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여자'를 말한다(22) 
'예쁜 여자는 '3등'과 연애한다'

예쁜 여자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가 바로 ‘그녀의 옆에는 1등 남자가 선다’는 명제다. 정말 그럴까? 예쁜 여자란 남자가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반열에 올랐을 때 거머쥘 수 있는 트로피일까? 현실은 전혀 그렇지도 않고 그럴 수도 없다는 것을 지금부터 논증하려고 한다.

-전제1- 세계는 지나치게 복잡하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스마트폰은 50년 전 미국의 대통령들이 사용하던 갖가지 정보통신 도구들의 총합보다 우수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일면 신나는 일 같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참 얄궂은 일이다. 이 엄청난 도구를 손에 넣고도 여전히 우리가 갈증을 느낀다는 사실이 말이다. LTE폰의 압도적인 속도에 입을 헤 벌리고 있는 우리는 정말이지 만족을 모르는 존재들이다.

스마트폰과 관련된 욕구는 우리가 얼마나 극단적인 복잡성 안에 들어와 있는지를 드러내 보여준다. 수많은 지식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에선가 생성되고 있고 우리는 그 흐름을 따라가는 시늉이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디지 못할 지경인 것이다.

양보다 질이라고? 아니다. 질보다 양이라고? 틀렸다. 지금은 높은 퀄리티의 결과물이 많이 나와야 하는 양과 질의 시대다. 한 마디로 끝없이 바빠져야 한다는 의미다. 있는 힘껏 바빠져도 겨우겨우 템포를 맞출 수 있는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복잡월드’의 실체다.

-전제2- 연애는 소비다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것에 완벽하게 적응한 사람은 자신의 모든 가치를 생산 활동을 기준으로 배열한다. 쉽게 말해 일하기 위해 산다는 얘기다.

프로야구에서 꼴찌 팀들을 잇달아 최고의 반열에 올려놓으며 야신(野神)이라는 별명을 얻은 김성근 감독의 책에는 그가 어느 정도로 워커홀릭인지를 드러내는 에피소드가 실려 있다.

나는 자동차 운전면허가 없다. 야구에만 빠져 살아서 어느 순간 생각에 몰두하면 잘못 하다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SK에 있을 때 시합에서 진 날,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길가 화단으로 고꾸라진 일이 있었다. 야구 생각하다가 눈앞에 길도 제대로 못 본 것이다. 나이 든 남자가 갑자기 화단을 들이받았으니 사람들이 쳐다볼까봐 얼른 일어나서 뒤도 안 돌아보고 빨리빨리 걸었다.

- 김성근, <김성근이다(2011)>

이 정도 해야 1등이 될 수 있다는 게 복잡월드의 현실이다. 일하기 위해 산다는 말은 김성근 감독이 늘 입버릇처럼 하는 얘기기도 하다.

질문을 한 번 던져보자. 일하기 위해 사는 사람이 과연 연애를 할 수 있을까? 연애는 기본적으로 소비활동이다. 시간과 돈과 열정을 끊임없이 투입하는 활동인 것이다.

특히나 예쁜 여자와의 연애는 필연적으로 '과소비'를 유발한다. 일부러 노력하지 않아도 예쁘지 않은 여자보다 곱절의 소비를 유도하는 것이 예쁜 여자의 기본 속성인 까닭이다.

-소결론- 1등 남자는 연애할 수 없다.

결국 1등 남자가 연애를 한다는 말은 복잡월드에서는 틀린 명제가 되어버린다. 1등을 유지하기에도 너무 바쁘므로 연애할 수 없고, 연애를 하는 순간 1등의 지위에서 물러나게 될 가능성이 태반인 것이다.

예쁜 여자와의 연애라면 더욱 그렇다. 그녀에게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에 생기는 공백을 채울 수 있는 경쟁자가 복잡월드에서는 얼마든지 나타난다.

