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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소설] 오키나와 (4)...큰 거 한건 올렸다?

이치카와 중대장은 다시 이수의 눈 속을 빤히 파고들다가 긴장한 자세를 풀더니 우친 뿌리를 이수에게 건네주더니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래, 꼭 총살당하고 싶으면 이거나 실컷 먹고 죽어. 피가 잘 빠질 테니까”

이치카와 중대장은 이미 우친의 효능 가운데 혈액순환 촉진기능이 있다는 것까지 알고 있었다. 중대장은 자기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정리하면서 뜸을 들이더니 옆방에 있는 부관을 큰소리로 불렀다. 부관이 들어오자 그는 나카타 반장을 급히 데려오라고 명령했다.

드디어 이수를 못살게 굴던 나카타 반장이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에 따라 이수의 운명이 좌우될 수 있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아직 일본군 숙소로 돌아가지 않은 나카타 반장은 ‘큰 거 한건을 올렸다’는 자세로 과장스럽게 어깨를 편 채 으스대면서 중대장실로 들어왔다. 중대장은 거드름 피우는 나카타의 태도를 완전히 무시한 채 큰 소리로 그에게 명령했다.

“나카타 반장!”

“네”

“오늘부터 이시타 리수를 특설수상근무대 103중대 조장으로 임명한다. 지금부터 두 사람은 서로 협조해서 군무를 수행하기 바란다.”

나카타 반장은 한참 동안 이치카와 중대장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한 채 멍히 서있었다. 자신의 고발이 낭패가 되었음을 한참 만에 겨우 알아차리고, 자기붕괴적인 태도로 중대장에게 후다닥 경례를 붙였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현재까지 이수는 특설수상근무 103중대 제3소대 제3분대 ‘군부가시라(軍夫頭)’였지만, 지금부턴 분대 가시라에서 중대 가시라로 진급한 셈이었다.

중대 조장이란 조선인 군부 620명에게 상부의 지시를 통역해 전달해주고 군부의 상황을 상부에 보고하는 권한을 가지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중대 조장은 일본군 하사관이 맡았으며, 조선인이 중대 조장을 맡은 건 이수가 처음이었다.

하지만 이수는 이치카와 중대장의 왜 이렇게 갑작스레 교묘한 역습을 가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무슨 간교인지 모르지만, 지금 당장은 이치카와 중대장의 속셈을 알 수가 없으니까, 어떻게든 그의 손아귀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옛 특설수상근무 103중대 앞길에서 만난 이수의 소망을 상징하는 듯한  꽃가지 하나>

나카타 반장이 자리를 뜨자 중대장은 총살직전에 있던 군부에게 중대가시라를 시켜주었는데도 전혀 기뻐하지 않고 떨떠름한 표정으로 서있는 이수를 보더니 손짓을 했다.

“이제, 내무반으로 돌아가도 좋아”

이수는 거수경례 대신 허리를 깊이 굽혀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한 뒤 중대장실을 나서기 위해 문을 밀쳤다. 이때 이치카와 중대장이 이수를 큰소리로 다시 불러 세웠다.

“이시타 조장!…자네 이치카와 히데오라는 사람 알지?”

이수는 중대장의 느닷없는 질문에 정신이 멍해졌다. 이치카와 히데오?…이수는 도쿄에서 살던 때의 기억을 가고시마 항구에서 오키나와 나하로 오는 바닷물에 모두 내던져 버렸는데…갑자기 중대장이 난데없이 바다 속으로 가라앉아버린 도쿄 시절의 기억을 물어보다니. 이수에게 중대장의 물음은 먼 곳에서 울려오는 종소리처럼 그 파장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도쿄대학 식물표본실의 이치카와 히데오 교수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그와 어떤 관계지?”

이수는 주저앉고 싶었다. 이치카와 중대장이 이수에게 중대 조장을 시켜준다는 게 처음부터 이상했다. 중대장은 이미 이수의 성분을 다 파악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는 이미 이수가 ‘징병’으로 전쟁터에 가지 않기 위해 신분을 속여 ‘징용’으로 왔다는 사실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중대장은 이수를 우선 살려준 뒤, 자기 마음대로 부려먹으려는 모양이었다. 드디어 이수는 가장 자폭적인 선택을 해야 할 지경에 도달했다.

<오키나와 요미탄에 있는 조선인 군부의 비. 어머니가 일본군에 끌려가는 아들의 다리를 부여잡고 있다.>

 

이파(李波)...화가 기자 교수 연구소장 사장 등 여러가지 일을 했다.
태평양전쟁을 소재로 한 이 장편소설은 징용으로 끌려간 천재 식물학자와 오키나와 간호사의 애타는 사랑이야기다. 두사람은 일본군의 횡포와 미군의 폭격 틈바귀에서 한 사람의 생명을 더 구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한 포기의 산호를 더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건다. 15년전 일본에서 대학교수 하던 때부터 꾸준히 오키나와 현지를 취재해서 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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