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Earth! 얼쑤! 세계속의 한류] 일본은 이미 한국을 잘 안다?

김현환 주일한국문화원장(동경)

 

일본에서 한국 문화를 알린다는 것은 결코 만만치가 않다. 한일 간에는 당장이라도 양국간의 관계를 급랭시킬 수 있는 민감한 사안들이 많고 양국관계가 편하지 않을 때 문화부분은 아무래도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일관계가 악화되면 당장 사업수익 등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교민만도 수십 만명에 달한다.

2년 전부터 주일한국문화원장으로 일하면서 새롭게 느낀 어려움은 ‘일본 사람들은 한국 문화를 이미 잘 안다’는 점이다. 코리아라는 이름만 겨우 알려진 나라에서 한국 문화를 홍보하는 것도 당연히 힘들 테지만, 한국의 웬만한 것은 다 알려진 나라에서 새롭게 관심을 끄는 아이템을 찾아내는 어쩌면 더 어려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밖에도 어려운 일이 많이 있지만, 최근 문화원 활동 중에서 그 어려움들을 극복하는 해법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된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바람직한 한일 관계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다.

지난 6월 22일 저녁, 국내에서도 화제가 된 ‘안숙선 명창의 작은 창극’이 도쿄 한국문화원 무대에 올려졌다. ‘작은 창극’의 해외 최초 공연이었다. 몇 달 전 공연 제안이 왔을 때, 안숙선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문화원은 반색을 했다. 직원들은 이 좋은 기회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앞다투어 내놓았다. 날짜는 한일국교정상화 52주년 기념일에 맞추되, 관객들이 공연에만 집중하도록 축사는 하지 말자, 공연 전에 판소리와 창극에 대한 설명을 일어로 해보자. 로비에서는 평창동계올림픽과 강원도 음식을 함께 소개해보는 것이 어떨까? 등등.

 

제대로 된 수준 높은 공연으로 새로움과 감동 선사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객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은 거의 대부분 일본인들이었는데도 공연 내내 웃음과 박수가 이어졌다. 우리 창극의 풍자와 해학을 충분히 따라잡은 듯했다. 공연에 초대 받아 온 일본 예술관계자들이 판소리는 여러 번 들었으나, 마이크도 사용 안하는 이런 형식은 처음 본다며 내게 계속 질문을 해왔다. 이것이다 싶었다. 한국 문화를 제법 안다고 생각했던 일본인이 ‘아, 내가 제대로 몰랐구나’라는 반응을 보일만한 수준 높은 공연, 그리고 섬세한 것까지 정성을 다한 기획에 관객은 분명 감동한다.

안숙선 명창 주일한국문화원 공연 장면

작은창극 토끼타령 중 용왕과 별주부

미래 한일 관계의 발전을 위해서, 일본 젊은이들에게 한국 문화와 한국인들의 생각을 제대로 알려 주고 싶으나, K-POP 행사 때 몰려오는 어린 팬들을 제외하고는 일본의 젊은이들을 문화원에 오도록 하기는 참 어렵다. 그래서 우리가 찾아낸 방법은 문화원 행사를 일본의 대학과 공동으로 기획하는 것이다. 작년에 와세다대학과 전시회를 공동 주최하여 와세다박물관의 한국 유물을 문화원에서 전시한 ‘와세다의 한국 미술전’을 개최하였다. 부대행사로 한국 고미술을 전공한 와세다대학 교수들의 강연회도 개최하였으니, 대학생들이 대거 참석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일본 대학과의 공동주최 행사 통해 젊은 일본인들 유입에 성공

매년 해오던 한국유학생 미술전시회를 개선하여 일본의 미술대학과 공동 기획하고, 일본 학생들도 참여하도록 하였다. 결과물도 훌륭하게 나와서 좋았지만, 더 보기 좋았던 것은 6개월 여 준비 과정 중에 양국 학생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던 모습이다. 전시가 끝날 때쯤 그들은 매우 친한 사이가 되어 있었다. 나중에 그들이 양국 문화예술계의 주역이 되어, 시작점이었던 문화원 행사를 즐겁게 회상할 지도 모를 일이다.

와세다대학과 공동 주최한 전시회

동경예술대학과 공동 주최한 전시회

얼마 전 일본인 몇 분이 문화원을 찾아왔다. 2001년 도쿄 신오쿠보역에서 일본인 취객을 구하려다 함께 목숨을 잃은 한국인 유학생 故이수현씨의 이야기를 담은 ‘가케하시(가교)’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는데 문화원에서 시사회를 하고 싶다 했다. 정작 한국에서는 故이수현씨가 이미 잊혀져가고 있는데, 일본 사람들이 왜 이 영화를 만들었을까. 부끄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이해가 안 가기도 했다. 아무튼 시사회를 즉각 수용했다. 내년엔 그의 기일에 맞춰 뭔가 같이 해보자고 약속도 했다.
시사회 때, 일본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훌쩍이며 눈물을 닦고 있는 것을 보며 생각했다. 따뜻한 인간애를 지녔던 한 청년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결코 다르지 않다고.

그렇다. 한일 관계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람들. 그들의 공통된 맑은 마음을 찾아내는 것, 그리고 문화를 통해 그 공감을 확산시키는 것. 매우 어렵지만 그것 또한 주일한국문화원이 해야할 일이다.

 

해외문화홍보원

재외 한국문화원장들이 현지에서 펼치고 있는 생생한 한국 홍보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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