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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오키나와 (19)...사람을 살린 감나무

이수는 우타 고모네 안방에 썰어놓은 우친을 한입 가득 물고 씹으면서 눈을 현미경처럼 들이대고 우친을 하나하나 들여다보았다. 오늘 보니 오키나와 우친은 인도산 울금보다 노랑빛이 덜 짙어 우친 뿌리 속 색깔이 ‘감꽃’과 비슷하다는 걸 깨달았다. 우친의 노랑색이 ‘감꽃색’이라고 느끼는 순간, 우친 속에서 느닷없이 감꽃 향기가 진하게 풍겨져 나오는 바람에 이수는 차츰 감꽃향기와 우친향기를 구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지금, 계절이 초가을이니까 반도의 감나무에 달린 감들이 아직은 초록색이겠지만 이런 곳으로 감꽃 향기를 이끌어 올 수 있는 건 바로 이 우친이 가진 특별한 기력 때문이 아닐까?’

이수가 어렸을 때, 늦봄 새벽 사랑채에서 잠에서 깨 조용히 누워있으면 감꽃 떨어지는 소리가 “탁탁”하고 창호지문 너머에서 들렸다. 박자가 일정하지 않은 그 소리는 감나무가 들려주는 담백한 노래였는데, 기다리면 들려주지 않고 기다리지 않으면 또 실컷 장단을 쳐대는 별난 고집을 가진 감나무의 새벽노래를 이수는 혼자서 맘껏 즐겼다.

그는 부스스 일어나 이슬내리는 감나무 아래로 가서 감꽃을 하나하나를 부서지지 않게 주워 나락회기에 차례로 꿰어 감꽃목걸이를 만든 다음, 감꽃을 떨어뜨린 돌감나무의 맨 아래쪽 가지에 그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노래를 잘 불러준데 대한 선물이었다.

 


홍시가 되기를 기다리는 감들. / 사진=이파

 

사랑채 앞 그 키 큰 돌감나무는 봄엔 감꽃 노래를 들려주다가, 여름엔 파란 생감을 그의 어깨나 발등에 떨어뜨리기도 했다. 그 감나무는 찬바람이 불어와도 이파리의 색깔을 계속 짙은 초록빛으로 고집하다가 감들이 홍시로 익어버린 늦가을 어느 하루 낮, 감나무는 아무도 예상치 못하게 이파리 위에 주황색으로 야수적인 그림을 조급하게 그린 뒤, 세찬 소나기바람 한 번 불면 주룩 옷을 벗어버리곤 했다.

추워지면 옷을 벗어버리는 감나무의 어긋난 성격은 홍시의 빛깔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었다. 이수는 이 땅위의 모든 나무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각각의 성격을 가졌고 ‘영혼’을 가졌다고 믿었으며, 식물의 성격은 동물보다 아니 사람보다 더욱 특성화되어 있고, 생존을 위한 지혜를 더 많이 가지고 있다는 걸 잘 알았다.

더욱이 사람수명보다 더 오래 산 나무들은 사람의 두뇌를 능가하는 지혜를 가졌다는 사실을 살면서 수없이 경험해왔다. 이수는 감나무 이외에도 참 많은 나무들과 친했는데 실제로 ‘사람친구’는 대여섯 명 정도인데 비해 대화를 나누는 ‘나무 친구’는 오십 명이 넘었다. 그럼에도 오키나와에 끌려와서 아직까지 한 그루의 친구도 사귀지 못한 게 안타까웠다.

이수 스스로는 잘 기억 못하지만 이수 어머니말씀에 의하면, 이수가 식물들과 얘기를 나누기 시작한 건 그가 걸음마를 겨우 시작할 때부터였다고 한다. 나이 세 살 때 대문 밖으로 걸어 나가 강아지풀이나 질경이에게도 말을 걸었고, 개망초 꽃잎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얘기를 나누다 결국 그 꽃을 뜯어 한입 가득 문 채 씹는 바람에 목이 막혀 기절하기도 했다고 한다.

소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이런 버릇이 더 극심해져 집에 돌아온 이수의 호주머니엔 언제나 풀잎, 꽃, 뿌리, 열매 등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한약방을 운영하면서 약초 탐구에 빠진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중학교 때 이미 식물연구에 목숨을 바치겠다고 각오했으며, 대학에 들어가기도 전 지리산 금강산 개마고원 등 반도에 있는 산속을 신발 닳도록 돌아다니며 채집한 식물표본집이 시골집 방 한쪽 벽면을 가득 채웠다.

