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뱁새의 권유로 타임머신 다이얼을 2014년 7월10일로 맞춘다.
(자신이 KPGA 프로가 된 스토리를 이해하려면 꼭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 한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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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무슨 소린지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이날이 무슨 날이냐고?
뱁새가 장가라도 가는 날인가?
(그 정도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신나는 날이다. 사나이 한 번 내뱉은 말을 어찌 주워 담으랴!)
이날은 바로 뱁새가 처음으로 공식 대회에 나가는 날이다.

이날 USGTF 협회장배 골프 대회는 충북 충주시 킹스데일CC에서 열린다.
아직 이론 교육을 이수하지 못했어도 실기 시험을 통과한 사람은 협회장배에 참가할 수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은 뱁새는 앞뒤 잴 것 없이 신청한다.
하루짜리 대회로 협회 회원 중 136명을 선착순 마감하며 50등 안에는 들어야 참가비라도 건질 수 있지만 뱁새는 상금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명색이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인정받는 협회가 주최하는 공식 대회에 나간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쿵쾅쿵쾅 뛰는 뱁새는 얼마나 일찍 일어났는지 자신의 티오프 시간보다 3시간이나 일찍 클럽하우스에 도착한다.

불과 1주일 남짓한 사이에 코스를 이미 세 차례나 사전답사하고 테스트를 준비하느라 갈아놓은 칼이 녹슬지 않도록 날마다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 뱁새의 눈빛만은 피식자가 아닌 포식자(예를 들면 매?)의 그것이다.

사용하는 드라이버 모델명과 갖고 있는 볼 종류와 개수 등을 비치된 용지에 써 넣고 규칙을 준수하겠다는 서약에 사인하면서 뱁새는 ‘공식 대회란 이런 것이구나’하고 숨을 깊게 들이쉰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상황이라 뱁새는 화장실 세면대 옆에 있는 페이퍼 타올 박스를 열어젖히고 타올을 한 움큼 챙겨 손가방에 넣는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은 수건으로 그립을 닦아 봤자 소용이 없다.

페이퍼 타올이 최고다.

뱁새가 머뭇거리면서 살짝 비결을 공개하는데 ‘아예 페이퍼 타올을 그립에 돌돌 말아서 감고 치면 폭우가 쏟아지는 날에도 절대 미끄러지지 않는다’고 한다.
내기 골프로 잔뼈가 굵은 뱁새의 비결이니 백 퍼센트 믿어도 될 것이다.
(이렇게 페이퍼 타올을 그립에 감고 치는 것이 규칙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아주 나중 일이다. 뱁새가 영국왕립골프협회(R&A) 룰 스쿨 3단계 과정을 들을 때 R&A 경기 규칙 위원장에게 실제로 페이퍼 타올을 가져가서 보여주면서 물어봐서 얻은 답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골프장 화장실 다 털지 말고 적당히 쓸 만큼만 빼 가시기를!)

젖은 연습 그린에서도 왔다 갔다 부지런히 퍼터로 볼을 굴려보던 뱁새는 캐디가 출발을 알리자 일행과 함께 첫 홀로 이동하면서 바람막이 주머니에 넣어둔 페이퍼 타올을 만져보곤 든든해 한다.

첫 티에 있는 경기위원이 한 사람씩 이름을 불러 스코어 카드를 나눠주는 데 자기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동반자 이름이 적힌 것을 준다.

‘아 이것이 저번 테스트 때도 본 마커 제도구나’하고 뱁새는 익숙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마커란 경기하면서 상대방의 점수와 룰 준수 등을 감시하는 동반자이다. 예를 들어 ‘김용준이 최경주의 마커다’라고 하면 김용준이 최경주의 경기를 감시하는 것이다)

첫 홀은 우 도그렉 파4로 가로지르면 웨지로도 충분하지만 우측은 벼랑이자 해저드라 조금이라도 밀리면 티잉 그라운드에서 세번째 샷을 다시 해야 하는 낭패를 겪을 수 있다.

드라이버 그립이 아직은 젖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페이퍼 타올 없이 스윙을 하기로 한 뱁새는 인생의 첫 공식 대회 드라이버 샷을 페어웨이 안착을 목표로 하기로 하고 백 스윙을 부드럽게 했으나 어디서 욕심이 날아와 꽂혔는지 다운 스윙 순간에 무지막지하게 휘둘러 댄다.

