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얗고 둥근 물체만 봐도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골프 마니아라면,한 번쯤 이런 의문이 들 것이다.골프를 시작한 것도 비슷한 초등학생 언저리이고,공부는 제낀 채 샷연습에만 일도매진한 것도 비슷한데 같은 K골프 남녀 프로들이 받아든 성적표가 확연하게 다르니 그럴수밖에 없다.
올 시즌 해외 투어 성적만 놓고보면 K골프의 ‘여고남저(女高男低)’ 현상은 뚜렷하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23개 대회에서 13개 대회를 쓸어담았으니 승률이 57%다. 12번 준우승에 그쳤던 스테이시 루이스의 82전83기 부활이 아니었더라면 쉼표없이 6연승까지 내쳐 달릴 수 있었던, 말 그대로 ‘코리안 스윕(korean sweep)’에 다름아닌 폭풍 질주다. 일각에선 “6승까지 갈 경우 한국 선수의 LPGA 독점 논쟁이 촉발될 수 있다는 걱정이 있었는데,어찌보면 각본처럼 잘 짜여진 마무리였는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다.
한 골프팬의 말이다. “준우승만 다섯 번 한 전인지의 아쉬움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상금전액을 태풍 피해를 입은 고향 주민들에게 희사하겠다며 집념을 불태운 루이스를 제압했을 때의 후폭풍을 생각하면 차라리 동화처럼 대회가 끝난게 잘 된 것 같다.”
너무 잘하는 게 걱정이다보니 나오는 얘기들이다. ‘숨고르기’가 되레 반가울 정도가 된 것이다.

미국 뿐만이 아니다.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역시 K골프 랠리가 뜨겁다. 올 시즌 26개 대회가 치러진 가운데 11승이 한국낭자들의 차지가 됐다. 올해 일본으로 건너간 안신애나 윤채영까지 우승권을 들락거리고 있어 K파티는 당분간 계속될 공산이 크다. 1985년 고 구옥희 프로의 첫 승을 시작으로 벌써 200승을 넘어선 게 일본 무대를 접수한 한국 골프다.
반면 남자골프는 미국,유럽,일본 투어를 다 합쳐야 올해 3승이다. 올 시즌 김시우의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1승과 왕정훈의 유럽투어(EPGA) 1승,류현우의 일본투어(JGTO) 1승이 전부다. 한국계인 김찬이 일본에서 2승을 올린 것을 더해봐야 5승을 넘지 못한다.
여자선수들에겐 ‘실로 좁은 바늘귀를 꿰다가’습득한,혹은 ‘불꺼진 방에서 떡을 썰다’곱쌓인 ‘손감각 DNA’라도 있는 것일까. 한 KPGA 투어 프로는 남녀 절대 비교에 반기를 든다.
“같은 민족인데,남녀 재능이 다르다는 건 말이 안되죠. PGA와 LPGA의 급이 아예 다르다는 걸 봐야 해요. PGA는 정말로 전 세계 최고의 남자 골퍼 수천만명 가운데 챔피언을 가리는 거라면,여자 선수는 인기가 좀 떨어지고,선수층도 얇은 여자 골퍼 중에서 챔피언에 오르는 거라 (우승이) 상대적으로 쉽다고 봐야죠.”
풀어 얘기하자면 한국 남자들은 국가대표들이 메이저리그에서 박터지게 경쟁하는 반면,여자 선수들은 같은 국대들이지만 마이너리그에서 손쉽게 우승컵을 들어올린다는 항변이다.
그럴듯하다. 하지만 한국보다 한 수 아래로 여겨졌던 일본의 마쓰야마 히데키를 빼놓을 때야 더 설득력을 얻을 것 같은 것도 사실이다. 올 시즌만 3승, 통산 5승을 수확해 세계랭킹 3위까지 치고 올라간 일본 남자 선수가 있다면,한국 남자선수들도 ‘노는 물’ 탓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체격적 불리도 더이상 얘깃꺼리가 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마쓰야마 히데키는 180cm에 불과하다. 2m에 가까운 거구들이 득실대는 PGA 투어 평균 신장을 감안하면 아담한 사이즈다.
