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휴!’

퍼팅 그린으로 올라온 뱁새 입에서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볼이 놓인 자리를 보니 속된 말로 내리막 벼랑이다.

아무리 잘 떨어뜨려도 홀을 지나갈 수 밖에 없는 자리 말이다.

‘이런 *멍청이 같으니라고. 왼발 내리막 라이에서 한 클럽 덜 잡는 것도 모르고 니가 프로냐?’

자학을 해보지만 이미 벌어진 일.

(이런 *멍청이에서 ‘*’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여담이지만 스포츠 중에 규칙 책에 *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 것은 골프가 유일할 것이다. *이 무엇인지 바로 위 문장을 기초로 하면 짐작해 볼 수 있다)

 

맨 나중에 어프러치를 하고 그린에 올라온 전설은 2미터가 조금 넘는 내리막 라이에 놓인 볼을 말 없이 마크하고 집어 든다.

뱁새가 첫 홀부터 그 정도에 붙였다면 아마 호들갑을 떨었을 것이다.

 

이리 저리 왔다 갔다 하는 뱁새.

어디서 본 건 있어 가지고 그림 같은 컷 로브 샷(볼을 많이 띄우면서도 백 스핀을 한껏 먹여 최대한 덜 구르게 하는 샷)을 잠깐 생각해 본다.

그러나 만약 톱 볼(위쪽을 때려서 볼이 뜨지 못하고 날아가는 엉터리 샷의 일종)이라도 나면 첫 홀부터 실력이 뽀록(들통의 비속어로 천박한 새들이 주로 사용하는 말이니 점잖은 독자는 부디 배우지 말기를 권한다)나는 참사가 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필시 저보다 하수들과 치는 날이었다면 ‘잘 보세요. 어프러치는 이렇게 하는 겁니다’ 따위의 자랑질과 함께 한 번 시도해 봤을 지도 모를 일이다.

(역시 승부는 언제 어디서 누구랑 하느냐에 따라 많이 다르다. 특히 누구랑)

 

결국 갖고 있는 웨지 중에 로프트가 가장 높은 웨지인 62도를 선택한 뱁새.

그래도 웨지 바닥이 제법 많이 닳은 것을 보면 멋으로만 갖고 다니는 건 아닌 눈치다.

 

뱁새는 몇 차례 연습 스윙을 하고는 그림 같이 볼을 베어낸다.

‘사각’ 소리가 나는 것이 바운스(쉽게 말하면 웨지의 엉덩이쯤 되는 부분)가 제대로 볼 밑으로 들어간 느낌이다.

‘됐다’라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뱁새 머리를 스쳐가면 뭐 하나.

볼은 그린 위에 사뿐히 내려 앉는가 싶기만 하고 내리막에서 속도가 점점 붙더니 컵(홀컵이 아니라 홀 또는 컵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는 말이다)을 한참 지나 굴러간다.

열 발짝도 넘게.

나중 일이지만 보기로 마친다.

 

전설은 차례가 되자 서두르지도 않고 루틴을 지켜 부드럽게 퍼팅 스트로크를 한다.

볼은 아슬아슬하게 빗나가서 탭인 파로 마무리 한다.

보통 퍼팅 할 때 볼을 왼쪽 눈 아래 놓으라고 가르치는 데 전설은 위치가 다르다.

몸 가운데이거나 오히려 오른쪽에 가깝다.

그래도 골프 경력이 10년이 된 뱁새라 주시(주로 쓰는 눈) 아래에 볼을 놓는 것이 효과적일 수도 있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있다.

전설도 그 이유 때문에 볼을 오른쪽에 둔 것일까?

궁금했지만 차마 첫 홀부터 초랭이 방정을 떨 수가 없어 묻지도 못하고 말 없이 깃대를 시중들고 다음 홀로 향한다.

더구나 버디 찬스를 놓친 상황 아닌가.

 

스포트 라이트를 약간 빗겨 갔지만 첫 홀 버디는 황새 부친이 했다.

(지금 전설이나 황새 아버지 이름은 뭔지도 모르고 이 편을 읽고 있다면 지난 회를 다 건너뛴 것이니 돌아갔다 오기를 강력히 권한다. 누군지 알고 보면 재미가 배로 커진다)

 

두 번째 홀에서 셋 중에 맨 마지막으로 티샷을 하게 된 뱁새.

먼저 치는 두 선배(어느새 묻어가네)의 샷이 오른쪽으로 조금 밀리자 탄식을 하는 것을 보고 ‘아, 저 쪽으로 가면 안 되는구나’하고 판단한다.

 

신기하다.

누군가 오른쪽으로 가면 왼쪽으로 확 감는 경우도 나오기 마련.

