 우리 고모부가 재배한 거예요. 고모부는 모토부에서 우친 농장을 운영해 관납해왔거든요. 올핸 전쟁 때문에 관납을 하지 못하고 저쪽 헛간에 많이 보관해놓은 걸 고모가 말리는 중이에요…실은, 우리 아버지도 자마미에서 우친을 재배했어요.”

“그래? 아, 그래서 우타가 항상 우친을 몸에 지니고 다니는구나. 그런데, 아버지는 지금 어디 계시는데?”

“우리 아버지요?…석 달 전…티니안섬에서 전사했어요”

이수는 뭔가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에 손을 댔는데 돌이키려 해도 그 땐 이미 늦어버린 실수했을 때와 똑 같은 심정이 몰려왔다. 아니나 다를까, 그렇게 웃음기로 가득하던 우타의 눈이 점점 물기로 젖어들더니 그 귀여운 얼굴이 어그러지면서 딸꾹질하듯 어깨를 들썩였다.이수는 어쩔 줄 모르고, 또 어쩔 수 없어서 간신히 우타의 어깨를 팔로 감싸 안아 자기의 볼로 우타의 볼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우타의 눈에선 물기가 샘물처럼 끝없이 솟아올랐다.

“근데, 이수씨…이수씨에게 정말로 미안한 일이 생겼어요.”

“응?, 무슨?”

“저, 일주일 뒤에 여기 나하를 떠나야 해요.”

“뭐라고?…어디로 가는데?

“오늘 아침 일찍 이수씨가 일어나기 전에 하에바루야전병원에 함께 근무하는 친구가 다녀갔는데…제가 자마미섬으로 발령이 났데요. 거기에 주둔하고 있는 해상정진대 부상병들을 간호하라는 명령을 받았어요.”

“…그렇다면 우린 이제 다시 만나지 못하는 거야?”

“아뇨, 그렇진 않아요…제가 모레 오후 이수씨의 부대로 면회를 갈게요. 부대가 세키도쿠고녀에 있는 거죠?”

“응, 근데…우리 부대의 군부들은 면회가 안 되는데…”

“그야…방법을 찾아봐야죠…”

“아!, 이렇게 하면 되겠다. 우리 부대를 찾아와서 초병에게 이치카와 중대장을 찾아왔다고 말한 뒤, 중대장을 만나게 해주면 이시타 조장을 만나고 싶다고 얘기해. 그러면 면회가 될 거야”

“네, 그렇게 할게요.”

이수는 우타의 말을 덤덤히 듣는 척했지만 입술에서 조금씩 찌릿찌릿하게 쥐가 나더니, 그 쥐는 목 아래로 타고 내려가 가슴으로 옮겨 붙어 심장을 굳어버리게 했다. 완전히 굳어버린 그의 심장은 이수가 아무런 감정을 느낄 수 없게 만들었다.

감정이 배제된 몸뚱이 하나가 이젠 드디어 이 장소를 떠나야 한다. 무덤 속에서 만났지만, 함께 있을 땐 미치도록 좋았는데 이젠 떠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떠났다가 다시 만난다면 괜찮겠지만 앞으로 더 이상 만날 일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허망함’은 굳어버린 심장을 점점 더 파먹어 들어왔다. 푹 파인 심장으로 떠날 채비를 하자 우타는 자루에 우친 한 되박을 담아주었다.우친 자루를 어깨에 걸친 채 이수는 우타를 꼭 껴안으며 다시 한 번 물기로 질퍽한 그녀의 얼굴에 자기의 볼을 대고 미끈거리도록 비볐다.

그는 자루를 메고 고모집을 나서기 위해 마당으로 내려섰지만 발이 땅에 닫지 않아 허우적거렸고, 나뭇잎이 전혀 흔들리지도 않는데 귀에서 윙 바람소리가 들렸다.이때 앞마당 가쥬마루 나무 뒤편 화단에서 사람 키 두 배 높이의 나무 한 그루가 그에게 손짓을 했다. 텅 빈 심장으로 그 손짓에 이끌려 어정어정 나무에게 다가갔다. 오키나와 협죽도(Cerbera manghas)였다.

‘아니, 이런 위험한 나무를 집안에 심어놓다니…’

비틀거리던 이수가 그 나무 가까이 가서 잎을 만지려 하자 우타가 놀라며 달려 나와 손을 내저었다.

“이수씨, 잠깐만요. 그 나무에 손대면 안돼요”

“아, 이거…‘미후쿠라기’로구나”

“맞아요, 만지면 피부가 부르터요…우리 고모부가 약초에 관심이 많아서…화단에 이상한 나무들을 많이 심어놨어요.”

“그렇네…우타, 내가 이 열매를 좀 따가도 괜찮을까?”

“그럼요…아, 고모부가 말려놓은 미후쿠라기 열매가 더 있어요…근데, 이수씨, 이 열매를 먹으면 죽는 건 아시죠?”

“그럼, 자알 알지.”

방안으로 급히 달려간 우타가 말린 미후라기 열매를 기름종이 봉투에 넣어와 이수에게 내밀자, 이수는 그 열매가 든 봉투를 조심스럽게 접어 군복 아랫주머니에 신주 모시듯 집어넣었다. 대문을 나서며 고개 돌려 우타를 마지막으로 쳐다보았다. 그녀의 자세는 뼈 없는 동물처럼 곧 쓰러질 것 같았고, 그녀의 젖은 동공은 초점이 없었다.

이파(李波)...소설가. 태평양전쟁을 소재로 한 이 장편소설은 징용으로 끌려간 천재 식물학자와 오키나와 간호사의 애타는 사랑이야기다. 두사람은 일본군의 횡포와 미군의 폭격 틈바귀에서 한 사람의 생명을 더 구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한 포기의 산호를 더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건다. 이 소설은 필자가 15년전 일본에서 대학교수 하던 때부터 도쿄도서관들을 뒤지고, 오키나와 현지를 꾸준히 찾아가 취재해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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