일본의 식물학자 나카이 다케노신(中井猛之進)이 만들어놓은 ‘조선삼림식물’을 섭렵하고, 그가 발견하지 못했던 반도식물들을 채집하는데 힘을 쏟았고, 독성식물에 대한 관심이 커서 그가 채집해 숨겨둔 독성식물의 양은 수백 명의 목숨을 앗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가 도쿄제국대학 식물학과에 입학했을 땐 이미 조선과 일본의 임야에 자라는 식물의 분포와 성분에 대해 거의 습득하고 있었고, 그래서 대학본부는 그가 ‘식물표본실’ 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대학을 다니도록 배려해주었다.

이는 식물성분 분석방법을 개척한 식물학자이자 이치카와 중대장의 사촌형인 이치카와 히데오 연구교수가 그를 조수로 추천한 덕분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수가 지금 겪고 있는 이 태평양전쟁은 식물학자인 그를 오키나와 나하에서 군수품을 나르는 노예 잡역부로 전락시켜버렸다.

이수는 썰어놓은 우친 서너 편을 다시 입에 넣고 왈칵왈칵 씹자 드디어 우친의 ‘맛’도 감꽃을 씹을 때의 그 떫은맛을 띠었으며 그 떫은맛은 이수의 혼을 조선 반도로 완전히 이송시켜버렸다. 이수가 도쿄제대를 다니면서 방학 때 도쿄에서 경산으로 건너가면, 스키시로 경산군수와 가토 곡물배급조합장, 한타 금융조합장 등이 이수의 집을 찾아왔다.

다케시타 경찰서장까지도 인근에 볼일이 있어 지나가다 들렸다며, 이수의 집을 찾아와 도쿄의 정세에 대해 물어보곤 했다. 이들 관료들이 이수를 찾아오는 건 일본 본토에서 일어나는 사건 가운데 미심쩍은 사건에 대해 물어보고 싶은 것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일본에서 제국대학을 다니는 서이수가 언젠가는 갑자기 고급관료가 되어 일본도를 차고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이수의 전공이 식물학이란 건 모르고 있었고, 그저 경산출신 인재가 도쿄에서 제국대학을 다닌다니 앞으로 정세가 어떻게 급변할지 모르는 만큼 이에 대비를 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판단 때문에 이수네 집을 거듭 찾아오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쨌든 이수는 집에 찾아오는 관료들을 항상 사랑채로 모셔서 사랑마루에서 큰절을 올려서 그들이 안심하고 빨리 돌아가게 했다.

하지만 그야말로 사태가 급변했다. 그렇게 이수를 과할 만큼 받들어주던 경산군 관리들이 태평양전선에서 일본군이 미군에게 파죽지세로 밀린다는 첩보가 전해지자 빠릿빠릿한 가네야마 순사를 앞세워 이수가 징병에 응할 것을 종용하기 시작했다.

제국대학에 다니는 대학생을 징병으로 내보내게 하면, 이 지역 관리들은 경성총독부로부터 확실하게 충성도를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수가 계속 징병에 응하지 않자 가네야마 순사는 세번이나 이수를 찾아와서 설득하고 또 빌었다. 그래도 이수가 받아주지 않자 이번엔 ‘응징사 징발’이라는 징용소집 명령이 하달되자마자 이수에게 징용에 참여해줄 것을 종용했다. 지난 6월 17일 이수를 왜 설득하지 못하느냐고 상부로부터 심한 꾸중을 들은 가네야마 순사는 조선인 앞잡이를 앞세워 이수의 집을 찾아와 사랑채 앞에서 핏대부터 올렸다.

“천황께 충성을 다하려면, 경산군의 모범청년인 당신이 먼저 ‘영미귀축’을 응징하는데 앞장서야만 해요.”

가네야마의 고함소리에도 이수가 본척만척하자 가네야마는 총을 벗어들더니 개머리판으로 이수의 옆구리를 툭툭 치며 협박해댔다. 평생 다른 사람 앞에서 큰소리 쳐본 적이 없는 이수는 그의 지나친 행동에 갑자기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이수는 벌떡 일어서서 가네야마 순사의 모자를 확 벗겨 사랑방 앞마당에 내동댕이 쳐버렸다.

그러자 가네야마는 얼굴을 붉히며 어깨에 멘 총을 벗어 이수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려 했다. 하지만 이수에게 총을 겨누던 가네야마 순사가 총구를 되돌리더니, 이수 대신 아직 파란 감이 잔뜩 달린 돌감나무를 향해 ‘탕탕탕’ 3발을 갈겼다.

이파(李波)...소설가. 태평양전쟁을 소재로 한 이 장편소설은 징용으로 끌려간 천재 식물학자와 오키나와 간호사의 애타는 사랑이야기다. 두사람은 일본군의 횡포와 미군의 폭격 틈바귀에서 한 사람의 생명을 더 구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한 포기의 산호를 더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건다. 이 소설은 필자가 15년전 일본에서 대학교수 하던 때부터 도쿄도서관들을 뒤지고, 오키나와 현지를 꾸준히 찾아가 취재해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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