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총선은 4월 12일부터다.

* 스토리케이(www.storyk.co.kr)에 기고한 글입니다.


선거 결과를 놓고서 승리와 패배를 말하는 유권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답답함을 넘어선 슬픔을 느낀다. 정치인들이 당선과 함께 나태해지는 이유가 바로 이 과정에서 생겨난다. 유권자가 왜 지금 승패를 말하는가? 선거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앞으로 일을 할 사람을 뽑는 과정일 뿐이며 결과는 이제부터 판단할 일이다. 유권자가 정치인의 논법에 필요 이상으로 감정이입해서 기쁨과 슬픔의 소용돌이에 함께 휘말릴 이유는 전혀 없다. 정치인과 국민의 관계는 생각만큼 가깝지 않다.

투표율을 문제 삼는 것도 마찬가지다. 투표율이 더 높았다면 뭐가 어떻게 달라졌으리라는 허무한 가정은 설계주의에 불과하다. 무관심도 일종의 표현이요 침묵도 나름의 언어다. 결국 ‘어서 가서 내가 원하는 그 후보를 뽑으라’고 암묵적인 강요를 하는 것에 불과한 투표율 제고의 액션은 대중독재의 편린일 뿐이다.

경제시장에서 판매량이 낮으면 기업들은 신제품을 구상한다. 억지로라도 시장에 가서 뭐라도 사라는 강요는 아무도 하지 않는다. 정치시장이라고 논리가 다를 이유는 없다. 낮은 투표율은 그 나름의 의미를 내포한다. 정치의 신제품이 등장할 기회의 공간을 보여주는 중요한 인덱스인 것이다. 어쨌든 나가서 아무나 찍고 오라는 식의 분위기야말로 좀비 같은 기득권을 공고히 한다.

세대별 투표율이 정확히 산출된 건 아니지만 2030의 투표율이 낮은 건 아마 사실일 터다. 2030은 평등을 좋아한다는 게 사회적 통념이므로 투표율이 높았다면 새누리당의 세력이 약화됐을 거라는 말들이 들린다. 이것은 다른 사람도 자기처럼 생각할 것이라는 자의식 과잉의 발로일 뿐, 오늘날 한국의 2030이 평등을 좋아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아니 오히려 현재의 2030은 건국 이래로 불평등에 가장 열광하는 세대다. 비(非)투표율 45.7%의 공백을 자신의 인기로 끌어당기고 싶은 정치인이 있다면 2030의 불평등 지향성에 대해서 깊이 고찰해 봐야할 것이다.

단, 진보 성향의 2030이라면 잠시나마 마음 둘 곳을 찾았을지 모른다. 서울 노원구갑 김용민 후보의 득표율 45%는 여러 가지를 상징한다. “모든 전투를 이겨야 하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던 나꼼수 멤버들과 그 지지자들은 의기소침해졌을지 모르지만 지금이야말로 쫄지 말고 생각을 해야 할 타이밍이다.

나꼼수가 전국적인 신드롬을 일으킨 것은 ‘안티 MB’를 지향하는 가운데 ‘정의로운 상식’을 강조하는 어법을 취했기 때문이다. 이 미묘한 본질을 깨닫지 못하고 한국 정치의 기득권B인 민주통합당과 크로스를 할 필요가 있었던가? 김용민의 막말을 패배의 원인으로 확대해석하는 건 사태의 겉면만 보는 일이다. 민주통합당은 원래 그것밖에 안 되는 당이었다. 안티에너지를 대안이랍시고 들이대는데 거기에서 희망을 찾은 사람들이 바보 아닌가? 유권자를 가르치겠다는 오만한 태도가 낳은 당연한 결과일 뿐, 고민을 깊게 한다면 한국진보에는 희망이 있어 보인다.

쫄지 말아야 할 사람들은 또 있는데 새누리당(박근혜 의원 당선자) 이외의 보수 세력이다. 차이가 있다면 건전한 위기를 맞이한 진보세력과 달리 한국 자유주의는 그 희망의 지분 자체를 상당 부분 빼앗겼다는 점이다. ‘여당=보수’라는 통념은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고 하이에크와 미제스에서 미래를 찾는 사람들의 정치적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그 중에서도 국민생각의 국회입성 실패는 대한민국 자유주의의 나아갈 길을 엄중히 묻고 있다. 과연 현실정치만이 대안인가? 정치가 자유주의 확산의 정답인가?

어느 당파가 몇 개의 의석을 차지하든 유권자는 자기 수준 이상의 정치인을 가질 수 없다. 유권자의 의식이 미성숙하면 아무리 훌륭하신 정치인이 하늘에서 강림해도 현실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정치인들의 활동은 요란해서 눈에 띄기는 하지만 그것이 일반적 국민들의 삶속에서 차지하는 비중에는 결국 한계가 있는 까닭이다.

대신 유권자 개개인이 자유, 책임, 자조의 가치를 각성할 때 아무리 흠결이 많은 정치인의 가이드를 받는다 해도 희망은 피어오른다. 인간의 위대함은 사람 자체보다는 그 사람의 행동에 의해 드러난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선거 시즌에만 잠깐 신경 쓰고 나머지는 알아서 하라는 식의 태도야말로 한국 정치를 병들게 하고 깨끗하던 정치인마저 부패시킨다. 한편 유권자와 언론이 각자의 원칙과 철학을 가지고 정치인들의 행동구획에 대한 발언에 지속적으로 힘쓸 때 없던 희망도 생겨나는 것이 정치의, 나아가 인간세계의 묘미가 아닐까. 정치의 해인 2012년의 절반 – 총선이 이제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다.

1983년에 출생한 자칭 “서른 살의 자유주의자”.
'유니크', '연애의 뒷면' 등 두 권의 책을 저술한 작가.
'미래한국', 'StoryK'를 포함한 각종 매체에 글을 기고하는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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