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밖에선 꽃뱀이 진화 중

입력 2012-08-21 00:00 수정 2012-08-21 00:00


'예쁜 여자'를 말한다 ⑦ “강남 밖에선 꽃뱀이 진화 중”

반드시 서울의 강남, 반드시 유명한 산부인과가 아니더라도 예쁜 여자과 관련된 기상천외한 스토리는 얼마든지 펼쳐진다. 지금부터 전국 각지에서 활약하는 ‘신종 꽃뱀’들의 참신한(!) 공사 시나리오를 훑어보기로 한다.




“오빠, 나 한 잔 더 마셔도 될까? 여기 와인 정말 맛있다.”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일주일 전 나이트에서였다. 웨이터의 손에 수줍게 이끌려 들어온 그녀는 어두운 조명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예쁜 여자였다.

저런 여자를 사귀는 건 과연 어떤 기분일까? 아니 거기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저런 여자와 나란히 걷기라도 해 본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늘 망상만을 반복했던 당신에게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운명의 오늘밤, 명멸하는 사이키 조명의 한가운데에서 그녀가 오직 당신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우리 앞으로 자주 연락해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 내일 밥이라도 같이 먹을래요?”

어떻게 얘기를 풀어가야 할지 번뇌하고 있던 당신에게 먼저 건넨 그녀의 한 마디. 연락처를 먼저 물어온 것도 그녀였다.

집으로 돌아와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을 못하고 있는 당신의 카카오톡 창이 열리며 그녀와의 꿈같은 첫 데이트 시간과 장소가 잡힌다. 예쁜 여자의 옆자리에 서서 걷기만 해도 좋겠다는 꿈이 드디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나 예전에 저기 레스토랑 한 번 가 봤는데 괜찮더라. 우리 저기로 들어갈래요?"

그녀의 집에서 가까운 장소를 고르다 보니 조금 낯선 곳에서 만났다. 밥이야 당연히 내가 사는 거지만, 저긴 어디지? 제법 비싼 레스토랑을 고른 것 같다.

메뉴판 가장 위에 적힌 세트를 두 개 시키더니 고기엔 와인이 어울린다며 술까지 주문. 첫 데이트에 술을 마시는 건 어떤 의미였더라? 언젠가 인터넷에서 읽은 글을 떠올려 보기도 하면서 한 병 두 병 흐름은 잘도 이어진다.

“생각보다 너무 많이 나온 것 같아요. 미안해서 어쩌죠?”

너 같은 예쁜 여자와 데이트를 했는데, 부러움과 시샘이 뒤섞인 사람들의 시선이 너의 옆에 있는 나에게 실시간으로 꽂히고 있는데 돈이 문제랴. 게다가 오늘은 첫 데이트. 비록 지금은 식사 한 끼에 180만원을 계산하지만 앞으로 내가 차지할 행복은 1억 8천만원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빠 오늘 정말 즐거웠어.”

이것이 그녀에게서 들은 마지막 말이었다.





퀴즈를 하나 내 보겠다. 누가 봐도 사기꾼이자 꽃뱀인 이 여자를 처벌할 수 있을까? 정답은 "NO"다.

위의 이야기는 실제로 있었던 일을 재구성한 것으로, 이어지는 스토리는 비루함 그 자체다. 연락이 되지 않자 뭔가 이상하다는 낌새를 챈 남자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비슷한 피해자가 있었음을 알게 되고 즉시 경찰에 신고했다.

유사 피해자들의 진정을 여러 건 접수한 경찰은 수사에 돌입, 해당 레스토랑이 여성들을 이용해 조직적으로 손님을 끌어들여 약 720명의 피해자들에 대해 부당한 매출을 올린 정황을 포착했다.

레스토랑 업주는 예쁜 여자들을 고용해 (레스토랑이 아니라) 나이트클럽으로 출근을 시켰다. 여대생부터 이혼녀까지 구성도 다양한 이 꽃뱀집단은 식사비용의 1-30%를 수수료로 챙겨갔지만, 정식으로 구속된 업주와 달리 여자들은 경찰에서 조사만 받고 풀려났다.

그녀들마저도 자기 개인정보를 업주에게 이실직고한 순진한 사람들이거나 재수 없게 근방에 있다 적발된 여자들에 국한된 얘기일 것이다. 어차피 중요한 건 겉모습뿐인데 개인정보를 면밀하게 확인할 필요성도 적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찰나의 행복에 마음 설렜던 남자만 바보가 된 셈. 이것이 바로 21세기에 적합하게 진화한 신종 꽃뱀사건의 실체다. 예쁜 여자에 대한 신격화에 가까운 동경이 있을 때에만 가능한 이야기. 그저 웃고 넘기기에는 뒷맛이 영 씁쓸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정도 기세로, 우리는 예쁜 여자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계속)


1983년에 출생한 자칭 “서른 살의 자유주의자”.
'유니크', '연애의 뒷면' 등 두 권의 책을 저술한 작가.
'미래한국', 'StoryK'를 포함한 각종 매체에 글을 기고하는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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