정반합일?

(이제 한자는 아예 기대도 안 할 것이라고 본다. 흠흠)

 

뱁새의 샷이 왼쪽 벙커 방향으로 날아간다.

뱁새의 거리로 보아(그 통에도 거리 좀 난다고 자랑은!) 필시 벙커에 빠졌을 것 같다.

 

벙커에서 남은 거리를 감안해 클럽 3개를 꺼내 들고 뛰어가는 뱁새.

(애매할 때는 클럽 3개를 들고 가는 것은 뱁새에게 배울 드문 몇 가지 매너 중 하나다)

제 앞가림 하느라 러프로 간 동반자 볼 찾는 데 동참할 여유가 없다.

가서 보니 뱁새 볼은 벙커와 벙커 사이 공간에 운 좋게 놓여 있다.

첫 홀 버디의 주인공 황새 부친의 볼은 레이 업(퍼팅 그린을 바로 노리지 않고 다음 샷을 치기 좋은 곳으로 보내는 울며 겨자 먹기 샷)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것 같다.

전설의 볼도 한 여름 깊은 러프에 놓여 있다.

거리도 상당히 남았고.

전설이 러프를 베어내면서 시원한 샷을 하는 데 볼은 밀리고 그린 우측 벙커에서 모래가 튄다.

러프에 있는 볼은 왼쪽으로(오른손잡이 기준.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감기기 마련이니 감안해서 클럽을 조금 열었을 것으로 추정만 할 뿐 이것 역시 물어보지도 못한다.

뱁새 볼은 거리도 많이 남았지만 나무를 넘겨야 핀을 노릴 수 있다.

레이 업과 도전 중에서 잠시 고민하는 뱁새.

‘도전!’을 속으로 외치고 7번 아이언(8번이었나? 어째 무용담은 하나같이 얘기할 때마다 숫자가 다르다)을 골라 든다.

러프에 놓인 볼이니 체중이동을 최소한으로 하고 어깨 턴으로 스윙해 콘택을 깨끗하게 하자고 다짐한다.

그리고 시원하게 뿌린다.

볼은 그림 같이 날아가면서 나무를 아슬아슬하게 넘고 핀 앞에 떨어져 핀 쪽으로 구른다.

흔한 말로 SBS 골프 채널에 나올 굿 샷이다.

 

볼이 벙커에 들어갔는데도 전설은 ‘이렇다 저렇다 푸념도 없이’ 연습 스윙을 하더니 가볍게 볼을 걷어 낸다.

볼은 부드럽게 그린 위에 떨어지더니 홀 쪽으로 굴러가는가 싶었는데 제법 못 미쳐 멈춘다.

백 스핀이 많이 먹은 탓이다.

벙커 샷이라면 나름대로 자신 있는 뱁새이지만 혹시나 배울 게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미간을 찌푸리고 눈을 가늘게 뜬 채 전설의 벙커 샷을 지켜본다.

(절대 감시하는 차원에서 본 것이 아닙니다. 최프로님. 어느 안전이라고 쇤네가 감히!)

자신의 벙커 샷보다 훨씬 부드럽다는 것을 알고는 고개를 끄덕이는 뱁새.

 

뱁새가 브레이크를 살피고 버디 퍼팅을 하는데 약간은 긴장해서 스트로크가 아주 매끄럽지는 못하다.

그래도 볼이 홀로 떨어진다.

전설도 부담되는(부담을 느끼는 기색은 전혀 없다) 거리의 파 퍼트를 시도한다.

그린 스피드가 여느 때보다 느린지 브레이크를 덜 먹으면서(덜 휘어서) 볼이 홀 옆을 스쳐간다.

전설의 보기.

상대는 뱁새를 안중에도 두고 있지 않을 터인데 뱁새 속으로 ‘한 타 앞섰다’고 좋아한다.

(필요할 때는 한 수 배우는 거고, 조금만 틈이 생기면 도전하는 거고. 하여간 뱁새가 나이에 비해 철이 없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렇게 두어 홀로 한 회를 마치면 전설을 몇 번만 만나면 원고료를 두둑히 챙기고 빠질 것이라는 한경측 우려도 있고 해서 결정적 장면만 몇 컷 더 보고 넘어가기로 한다.

이어지는 3번 홀은 적당한 길이의 파3홀로 모두 다 파.

4번 홀 파4에서 뱁새가 웃지 못할 실수를 한다.

450야드짜리 파4 홀인데 야디지 북도 살피지 않고(경기과에 물어서 야디지 북을 챙겼다면서 열정이 어쩌고 할 때는 언제고) 눈짐작으로 파5홀이라고 판단한 뱁새가 우측으로 크게 밀리면 해저드에 빠질 위험이 있다며 24도 하이브리드를 빼 들고 3온 전략으로 나선다.