특유의 “으악”소리를 지르는 뱁새.
볼이 밀리는데 흐린 날이라 저 끝에서 어찌 됐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누구를 탓하랴!)

동반자들이 티 샷을 마치기를 기다려 “잠정구를 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다시 티잉 그라운드에 선 뱁새는 조금 전의 의기양양하던 기세는 어디로 가고 눈빛이 약간 흐리멍텅 해 진 것이 꼭 산소가 희박한 높은 산에 올라간 사람 같다.
(참고로 ‘잠정구를 치겠다’는 의사를 동반자 중 적어도 한 사람 이상에게 분명하게 전달하지 않으면 원구는 분실구로 처리하고 이번에 치는 볼이 세번째 샷이 되고 만다. 예를 들어 ‘하나 더 치겠습니다’라는 말은 잠정구 의사 표시로 부족하다)
제 스윙을 다 하지 못해서인지 잠정구는 평소에 뱁새가 치는 볼처럼 시원하게 뻗지 못하고 힘 없이 그저 그렇게 날아가는 데 방향마저 왼편 벙커쪽이다.

카트에서 나는 듯이 뛰어내린 뱁새는 비에 젖어 저벅거리는 러프에서 튕겨져 나온 흙물이 바짓가랑이에 튀어 엉망이 되는 것도 개의치 않고 달려가 먼저 벙커부터 확인하는데 볼은 벙커 못 미쳐 러프에 묻혀 있다.

‘휴우! 다행이다’라고 생각하고는 원구를 찾으러 또 다시 뛰어가는 뱁새가 ‘제발 원구가 살아 있게 해주세요!’라고 평소에는 믿지도 않는 어떤 초자연적인 존재에게 기도까지 한다.

아직 익숙치 않은 골프장이라 뱁새가 원구를 한참 찾아 러프를 클럽으로 휘젓고 다니는데(이렇게 휘젓다가 실수로 볼을 건드리면 1벌타를 받는다는 사실을 당시 뱁새는 몰랐다는 소문이 있다. 나중에 레프리 스쿨을 졸업했다고 자랑을 자주 하는 뱁새가 진술을 거부해 소문의 진위 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어느 틈에 왔는지 캐디가 뱁새 주변에서 함께 서성이다가 “여기 있어요!”라고 외친다.
뱁새 눈에는 캐디가 천사로 보인다.

러프이긴 해도 남은 거리는 100미터도 안 된다.
웨지를 단단히 잡은 뱁새는 그린 앞에 있는 벙커에 빠지면 기껏 운이 좋아 산 것이 의미가 없어진다고 생각해 러프에서 치면 스핀이 덜 먹어서 평소보다 더 많이 굴러간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제 거리를 다 친다.
(거친 러프에서 샷을 할 때는 보통 때보다는 약간 더 단단하게 그립을 잡는 것이 좋다는 것을 뱁새는 경험으로 안다)

볼은 핀을 한참 지나쳐 내리막 10미터 정도를 남기고 있다.

죽다 살아 난 뱁새의 눈빛은 어느새 평정심을 되찾은 듯하고 심장 박동도 귀를 가슴 가까이 대보지 않고서는 쿵쾅거림을 느낄 수 없을 만큼 다시 느려져 있다.
다른 동반자들의 마크 자리를 확인하고 퍼팅 라인을 밟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돌아가서 마크를 하고 볼을 닦고 제일 먼저 퍼팅을 하는 뱁새는 가볍게 투 펏으로 홀 아웃 한다.

2번 홀은 티 샷은 내리막 세컷 샷 이후는 오르막이 파5인데 티 샷을 시원하게 한 방 보내 놓으면 투 온이 가능하다.

당시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뱁새는 첫 홀에서 낭패 볼 뻔한 일은 까마득하게 잊고 ‘잃을 것이 없으니 승부를 보자’라는 생각과 함께 티잉 그라운드에 선다.
주머니에서 누가 볼 새라(노하우가 공개될까 봐 걱정한 것이지 절대 룰 위반일지 몰라 그런 것은 아니다) 페이퍼 타올을 살짝 꺼내 그립에 묻은 빗물을 닦은 뱁새 어깨에는 점점 힘이 들어가고 스탠스 폭도 웨글링을 할 때마다 점점 넓어진다.
‘어깨 넓이보다 살짝 넓게 벌려야 한다’는 소신은 어디 가고 마오리족이 춤을 출 때 엉거주춤하게 서는 정도에 버금간다.

