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막을 수 없는 것은 세월이고 나이 듦이다. 어느새 제법 나이가 든 사람이 되다보니 젊었을 때 하고 다른 것들이 하나 둘 생긴다. 그 중 하나가 총기와 기억력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때로 같은 비슷한 연배인데도 또렷한 기억력을 뽐내는 사람을 만나면 부럽기도 하고 신기 해 한다. 한 번은 어느 모임에서 여행을 갔다. 미니버스로 장시간을 이동하는데, 자동차안에서 수십 년 전 불렀던 동요, 가곡 가사를 다 기억하며 독창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와. 대박’하며 혼자 속으로 부러워했던 적이 있었다. 나는 사실 그런 기억을 못 한다. 가사를 다 기억하고 전곡을 부르는 곡이 많지 않다. 그래서 참 우둔 하다 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러자니 늘 옆에 메모를 하는 노트와 연필이 필요하다. 요즘은 참 좋은 세상이다. 노트 연필이 없어도 스마트 폰을 늘 소지하고 다니기에 편리하다. 좋은 생각이 나면 메모 할 수 있는‘앱’이 있어 바로 기록을 하고 저장을 한다. 쉽게 기억을 다시 되살릴 수 있어 좋다. 여행 때에도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도 순간 좋은 아이디어, 글감을 주는 인사이트가 떠오르면 그때 기록을 하였다. 후에 다시 보면서, 여행후기(記)를 쓰거나 글감 아이디어를 얻곤 한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무엇보다 글감이 중요하다. 그런데 글감은 때로 순간 스쳐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때 순간을 포착하지 않으면 쉽게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그 순간을 기록하거나 남기지 않고 후에 다시 기억을 하려면 때로 안 된다. 그런 고민을 자주한다. 나이도 그렇고. 그러던 중 같은 고민을 한 사람의 글을 읽고 혼자 웃었다. 그는 연암 박지원(1737~1805)이다. 연암은 정조 왕 시대 대표적인 문장가였다. 그는 늦은 나이에 안의 현감이란 벼슬로 나갔다. 60세인 1796년부터 이듬해까지 친구,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 글을 묶은 책이 『고추장 작은 단지를 보내니』이다. 그 책에 나오는 편지 중 일부이다.


“붓을 들고 종이를 펼쳐 바야흐로 그럴듯한 생각이 떠오를지라도 미처 한 글자도 쓰기 전에 창밖에서 형방이 무릎을 꿇고 ‘하사오며’‘뿐 이옵고’‘갓갓’등의 소리를 내며 문서를 읽어 대고, 완악한 아이종은 짙은 먹에 붓을 적신 채 종이 귀퉁이를 비스듬히 잡고 서 있어, 얼른 수십 장 문서에다 서명을 한단다. 그러고 나서 물러나와 방금 전 흉중에 있던 아직 문자화되지 않은 한 편의 좋은 글을 생각해 보면 애석하게도 그만 저 만 길 높이의 지리산 밖에 걸려 있지 않겠니? 하지만 어쩌겠느냐, 어쩌겠어”


 위 글에서 연암은 벼슬과 글쓰기를 병행하면서 격은 일상을 리얼하게 묘사했다. 글감이 떠올랐다가 순간 포착하지 않아 안타까워하는 심정은, 연암뿐 아니라 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은 한번쯤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특히, 창작을 하는 직업, 글 쓰는 자 등은 말이다.


 연암의 ‘어쩌겠느냐,어쩌겠어’가 인간의 유약함을 표현하는 것 같아 여운을 남긴다. 그렇다. 인간 별수 없다.한창 좋았던 총기는 어느새 나이가 들면 사라지고, 자신의 기억력을 믿었던 시기도 다 지나간다. 어찌하겠는가? 그것이 인간인 것을. 조물주가 그렇게 만드신 것을. 그러기에 순간 좋은 아이디어나 좋은 글감이 떠오르면 남겨야 한다. 그것만이 내 것이 된다. 내 머리에 있는 것, 내 마음에 있는 것은 기록으로 남기지 않는 한 내 것이 못 된다. 수 없이 스쳐지나가는 생각들 중 순간 포착을 잘하여 내 것으로 남기는 자가 ‘창조적 혁신가’이며, 최근 화두가 되는 인공지능(AI)시대를 준비하는 자가 아닐까? 어떻게 생각하는가?



글쓰기를 좋아하는 목사입니다. 몇년간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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