뱁새의 뜻대로 티 샷은 그림같이 200야드 가까이 날아가 페어웨이 우측 넓은 곳에 떨어진다.

남은 거리는 250야드 가량.

그제서야 파4 홀이라는 것을 깨달은 뱁새.

(어쩐지 전설을 포함한 다른 동반자들은 우측 해저드가 눈에 보이는데도 풀 스윙을 하더라니. 에고 에고)

해저드와 벙커를 넘어서 그린을 노려야 하는 상황.

진짜로 3온 전략을 펴야 하나 망설이던 뱁새가 내친 걸음 승부를 보기로 작정한다.

19도 하이브리드를 꺼내 들고 그나마 안전한 핀 왼쪽을 노리고 풀 스윙한다.

기가 막히게 맞은 볼이 그린 쪽으로 날아간다.

너무 멀어서 나중에 안 일이지만 핀을 지나쳐 프린지에 걸렸다.

제법 긴 거리가 남은 전설도 긴 채를 잡고 그린에 올리지만 핀에는 못 미친다.

실수를 한 큐(당구 용어이나 워낙 사내들 아니 수컷들 사이에 일반적으로 쓰는 말이고 보니 이해하기 바란다)에 만회했다는 생각에 어느새 경망스러워지는 뱁새.

글쎄, 열댓 발짝을 못 붙이고 한참 먼 거리를 남긴다.

전설은 가볍게 파.

브레이크를 열심히 살피는 뱁새.

어디서 봤는지 오른손 검지 손가락 하나를 펴서 브레이크를 가늠하더니 자신 있게(혹은 이판사판으로) 퍼팅을 한다.

볼은 시원하게 홀인.

여전히 뱁새가 한 타 앞선다.

(아무도 관심 없는 데 뱁새 혼자 세고 있는 것 같기는 하다)

다음 홀 파5 올 파.

앞 핀이라 160미터 남짓 되는 6번홀 파3에서는 맞바람이 살짝 분다.

전설의 샷이 바람에 밀리더니 벙커에 떨어진다.

‘에그 플라이가 된 것 같다’는 생각으로 뱁새가 ‘아이고!’ 하고 탄식을 내뱉는데 정말 안타까워하는 것일까 아니면 겉 다르고 속 다른 것일까?

(어허! 사람 아니 뱁새를 어떻게 보고)

한 클럽 더 넉넉히 잡는다고 잡고 나선 뱁새의 샷이 시원하게 해저드 위를 가르며 날아간다.
곧장 핀을 향해 가다가 그린 근처에서 보이지 않는다.

흐린 날씨에 하늘도 약간 뿌옇지만 손맛을 생각하면 의심 없는 굿 샷이기에 뱁새는 거리 측정용 망원경을 꺼내 든다.

그린 위에 볼이 없다.

뱁새의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홀인원인가?’

그래도 내색하지 않고 일행과 함께 카트를 타고 함께 이동하는 뱁새의 가슴 뛰는 소리가 지금도 귀에 선하다.

 

김용준 프로의 골프학교 아이러브골프 café.naver.com/satang1

부드럽게 모래를 폭발시켜 볼을 벙커에서 탈출 시키는 살아 있는 전설 최상호 프로



 
필자인 김용준 프로는
고려대 경제학과를 나와 한국경제신문 기자로 몇 년간 일했다.
2000년 대 초 벤처붐이 한창일 때 소프트웨어 회사를 창업했으나 보기 좋게 실패했다.
호구지책으로 시작한 컨설팅 일에 제법 소질이 있어 넉넉해졌다.
다시 건설회사를 인수해서 집을 떠나 이 나라 저 나라에 판을 벌였다.
그러나 재주가 부족함을 타의(他意)에 의해 깨달았다.
그래서 남보다 조금 잘하는 골프에 전념해 지금은 상당히 잘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다 독학으로 40대 중반에 KPGA 프로 테스트를 통과해 프로 골퍼가 됐다.
그래서 주위의 부러움을 사고는 있다.
그렇지만 아직 50살이 되지는 않아 KPGA 챔피언스투어(시니어투어)에는 끼지 못하고 영건들이 즐비한 2부 투어에서 고전하며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언젠가는 투어에서 우승하겠다는 꿈을 꾸며 열심히 골프를 수련하고 있다.
골프학교 아이러브골프를 열어 아마추어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입장으로 연민을 갖고 레슨도 하고 있다.
또 현존하는 가장 과학적인 골프볼인 ‘엑스페론 골프볼’의 수석 프로모터로서 사명감을 갖고 신나게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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