-전제3- 패배에 대한 태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복잡월드에서는 열심히 노력한다고 다 1등이 되지는 못한다. 작은 성공은 노력으로 가능하지만 큰 성공에는 결국 운이 따라줘야 하는 법. 요즘 세상에 열심히 안 하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노력하지만 저마다 다른 결과를 가져간다.

재미있는 것은 패배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사람마다 다르다는 사실이다. 세상만사가 운에 좌우된다는 걸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패배도 산뜻하게 받아들인다.

진인사대천명이라는 말도 있듯이 막판에 가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걸 아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의 패배를 덧없는 자책이나 비관주의로 연결시키지도 않는다.

그런 한편 패배를 끝끝내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흥미로운 것은 학력이 높고 지적 수준이 깊은 사람일수록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이는 세상이 돌아가는 메커니즘을 이성과 논리로 설명하려는 기질과 관련이 깊어 보인다. 어떤 일에 있어서든 적합한 이유가 있어야만 납득하는 사람이 불운에 의한 패배를 받아들이기란 매우 힘들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매우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 있다. 후자의 경우, 그러니까 운이 터무니없이 큰 부분을 차지하는 세상만사에 화산처럼 분개하고 불합리한 인간제도의 개혁을 외치는 사람은 자칫 염세적인 성향을 띠게 되어 예쁜 여자와의 연애 사정권으로부터 완벽하게 벗어나 버린다는 사실이다.

예쁜 여자와의 연애는 아무리 생각이 없는 바보라도 온 마음을 소진할 만큼 비탄과 절망의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혼자 있던 시절부터 비관주의에 빠진 사람이었다면? 그런 사람은 예쁜 여자와 '마주칠' 수는 있어도 결코 연애를 할 수는 없다.

-전제4- 예쁜 여자와의 연애는 본질적으로 ‘패배’다

예쁜 여자는 시야가 좁고 자기밖에 모르는 존재들이다. 게다가 수많은 남자들을 상대해 왔기 때문에 남자 쪽에서 아무리 혼신의 힘을 다한 발악을 해도 참신한 인상을 남기기 힘들다.

예쁜 여자는 하나의 거대한 불가항력인 바, 그런 사람을 앞에 두고 있으면 자신의 매력에 대한 무력함에 절망하고 끊임없는 패배감에 시달리게 된다. 본질적으로 예쁜 여자와의 연애는 끊임없는 패배의 과정인 것이다.

이렇게 되면 패배를 받아들이는 기질이 예쁜 여자와의 연애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어떤 승부에서 패배했다고 해서 자신의 존재 자체가 부정당했다고 느낄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알 만큼 지혜로워야 하는 것이다.

인격의 그릇이 이와 같이 담대한 사람이야말로 예쁜 여자와 연애할 수 있는, 그녀를 품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이다. 굳이 등수로 비유하자면 꼴등은 너무 심하게 무능해서 안 되고, 결승전에서 패배한 2등은 미련이 너무 많아 안 되고, 결국 3등정도 하는 남자가 예쁜 여자와 가장 어울린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결론- 3등정도 하는 남자가 예쁜 여자와 연애한다

그렇다고 해서 시작부터 3등을 목표로 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복잡월드에서는 3등을 목표로 하면 꼴등을 한다. 어디까지나 1등을 목표로 치열하게 도전하되 그 과정에서 수반되는 패배에 산뜻하게 대응하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아무리 발악을 해도 뿌리부터 보통 사람의 것과는 완전히 다르게 형성되어 버린 예쁜 여자의 세계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녀만의 세계 안에서 편안함을 추구하는 예쁜 여자의 삶 속으로 감겨들어가 끊임없이 져 주는 것. 그것만이 예쁜 여자와 연애할 수 최선의(혹은 유일한) 방책이다.

예쁜 여자와 연애하고 싶은가?
'3등 정도 하는 남자'가 되어라. (계속)
1983년에 출생한 자칭 “서른 살의 자유주의자”.
'유니크', '연애의 뒷면' 등 두 권의 책을 저술한 작가.
'미래한국', 'StoryK'를 포함한 각종 매체에 글을 기고하는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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