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여자'를 말한다(30) 마가렛 대처는 예뻤다

북한 문제가 엄중하게 돌아가는 한편으로 또 한 가지 중차대한 것은 경제 문제다. 고강도의 세무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대기업 CEO들의 연봉을 공개하겠다는 얘기도 들린다. 박근혜 정부가 지향하고 있는 것이 '경제 민주화'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런 가운데 지난 8일 유럽에서는 큰 별 하나가 졌다. 마가렛 대처(1925~2013)의 사망이다. 1990년 영국 보수당 의원들의 비밀투표에 의해 총리직에서 내려온 후 23년. 사인은 뇌졸중이었다. 치매 증상을 보이기도 했던 그녀는 작고한 남편을 찾는 언행으로 안타까움을 사곤 했었다.

전성기 때 그녀의 모습은 안타까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언제나 강인했고 실천적이었다. 만약 '경제 민주화'라는 말이 영국에도 있었다면 그녀는 조금의 고민도 없이 그 말의 반대편에 가서 섰을 것이다. 다음은 그녀가 남긴 말이다.

"생각을 조심해라. 말이 된다.
 말을 조심해라. 행동이 된다.
 행동을 조심해라. 습관이 된다.
 습관을 조심해라. 성격이 된다.
 성격을 조심해라. 운명이 된다.
 우리는 생각하는 대로 된다."

실로 그녀는 자유주의 경제사상의 옳음을 통찰하고 그 신념을 평생 관철했다. 대처 사후에 그녀의 죽음을 비아냥거리는 사람이 상당히 많았던 것으로도 알 수 있듯, 그녀의 신념은 어떤 사람들에게 상처가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그것이 대처의 위대함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아요. 느끼기만 하죠.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문제가 뭔지 알아요? 유권자의 기분만을 신경 쓰는 사람들에게 지배당해야 한다는 거예요."

'신념의 아이콘'이었던 그녀는 정작 어린 시절 수줍은 성격이었다. 옥스퍼드 재학 시절 그녀의 유일한 위안은 혼자 산책을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엄격한 부모 밑에서 자란 가풍이 홀로 사색하는 버릇을 만든 셈이다. 이것이 결국엔 그녀의 성공 비결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철의 여인' 마가렛 대처에겐 일반적 의미로서의 여성성이 전혀 없었을까? 천만의 말씀. 그녀는 '옷'을 통해서 가장 효율적으로 '권력'을 표현한 여성 정치인으로 남아 있다. 참여하는 행사의 성격이나 시점에 맞춰 옷의 색깔이나 머리 스타일을 조절했던 것이다. 한때 대처를 다각도로 연구했던 것으로 알려진 박근혜 대통령도 요즘 이 부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듯하다.

사람들의 이목이 어찌나 그녀의 패션에 집중되었는지 대처와 영국여왕 엘리자베스 2세는 마치 여성성을 두고 경쟁하는 것 같은 구도를 만들어 낸다. 둘의 사이는 꽤 껄끄러웠던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한참 활동하던 당시에 대중들의 시선이 대처 쪽으로 좀더 쏠리는 것까진 어쩔 수가 없었을 터다. 다음은 프랑스 대통령 미테랑이 그녀를 두고 남긴 말이다.

"그녀는 칼리굴라의 눈과 마릴린 먼로의 입술을 가졌다."

마릴린 먼로라고 하면 예쁜 여자의 대명사 같은 존재다. 다만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어떤 남자에게도 전폭적으로 지지받지 못한 채 외롭게 세상을 떠난 먼로의 삶은 대처의 삶과 판이하게 다르다.

마릴린 먼로가 불안하고 파괴적이고 고독할 때, 대처는 확신에 차 있었고 생산적이었으며 대중들의 존경을 받았다. 먼로와 같은 일반적인 방식은 아니었지만 대처도 대처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을 이 세상에 떨쳤다. 그녀로 인해 영국이란 나라까지 아름다워졌다. 이 아름다움을 한국에 이식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마가렛 대처는 마가렛 대처만의 방식으로 예뻤다.
그녀가 없는 지금, 그녀의 아름다움이 더욱 희소하게 느껴진다.
마가렛 대처의 명복을 빈다.


"언제나 화려했지만 언제나 혼자였다"
이원우 신간 <예쁜 여자> 2013년 7월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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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에 출생한 자칭 “서른 살의 자유주의자”.
'유니크', '연애의 뒷면' 등 두 권의 책을 저술한 작가.
'미래한국', 'StoryK'를 포함한 각종 매체에 글을 기고하는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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