좀 더 현실적으로 들리는 이유는 따로 있다. 한국 남자 프로 골프 스타의 부재와 팬들의 무관심,그리고 스폰서 시장의 침체다. 한국 남자골프는 원조 ‘K브러더스’인 최경주와 양용은으로 시작해 김경태,배상문으로 명맥이 이어졌다. 뿐만 아니라 노승렬,김시우 등이 잇따라 PGA정복에 성공하면서 그 뒤를 제대로 떠받쳐 주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최경주는 2011년 플레이어스챔피언십 우승 이후 6년간 우승이 없다. ‘타이거 킬러’ 양용은 역시 2009년 아시아인 최초로 메이저 대회 PGA챔피언십을 제패한 후 감감 무소식이다. 2010년 일본 투어에 데뷔해 7년간 13승을 거둔 김경태는 PGA급으로 성장하지 못한 채 일본 무대에 주저앉는 듯한 모양새다. 노승렬도 3년째 승수를 쌓지 못하고 있다.그나마 막내 김시우가 제5의 메이저 플레이어스챔피언십을 제패하지 못했다면 K골프의 면조차 세우기 힘들 뻔했다는 말도 나온다.
KPGA 2부 투어를 뛰고 있는 한 프로는 이렇게 항변한다. “남자선수들의 자질과 기량은 세계수준으로 손색이 없든데,이를 익히고 다듬을 대회가 많지 않다는 게 문제”라며 “국내 투어가 여자대회 수준만큼만 있어도 해외 투어에서 우승할 만한 샷감각을 유지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한 대기업의 마케팅 담당 임원의 생각은 또 다르다. “시장 논리로 보면 당연한 결과에요. 당장 눈앞에서 여자 선수들이 번쩍번쩍 트로피를 들어올리고, 미모에 실력까지 갖춘 젊은 선수들이 어른 거리는 데 누가 남자선수와 남자대회에 관심을 갖겠느냔 거죠. 실력을 먼저 갖춰야 후원을 하죠.”
한마디로 스타부재-인기 하락-시장 소외-스폰서 철수-스타부재 라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구조다.
이런 남자골프 시장에 변화가 감지된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무엇보다 더이상 남자골프가 추락할 여지는 많지 않아 보인다는 얘기들이 많다. 바닥을 친 게 아니냐는 얘기가 곳곳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우선 대회수와 상금이 사상 최대인 19개,140억원으로 대폭 늘었다. 올 가을에는 국내 최초로 PGA 정규 투어가 제주도에서 열린다. 여기에 참가할 수 있는 국내 선수들을 뽑는 시드전 성격의 대형 대회가 하반기에 집중돼 있다. 팬들의 관심이 커질 수밖에 없는 시점이다. 지역투어로 신설된 DGB대구경북오픈 대회에는 예상을 깨고 1만명이 넘는 갤러리들이 북적댔다.
때마침 KPGA 협회의 변신 노력도 눈에 띈다. 선수중심 협회를 소비자 중심,즉 갤러리 중심으로 바꾼 홈페이지 개편이 단초다. KPGA 관계자는 “이전엔 선수들에게 대회 출전을 안내하는 정보들이 주를 이뤘다면 새로 만든 홈페이지에는 선수들의 샷 지표같은 다양한 통계정보가 보강돼 보는 재미가 있게 했다는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협회는 어프로치에 관한 데이터만해도 5야드 단위로 끊어 숏어프로치와 롱어프로치의 실력차이까지 보여주는 PGA 투어 데이터를 목표로 삼아 홈페이지를 ‘정보의 보고’로 만들어 나갈 방침이라고 한다.
선수들에게 세계최초로 CRPK라는 위성위치추적장치를 부착해 대회 경기 도중 남은 샷 거리를 중계방송으로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시스템을 도입한 것도 변화를 위한 노력의 산물로 읽힌다.
마침 군복무를 마친 배상문이 오는 10월 개막하는 2017~2018 PGA 시즌 개막전에 나설 예정이다. 10월 제주도에서 개최될 CJ컵나인브릿지 대회에도 저스틴 토머스,마쓰야마 히데키 같은 세계적 선수들이 출전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래저래 하반기가 한국 남자골프의 중흥 여부를 판가름할 변곡점이 될 모양이다.
한국경제신문 레저스포츠산업부 골프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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