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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소설] 오키나와 (7)...살아남는 방법

이수는 비행기가 한꺼번에 몰려오는데도 그다지 당황하진 않았다. 어제 저녁 이치가와 중대장의 지시로 서류를 작성해주다가, 오늘 대규모 공습훈련을 한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 그럼에도 뭔가 좀 이상했다. 첫 번째 비행단은 남쪽 항만을 그대로 스쳐지나가더니 오로쿠비행장에 로켓포를 쏟아 부었다. 그 걸 보고서는 의아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도 아끼던 폭탄을 공습훈련에 저렇게 허비할 수가…”

하지만, 이어 발사되는 가잔비라와 아메코 진지의 일본군 고사포들이 비행기를 일부러 맞추지 않고, 그 아래쪽에서 흰 연기를 내뿜으며 파삭 파삭 터졌다. 이걸 보고서야 나카타 반장도 의혹을 가라앉는지 큰 소리로 외쳤다.

“우와, 오늘은 공습훈련 한번 제대로 하네…”

이때 이수의 머리 위로 여러 대의 함재기들이 굉음을 내며 낮게 지나갔다. 순간 이수는 비행기의 앞날개와 뒷날개 사이 검은 동그라미 속에 흰색 별표가 그려진 걸 발견했다. 미군의 ‘그루먼(Grumman) 전투기와 어벤저(Avenger)’ 뇌격기였다.

“아니, 이건 진짜 공습이다..!”

이수가 소리쳤다. 곧 이어 시역소(시청)에서 사이렌이 울렸다. 훈련사이렌 소리는 한번에 3초씩 울리는데, 오늘은 길게 울렸다. 미군의 공습이 확실했다.

그러니까, ‘샛별’같은 비행기는 미군초계기였고, 가잔비라와 아메코에서 응사하는 고사포는 미군기를 일부러 맞추지 않은 게 아니라, 맞추지 못하는 거였다. 이수와 나카타 반장은 필사적으로 가까이 있는 목조건물 틈새로 뛰어 들어갔다. 두 사람이 피한 곳은 마쓰야마 기슭에 있는 주택가 골목.

이 폭격상황에도 겁 없는 남자 중학생 하나가 자기 집 앞 나무 위로 올라가더니 나하항구가 완전히 폭격을 당하고 있다고 소리를 질러댔다.  이수와 나카타도 고개를 내밀어 나하항구 쪽을 내려다봤다. 두 사람은 눈앞에 펼쳐지는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전폭기는 나하항에 정박한 일본군 수송선과 군함에 45도로 급강하하면서 차례로 어뢰와 폭탄을 떨어트렸다.

<미군 함재기의 나하공습. 사진= 오키키나와현이 기획한 ‘오키나와전 체험자의 그림’에서>

연이어 미군 전폭기들은 항만시설에 로켓탄을 줄줄이 뿌렸다. 함재기의 어뢰를 맞은 수송선들이 차례로 폭발하면서 굉음을 내자, 그 굉음의 파장은 쓰나미처럼 나하 시내를 물결쳐 지나갔다.

“수송선이 침몰해요!”

나무 위의 중학생은 흥분한 채 계속 고함을 질러댔다. 항만에 떠 있는 선박들이 거의 파괴되었을 무렵, 잠시 공습이 멎었다. 공습이 멈춘 시간은 거의 반시간 정도 되었지만, 그 중학생 외에는 겁에 질려 어느 누구도 자기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엔 그루먼 전투기들만 한꺼번에 몰려와 시내 곳곳의 군수품 창고에 로켓포를 떨어트리면서 기총소사를 해댔다. 이때 이수가 내린 판단은 이곳을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바로 앞에 보이는 학교교사에 탄약 창고가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서다.

지난 8월부터 조선에서 징용되어온 3200명의 조선인 군부들은 1600명씩 밤낮을 교대로 나하 부두에 정박한 수송선에서 탄약과 기름과 군수품을 나르는 작업을 했다. 때문에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어디에 어떤 위험물이 보관되어있는지 잘 알고 있다.

이미 미군 함재기들도 항공촬영을 통해 어디에 군수품창고가 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인지 전투기들은 가솔린 드럼통들이 쌓여있는 기름보관소부터 공략했다. 그러자 연료들이 한꺼번에 터지면서 드럼통 몇 개를 하늘로 쏘아 올렸고, 솟아오른 드럼통이 공중에서 다시 폭발하면서 검붉은 불줄기를 토해냈다.  시커먼 연기가 용트림을 하면서 하늘로 높이 솟아 올라가고, 그 연기기둥 사이를 뚫고 어느새 미군 그루먼 전투기가 또 나타나 이번엔 식량창고를 난도질했다.

식량창고가 부서져 내려앉자, 군량미를 지키기 위해 그곳에서 끝까지 버티고 있던 일본군 보초 3명이 마당을 가로질러 도망쳤다. 그러나 어느새 미군 전투기가 도망가는 일본군을 발견하고, 급강하해 3명에게 총알을 내뿜었다. 일본군 3명의 팔다리가 파편과 함께 피를 튀기며 흩어졌다. 숨어서 그걸 지켜보던 나카타 반장은 손으로 머리를 감싸더니 풀썩 주저앉았다. 이수는 살아남기 위해선 움직이지 않는 방법밖에 없겠다고 판단을 내렸다.

<10월10일 나하 대공습. 사진= 오키나와현 기획, ‘미군 공습 체험자 그림’>

 

이파(李波)...화가 기자 교수 연구소장 사장 등 여러가지 일을 했다.
태평양전쟁을 소재로 한 이 장편소설은 징용으로 끌려간 천재 식물학자와 오키나와 간호사의 애타는 사랑이야기다. 두사람은 일본군의 횡포와 미군의 폭격 틈바귀에서 한 사람의 생명을 더 구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한 포기의 산호를 더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건다. 15년전 일본에서 대학교수 하던 때부터 꾸준히 오키나와 현지를 취재해서 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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