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도 밀리는 스펙 때문인지 할 일을 찾지 못해 동네 간판점에서 일을 하던 이제석. 1년 동안 미군 부대를 들락거리며 익힌 영어로 광고 공모전에 작품을 출품하기 시작한 그는 세계 3대 광고제의 하나인 ‘원쇼 페스티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클리오 어워드, 에디 어워드 등 1년 동안 국제적인 광고 공모전에서 29개의 메달을 따냄으로써 명실 공히 ‘광고천재’의 닉네임을 얻게 되었다.

최근 한국에선 경찰청 홍보자문에 임명되어 경찰청 벽면에 “빵셔틀 운행중지!”라는 학교폭력 방지 광고를 제작한 그는 저서 <광고천재 이제석>에서 창의력이 메말라가는 광고업계의 풍토에 대해 일갈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누구나 선망하는 멋있는 이미지가 이어진 뒤 생뚱맞게 광고카피와 제품이 튀어나오는 식의 이상한 광고를 우리는 자주 보고 있다. 돋보이는 아이디어로 매출을 증대시킨 광고의 사례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으며, 최근 가장 반응이 좋았던 광고라고 해 봐야 가수 송해가 나와서 직접적인 설명에 나섰던 IBK기업은행 CF 정도다.

이제석은 광고 속 아이디어가 부재한 이유를 광고업계의 구조적 요인에서 찾는다.

“클라이언트에게 끌려 다니는 또 다른 이유 중에 하나는 국내 주요 광고회사 대부분이 인하우스 에이전시이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제일기획, 이노션, 다이아몬드 오길비로 넘어간 금강기획, 대홍기획, 오리콤, 농심기획 같은 광고회사의 대주주가 삼성, 현대, 롯데, 두산, 농심 등 대기업이란 거다. 대기업과 주종관계처럼 얽혀 있으니 아이디어로 승부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주요 광고회사들이 광고제 출품용 광고와 내수용 광고를 나눠서 제작한다는 건 어느 정도 알려진 사실이지만, 제일기획을 비롯한 인하우스 에이전시들이 해외 주요 광고제에서 수상을 함에도 불구하고 국내 광고의 아이디어가 메말라 간다는 건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하지만 업계의 구조적 요인만이 이유의 전부일까?

최근 미국의 아이미디어社로부터 ‘올해의 광고대행사’ 상을 수상한 ‘퀘스터스’의 CEO 제프 로젠블럼은 “1960년대 이후로 광고는 변하지 않았으며 소셜 미디어의 발달로 업계 자체가 변곡점에 서 있다.”고 말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고액 연봉을 받는 거짓말쟁이들의 시대는 이제 끝났으며 광고업계는 새로운 역할 - 컨설턴트 기능을 확대함으로써 브랜드 평판을 제고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제품이 나오고 난 뒤 광고로 기계적인 인지도를 높인다는 전통적인 발상의 광고가 이미 별 효력이 없다는 건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그것이 공공연한 거짓말이라는 걸 모두가 감지하고 있는데다 그나마 스마트TV 등의 발달로 광고시청은 최소화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틈만 나면 접속하는 SNS상에서 화제가 되는 제품에 소비자는 보다 더 큰 관심과 신뢰감을 갖게 되었다.

결국 새 시대의 광고에 필요한 것은 소셜 미디어를 활용해 소비자를 참여시킬 수 있는 방안을 고려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근본적으로는 브랜드 자체에 대한 조언을 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제석은 광고 아이디어를 먼저 떠올리고 거기에 맞는 제품을 생산하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광고가 브랜드 컨설팅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면 새 시대에도 인하우스 에이전시는 나름대로의 역할을 수행할 여지를 얻게 된다. 아이디어가 좋은 광고보다 더 뛰어난 것은 매출을 증대시키는 광고일 것이며, 그를 위한 컨설팅은 계열사가 더 잘 해낼 여지도 있기 때문이다.

이제 광고업계에서 일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세련된 거짓말쟁이가 아닌 성실한 연구가가 되어야 할 것 같다. 세부적인 역할론에 차이가 있을지언정 새 시대의 광고업계가 개별 상품을 넘어서 업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통찰력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만큼은 명백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1983년에 출생한 자칭 “서른 살의 자유주의자”.
'유니크', '연애의 뒷면' 등 두 권의 책을 저술한 작가.
'미래한국', 'StoryK'를 포함한 각종 매체에 글을 기고하는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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