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범상치 않은 봉우리, 횡성 발교산을 오르다.

 

 

일요일 새벽녘, 어마무시한 천둥벼락에 놀라 잠을 깼다. 창을 두드리는 빗소리도 요란했다. 미간을 좁혀 실눈으로 벽시계를 올려다 봤다. 04시 30분이다. 05시 30분에 알람을 맞춰 놓은 터라 좀 더 잠을 청해 보았지만 헛수고다. 뭉그적거리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척에 옆지기도 잠이 달아난 모양이다.

“이 소나기 퍼붓는데 꼭 산을 가야 하나?” 즉답했다. “산과의 약속인데~”

얼린 물통과 끓인 물 넣은 보온병을 챙겼다. 갈아 입을 옷과 아쿠아 트레킹 샌들 그리고 비옷도 단단히 챙겼다. 그때 산방 총무로부터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굳이 확인 안해도 내용을 알 것 같다. “날씨 관계로 산행 취소” 뭐 이런~

혹시나 하여 스맛폰을 열어 내용을 확인했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무조건 출발합니다”다. 예상이 빗나갔다. 아마도 산꾼들로부터 예정대로 진행하냔 문자를 여러 통 받았던 모양이다. 쎈 총무의 강한 한 방에, 마치 무엇에 홀린듯 꾸역꾸역 출발장소로 모여 들었다. 그렇게 열일곱 산꾼을 태운 22인승 리무진버스는 빗속을 달려 횡성 발교산 아랫마을, 봉명리 입구에 멈춰 섰다.

발교산(998m)은 강원 횡성군 청일면과 홍천군 동면에 길게 걸쳐 있다. 때묻지 않은(덜 묻은?) 첩첩 산자락이 아홉겹으로 둘러싸여 ‘구접’이라 불릴만큼 골이 깊어 천혜의 자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기에 불원천리 달려왔다. 무섭게 퍼붓던 빗줄기는 잦아들었으나 낮게 드리운 비구름의 기세는 여전히 등등하다.

 


봉명4교 옆 개울을 따라 걸음을 시작했다. 발교산 등로를 검색해보면 들머리로 곧잘 등장하는 곳이 융프라우펜션이다. 처음 만난 산 이정표엔 발교산 정상까지 5.3km로 표시되어 있다. 마을을 지나 300여 미터나 걸었을까, 두번째 이정표는 3.7km다. 축지법을 쓴 것도 아닌데… 다시 300여 미터를 걸어 만난 세번째 이정표는 4.7km다. 그랬다. ‘늘었다 줄었다’하는 순 엉터리 고무줄 이정표다. 많은 산꾼들이 지적을 했을 터인데도 요지부동이다.

 


융프라우펜션은 등로 상 마지막 집이다. 이 펜션을 끼고 돌면 본격 산길이 시작된다. 폭우 뒷끝이라 계류가 하얗게 포말을 일으키며 거칠게 넘실댄다. 그 소리가 우렁차다. 숲이 무성한데다 날씨마저 흐려 숲속은 괴괴하기 이를데 없다.

 


좀 더 숲길로 들어서자, 거대한 직벽바위가 걸음을 멈춰 세웠다. 바위벽 틈에서 가느다란 물줄기가 눈물처럼 뚝뚝 흘러내린다. 바위벽 아래 ‘명맥바위’라는 안내판에 눈이 갔다.

“옛날 제비같이 생긴 명맥새가 바위벽에 집을 지었는데, 집이 떨어져 나가자 명맥새가 눈물을 흘리며 날아갔다는 슬픈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 바위”란다.

 


명맥바위를 지나자 산길은 계곡을 가로질러 이어졌다. 폭우로 불어난 계류는 징검다리를 쓸어가 버려 신발을 벗고 바지가랑이를 걷어 올려야만 했다. 몸 중심이 흔들릴만큼 물살이 세차다. 그렇게 어렵게 건너와 다시 양말을 신고 신발끈을 묶었다. 그러나 “한 치 앞도 모른다”는 말이 딱 맞다. 채 스무걸음이나 걸었을까, 또 계곡을 건너야 했다. 일행들은 황당해 했다. 더러는 번거롭다며 등산화를 신은 채 계류를 건너고, 몇몇은 계류 건너는 게 이게 마지막이겠거니 하며 다시한번 등산화를 벗어들었다.


