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예쁜 여자는 시계를 보지 않는다

‘예쁜 여자’를 말한다⑯ ‘예쁜 여자는 시계를 보지 않는다’

예쁜 여자를 사랑하는 건 쉬운 일이다.

광채를 담고서 영롱하게 빛나는 두 눈을 바라보면 그 안에 담기고 싶어진다. 날카롭게 솟아오른 콧날을 보면 같은 공기를 마시고 싶어진다. 둥글게 모은 입술에서 나오는 모든 언어를 진실로 받아들이고 싶어진다.

이것은 아주 당연한 현상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사실은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정신을 차리고,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예쁜 여자를 유심히 관찰하다 보면 그녀들이 아주 의외의 부분에서 구멍이 나 있는 존재임을 금방 파악할 수 있다. 사회를 이루어 살아가는 인간의 하나로서 당연히 갖춰야 할 기본적인 소양이라고 생각했던 가치의 기준들이 예쁜 여자 앞에서는 속절없이 무너져버린다.

대표적인 예로 들기에 가장 적절한 것은 시간 약속이다.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에 늦는 사람은 많지만 예쁜 여자의 경우는 좀 극단적이다. 예쁜 여자가 제 시간에 나올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99%의 확률로 그녀들은 늦는다.

중요한 점은 그녀들이 미안한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잘못한 줄 알면서도 미안함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부도덕이고 뻔뻔함이겠지만 예쁜 여자의 뉘앙스는 그게 아니다.

약속시간에 늦게 나타난 게 왜 미안한 일인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눈치다. 다른 사람들이 사과하니까, 그렇게 해야 된다는 모양이니까 나도 사과한다는 정도의 분위기. 눈빛 속에 진심 어린 미안함은 조금도 감지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정색하고 화를 내기도 좀 우스워진다. 어린 아이가 칸트의 도덕 이론을 모른다 해서 화를 낼 수는 없는 것처럼.

이것은 예쁜 여자가 사회성이 결여된 존재임을 암시하는 하나의 강력한 메타포다. 어째서 예쁜 여자에게는 사회성이 없는가?

예쁜 여자에게는 스스로를 중심으로 하나의 사회를 구성시키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외모가 그 자체로 권력이고 능력인 한국 사회에서 그 경향은 조금 더 심할 것이다.

예쁜 여자가 자신을 중심으로 구성시키는 이 자그마한 사회에서 그녀는 주인 노릇을 할 뿐 누구에게도 아쉬운 입장이 되지 않는다. 영원한 甲일뿐 乙로 살 일이 없다.

좀 늦으면 어떤가? 어차피 그녀가 없으면 그녀의 사회는 굴러가지 않는데 말이다. 예쁜 여자는 시계를 보지 않는다. 볼 필요가 없다. 그녀 자신이 곧 시간인 까닭이다.

그녀들이 대단히 뻔뻔스럽고 반사회적인 존재인 것처럼 말했지만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의 분위기는 전혀 험악하지 않다. 예쁜 여자 앞에 선 남자들은 그녀의 모든 것을 다 이해해 줄 준비가 이미 끝난 상태이기 때문이다.

“시간 맞춰 나오려고 했는데 창밖으로 UFO가 보이지 뭐야? 구경하다가 좀 늦었네. 미안.”

…이라고 말한다 해도 진심으로 믿어줄 준비는 되어 있다.

‘4차원’이라고 하는 간편한 수식어를 갖다 붙이면서. (계속)

 

1983년에 출생한 자칭 “서른 살의 자유주의자”.
'유니크', '연애의 뒷면' 등 두 권의 책을 저술한 작가.
'미래한국', 'StoryK'를 포함한 각종 매체에 글을 기고하는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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