번개처럼 휘두르는 뱁새의 드라이버 샷은 ‘따앙’하고 스위트 스팟에 맞는 소리가 나며 빗속을 뚫고 멀리 날아간다.

이어 키는 작지만 체구가 육체미 선수처럼 단단한 동반자가 우산을 내려 놓고 샷을 하려는 찰라 비바람에 우산이 굴러가서 뱁새가 뛰어가 잡아 준다.
그가 시원하게 휘두르는 데 그립이 빗물에 미끄러졌는지 볼은 밀려서 멀리 오른쪽 숲으로 사라진다.

위원회가 나눠준 스코아 카드 뒷면에는 로컬 룰이 붙어 있는데 ‘2번홀에서 오른쪽으로 로스트 볼이 나면 제 자리에서 3구째를 쳐야 한다’라고 돼 있다.
뱁새도 눈 여겨 본 이 구절을 어느 틈에 읽었는지 마커가 언급하자 그는 경기위원을 불러달라고 한다.
‘바로 오른쪽 숲을 지나 공간이 있는 데 내 볼은 그 곳을 지나 숲 속으로 들어갔으니 그곳에서 해저드 처리를 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가뜩이나 비도 오는 데 서둘러 3구째를 치고 갈 것이지 뭐 하는 짓이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이 바닥 뉴페이스 뱁새는 아무 내색도 하지 못하고 우두커니 판정을 기다리고 있다.

경기위원이 와서 옥신각신 하는데 ‘볼이 저쪽 해저드로 들어가는 것을 봤냐’는 게 핵심이다.
눈빛만 독살스럽게 변했지 시력은 매와는 전혀 동떨어진 뱁새로선 의견을 낼 것이 없어서 돌아가는 꼴을 지켜 볼 수 밖에.

결국 잠정구를 하나 쳐 놓고 가서 나머지 선수가 플레이 할 동안 그 몸이 단단한 동반자는 숲으로 볼을 찾으러 나섰는데 잠시 후 볼 한 개를 손에 들고 나와서 ‘여기 있지 않냐!’며 근처에 드롭하고 한 벌타 먹고 세번째 샷을 날린다.

그 사이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더니 ‘쏴아’하는 소리가 귓전을 때리고 콧등을 타고 내려온 빗물이 입으로 들어와 ‘퉤퉤’하고 내뱉어야 할 정도가 된다.
뱁새의 바람막이를 뚫고 들어온 비는 순식간에 속옷까지 축축하게 적셔서 걸을 때마다 사타구니가 질컥거린다.

어느 새 젊은 동반자 한 사람은 검은 비옷을 꺼내 입는다.
비옷이 없는 뱁새는 신세가 처량하다.

(친선 경기 때야 비가 이 정도 오면 누가 라운드를 하리라고 생각하겠는가. 철수지)
질퍽질퍽한 그린 위를 저벅저벅 거리며 다녀야 할 판이다.

‘이래서야 어디 경기를 할 수 있겠나’라고 생각하는 찰라에
“카트로 들어 오세요. 잠시 경기 중단하랍니다”라는 캐디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린다.

휘장을 내린 카트 속은 초여름 날씨에 비에 젖은 사내 넷과 숙녀 한 사람이 내뿜는 숨으로 텁텁하다.
그 때 아까 숲 속에서 결국 볼을 찾아내 해저드 처리를 얻어 낸 동반자가 앞자리에서 뒤를 돌아보며 한 마디 한다.
“실례지만 담배 한 대 피워도 되겠습니까”라고.
‘이건 또 무슨 소리람’이라는 생각과 함께 뱁새가 눈살을 찌뿌리면서도 입에서는 엉뚱한 소리가 나온다.
“그러세요”

휘장을 반쯤 열어 젖히고 피는데도 담배 연기가 안으로 제법 새어 들어오는통에 목이 갑갑해진 뱁새가 ‘캑! 캑!’하고 낮은 기침을 해대자 그는 두어 모금 밖에 안 빤 장초를 포기한다.

그리곤 일행은 한참을 침묵 속에 보낸다.

“김프로님은 프로 된지 얼마나 됐어요?”
앞자리의 그가 별안간 던지는 질문에 ‘여기서 투 온을 시도 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날씨도 나쁘고 하니 끊어 놓고 웨지 샷으로 버디를 노리는 것이 맞을까’를 곱씹어 생각하던 뱁새는 문득 정신을 차리고 답을 한다.

