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자살대국’이라는 사실은 이제 크게 놀랍지도 않다. 2008년경부터 시작된 유명인들의 잇단 자살은 경각심을 크게 일으키는 듯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저 개인적 참사에 대한 우리의 감수성을 무디게 만들었을 뿐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가끔씩 정리되어 발표되는 수치들을 확인하면 정신이 번쩍 든다. 최근 1년 새 11만 명이 자살을 시도했고 지금도 한국에선 하루 평균 42.6명이 자살하고 있다. 4.26명이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두 시간에 한 명꼴로 누군가 목숨을 버리고 있는 나라인 것이다. OECD 국가 중에서 자살률 1위라는 말이 가깝게 다가오는 슬픈 기록들이다.

이 수치에 대한 우리 사회의 반응도 이제 제법 정해졌다. 얼마 전 SBS 토크쇼 <힐링캠프>에 출연한 배우 차인표의 진심 어린 열변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자살이란 선택지는 우리의 메뉴판에 없다는 그의 얘기. 아직까지 방송을 보지 못한 분이 계시다면 반드시 시청을 권하고 싶은 방송이었다.

나 역시도 ‘자살=대량학살’이라는 논리로 자살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키는 글을 몇 번 썼다. 나 하나의 목숨을 버림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나들’을 일거에 학살해 버리는 자살이라는 선택은 적절치 못하다는 이야기들이었다. 하지만 삶의 가치를 추상적으로 강조하는 것만이 대안의 전부일까.

과학자들은 좀 다른 얘기를 들려준다. 그 중에서도 사회생물학이라는 생소한 학문을 전공하는 미국의 학자 레베카 코스타(Rebecca Costa)의 견해는 독보적이다. 그녀의 최근작 <지금, 경계선에서>는 현대인들, 특히 한국인들이 반드시 한 번씩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중고등학생들의 필독서까지는 아니더라도 기업체에서 이 책을 함께 읽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정도만으로도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녀의 주장은 ‘자살=과부하’로 요약될 수 있다. 우울증과 자살은 너무도 복잡해져 버린 세계를 이해하려 시도하다 지친 나머지 두뇌가 들어버린 ‘백기’라는 것이다. 열 번쯤 다시 태어나도 끝내 다 처리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상황을 돌아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논리다.

그녀는 지금까지의 패러다임, 즉 논리와 계산으로는 이 문제를 풀 수 없으며 다만 유레카의 통찰력(insight)만이 새로운 길을 찾아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얼마 전 모든 학생들에게 우울증 상담을 실시하는 복지정책이 고려되고 있다는 뉴스가 전송됐지만, 진정으로 우울증에 대처하는 것은 무작정의 복지정책이 아니라 두뇌의 복합적 활동을 자극하는 다양한 시도들인지도 모른다.

레베카는 그 시도의 하나로 걷기(walking)를 언급하고 있다. 최첨단의 기술을 가진 글로벌 기업들이 아무리 긴 시간동안 심혈을 기울여서 인간형 로봇을 만들어도 아직까지 그것들의 걷는 모습은 자연스럽지 않다. 이것은 기업들의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걷기가 그만큼 복잡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내딛어야 할 토양의 재질과 각도, 거리 등등을 우리의 두뇌는 순간적으로 계산해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뇌세포는 총괄적으로 자극 받게 되어 기존의 사고방식으로는 도출될 수 없는 통찰력이 튀어나올 여지를 만들어낸다.

평평한 지면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러닝머신 위에서 관성적인 걷기를 지속하기보다는 한 번쯤 밖으로 나아가 실제의 지면을 내딛는 용기를 발휘해 보면 어떨까. 우리의 뇌는 결코 쉬지 않은 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도 많은 일들을 처리해준다. 두뇌에게 완전한 휴식을 주는 일은 죽음을 의미할 뿐이겠으나 '걷기'라는 복잡한 과제를 부여할 때 오히려 뇌는 놀라운 기적을 선사할 것이다.

통찰력은 자살을 막는다. 그리고 걷기는 통찰력을 자극한다. 걷기가 자살을 막을 수 있다고 감히 주장할 수 있는 삼단논법이다. 마침, 계절도 걷기 좋은 봄으로 향하고 있지 않은가.
1983년에 출생한 자칭 “서른 살의 자유주의자”.
'유니크', '연애의 뒷면' 등 두 권의 책을 저술한 작가.
'미래한국', 'StoryK'를 포함한 각종 매체에 글을 기고하는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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