소생은 등산화를 벗어 배낭 깊숙이 넣고서 때마침 챙겨 온 비장의 무기, 아쿠아 트레킹 샌들을 꺼내 신었다. 이후에도 열댓번은 계곡을 가로질러야 했으니, 아쿠아 샌들이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낸 셈이다.

 


일행들과 함께 계곡길과 능선길의 기로에 섰다. “앞으로도 몇번이나 더 계곡을 건너야할지 모르니 능선길로 가자” “발교산 최고의 랜드마크인 봉명폭포를 보려면 계곡길로 올라야 한다”

결국 ‘봉명폭포’를 놓칠 수 없다는 주장이 우세해 능선길을 주장한 몇몇이 꼬리를 내렸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계곡길로 가나 능선길로 가나 폭포는 다 만날 수 있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계곡길을 택해 또 몇번 계류와의 사투 끝에 마침내 봉명폭포가 모습을 드러냈다. 강원 두메산골에 숨어 있어 잘 알려지 않은 30미터 높이의 폭포다.

 


봉황의 울음소리라 하여 봉명폭포이던가, 그 울부짖음이 지축을 뒤흔들 듯 우렁차다. 요며칠 쏟아부은 빗줄기가 폭포수의 자존감을 온전히 회복시켜 놓았다. 부서지는 물보라에 온 몸을 내맡겼다. 폭포수가 뿜어내는 음이온 마사지는 덤이다.

“여러분들은 오늘, 봉명폭포 수량의 최대치를 직접 눈으로 확인한 겁니다. 이보다 더 수량이 많을 땐 그 누구도 계곡에 접근할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하산해 만난 봉명리 주민의 얘기다.

 


문제는 저 엄청난 폭포수 아래를 또다시 가로질러야 한다. 거센 포말과 거친 급물살이 사뭇 위협적이다. 물살의 세기를 가늠해 보려 스틱을 물속에 꽂아 넣자, 순간적으로 튕겨져 나왔다. 안전사고를 염려해 조금 더 아래로 내려와 간신히 건널 수 있었고 길이 아닌 산비탈을 기어올랐다. 조금 전 계곡길을 택하느라 잠시 버렸던 능선길로 다시 합류했다.

분명 낮인데도 사방은 어두컴컴하다. 전나무와 떡갈나무 숲이 무성하여 빛을 허락치 않는다. 봉명폭포를 벗어나면서부터 앞 뒤로 인기척이 없다. 숲안개 자욱한 운치있는 산길은 무리지어 걷기보다는 혼자가 좋다.

 


계류소리가 잦아들었다. 정상 1.16㎞를 가리키는 이정표를 지나면서 산행 내내 곁을 따르던 계곡과는 작별했다. 남루한 통나무계단이 얼기설기 걸쳐 있는 급사면을 올라서자, 쉼터에 너른 평상이 쉬어가라 꼬드긴다. 일행 중 앞서 간 이는 오로지 산행 리더인 L대장 뿐인데, 어쩌면 정상에서 마냥 기다릴지도 몰라 평상의 유혹을 뿌리치고 걸음을 서둘렀다.

 


봉명폭포에서부터 쉼없이 걸어 드디어 발교산 정상에 닿았다. 비안개가 자욱해 정상 조망은 꽝이다. 정상부에 올려진 작달막한 정상표시석엔 ‘발기봉 해발 998m’라고 음각되어 있다. 봉우리 이름이 범상치 않다.

좁은 봉우리 한 켠에서 혼밥 중이던 L대장이 무전을 날린다. “정상에서 막 C와 합류했음. 간단히 허기 채우고 원점 하산하겠음”

뒤따르던 일행들은 계곡을 건너다니느라 지쳐, 정상을 1.5km 남겨둔 지점에서 유턴한다고 전해왔다. 준비해간 뽀글이(누룽지+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바람막이를 꺼내 입어야할만큼 서늘했다. 한사발 뚝딱 해치우고서 하산을 서둘렀다. 봉명폭포 못미처에서 유턴하던 일행들을 따라잡았다. 일행 중 누군가가 한마디 훅 던진다.

“혼자 그렇게 내빼면 어떡하나, 정상에 오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황에 따라선 중도에 되돌아 설 줄도 아는 것도 용기”란다. 교과서같은 말씀이긴 한데…ㅎ

주말 산에 푹 빠져 사는 트레킹 매니아로서 산행 관련 기록을 사진과 함께 소개하는 山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전문 월간지(3종:월간 봉제기술/배관기술/플랜트기술) 편집주간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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