“실은 저 지난 7월1일날 테스트 실기 통과했습니다. 아직 이론 교육도 이수하지 못해서 라이선스도 받지 못했는데 실기 시험만 통과해도 이번 대회에 참가할 수 있다고 해서 나왔습니다”라고.

이어서 내 뱉은 뱁새의 한 마디까지 더해서 뱁새 인생에서 가장 잘 한 답이 되는데 그것은 바로
“볼 친 지도 얼마 안 되어서 아무 것도 모르니 앞으로 연습 라운드나 모임에 빈 자리가 있으면 하시라도 불러 주십시오. 제가 선약만 없으면 언제든지 나가서 식사도 모시겠습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뱁새가 이렇게 얘기를 하자 그는 ‘세상에 이런 녀석도 다 있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보통 “프로 된 지 얼마나 됐냐”고 물으면 경력이 짧아도 “네, 조금 됐습니다”라고 속내를 밝히지 않는 것이 보통이라나.

그 동반자가 바로 나중에 뱁새의 사부가 된 김중수 프로다.

김 프로는 당시 USGTF 협회장배에서 두 번이나 우승한 경력을 갖고 있는 실력자이다.
KPGA 챔피언스 투어에서도 기라성 같은 고참 프로들 사이에서 자주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당시에 뱁새는 몰랐다.
그 앞에 앉아서 ‘매너 없이’ 담배 연기를 풍기는 그 사내가 누군지를.
자신은 이제 티칭 프로로서 첫 걸음을 내디딜 때니 누구에게든 겸손하고 배워야 한다고 일부러 생각한 것도 아니지만 평소의 겸손함(?)이 배어 나온 말에 김중수 프로는 뱁새를 마음에 담았다고 한다.
폭우는 그 때부터 한 시간 넘게 그치지 않았고 급기야 퍼팅 그린이 잠겨서 경기를 진행할 수 없다고 판단한 위원회는 경기를 취소한다.

생애 첫 공식대회가 우천으로 취소된 것에 대해 뱁새는 "아이, 하필 오늘!"이라고 내뱉으면서도 곧  '휴우'하고 한숨도 내쉬는 폼이 물에 빠진 생쥐꼴은 면했다고 안도하는 눈치다.

뱁새는 카트를 돌려 클럽 하우스로 돌아오는 길에 그가 ‘수’자 돌림으로 ‘용’자 돌림인 그보다 항렬이 한 대 위인 종씨라는 것에서 왠지 모를 인연이 될 것 같은 느낌을 어렴풋이 가지면서 그의 연락처를 저장했다. ‘
‘광산 김 김중수 프로’라고.

김용준 프로의 골프학교 아이러브 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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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가 된 이후 첫 스폰서가 된 엑스페론 골프볼을 늘 보물처럼 자랑하는 김용준 프로. 퍼팅 갯수를 확실히 줄여준다고 장담한다.


필자인 김용준 프로는
고려대 경제학과를 나와 한국경제신문 기자로 몇 년간 일했다.
2000년 대 초 벤처붐이 한창일 때 소프트웨어 회사를 창업했으나 보기 좋게 실패했다.
호구지책으로 시작한 컨설팅 일에 제법 소질이 있어 넉넉해졌다.
다시 건설회사를 인수해서 집을 떠나 이 나라 저 나라에 판을 벌였다.
그러나 재주가 부족함을 타의(他意)에 의해 깨달았다.
그래서 남보다 조금 잘하는 골프에 전념해 지금은 상당히 잘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다 독학으로 40대 중반에 KPGA 프로 테스트를 통과해 프로 골퍼가 됐다.
그래서 주위의 부러움을 사고는 있다.
그렇지만 아직 50살이 되지는 않아 KPGA 챔피언스투어(시니어투어)에는 끼지 못하고 영건들이 즐비한 2부 투어에서 고전하며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언젠가는 투어에서 우승하겠다는 꿈을 꾸며 열심히 골프를 수련하고 있다.
골프학교 아이러브골프를 열어 아마추어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입장으로 연민을 갖고 레슨도 하고 있다.
또 현존하는 가장 과학적인 골프볼인 ‘엑스페론 골프볼’의 수석 프로모터로서 사명감을 갖고 신나게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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