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에 담겨 있는 이집트 운명

입력 2017-06-22 17:06 수정 2017-06-23 15:57
사우디 아라비아의(이하 사우디) 주도로 시작된 카타르와의 단교 문제는 여전히 중동에서 뜨겁다. 스스로를 아랍권 중동 국가들의 중재인으로 생각하는 사우디는 카타르 내 무슬림 형제단 추방, 이집트 내정간섭 중단을 카타르에 요구했다. 이 조건들은 사우디보다는 사실 이집트와 관련된 것이다.
냉전 시기에 사우디는 아랍 민족주의의 깃발을 휘날리던 이집트를 견제하기 위해서 무슬림 형제단을 지원했지만 이집트가 친미 노선으로 돌아서고, 아랍 민족주의를 버리면서 사우디 역시 무슬림 형제단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특히 최근에 와서 사우디는 무슬림 형제단으로부터 위협으로 느끼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아랍의 봄 끝에 이집트의 시시(Sisi) 장군이 무슬림 형제단의 후보로 당선됐던 무르시 대통령을 쿠데타를 하자마자 사우디는 즉시 지지 표명을 했고 경제적인 지원을 했다. 필자는 이번 중동 문제를 계기로 이집트에 관심 가지게 됐다. 이집트를 이해하기 위해 이집트 화폐들을 찾아 봤다.


이집트 화폐 뒷면에 있는 파라오 사진들이 있다. (출처: banknote.ws)

이집트 화폐들을 보면 신기한 점을 바로 찾을 수 있다. 모든 이집트 화폐의 뒷면에는 고대 이집트 파라오들의 사진이 있기 때문이다. 이집트는 다른 이슬람권 국가들과 달리 이슬람 전 문명을 이단으로 몰아 적대시 하지 않고, 오히려 중요하게 여기고 자랑으로 여긴다. 이집트 화폐 뒷면에 있는 파라오 사진들을 통해 이집트 고대 역사의 흐름을 잡을 수 있다. 짧게 요약하자면, 중간에 몇 차례 외세 침략이 있었어도 이집트는 현지인이었던 파라오들에 의해서 몇 천 년 동안 지배를 받았다. 이랬던 이집트의 운명은 페르시아 침공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이 시점부터는 이집트는 항상 외세의 지배를 받았다. 페르시아를 이집트에서 쫓아낸 알렉산더 대왕은 이집트의 새로운 통치자가 되었다. 이를 계기로 이집트에서 그리스 시대가 시작했다. 이슬람이 탄생하고 전통 칼리프조가 건국되자, 이집트는 아랍 지배하에 들어갔다.
7세기 이후부터 이집트 사람들이 아랍 문화를 받아드리면서 아랍화가 됐다. 지금도 이집트의 공식 국명은 ‘이집트 아랍 공화국’이다. 이집트는 아랍화가 됐지만, 현지인이 아닌 외부인으로부터 통치를 받는 운명은 바뀌지 않았다.


5 파운드 앞면 (출처: banknote.ws)

이집트의 이러한 운명을 알기 위해 가장 먼저 언급해야 하는 화폐는 5 파운드다. 5 파운드 앞면에 이븐 툴룬의 모스크(Mosque of Ibn Tulun)의 사진이 있다. 884년에 세워지고, 이집트의 제일 오래된 이 이슬람 사원의 또 다른 특징이 있다. 전통 칼리프조의 계승자 아바스 왕조의 이집트 도지사, 투르크계 출신 아흐마드 이븐 툴룬이 870년경 중앙 정부로부터 독립을 선언했었다. 이 사원은 바로 그 당시에 이집트의 독립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아바스 왕조는 이후 이집트 툴룬 왕조를 흡수해 이집트와 재통일 했지만, 이집트는 계속해서 투르크계 도지사들에 의해 통치를 받게 되었다.


50 피아스터 앞면 (출처: banknote.ws)

이집트 화폐 중 작은 단위인 50 피아스터(1 파운드=100 피아스터) 앞면에 사진이 실린 이슬람 사원은 알아즈하르 모스크(Al-Azhar Mosque)이다. 카이로에 있는 제일 오래된 알아즈하르 모스크의 역사는 매우 특이하다. 툴룬 왕조 이후에는 북아프리카에서 쳐들어 온 시아파 세력이 이집트에서 정권을 잡고 파티마 왕조를 세웠다. 수니파 칼리프가 있는 아바스 왕조와 종파적으로 경쟁하는 차원에서 파티마 왕조는 교육의 필요성을 느꼈다. 열렬한 시아파 선교 활동을 위해 많은 선교사가 필요했지만, 시아파 교육을 대규모 가르칠 교육 기관이 없었다. 알아즈하르 대학교는 바로 이러한 배경으로 세워진 곳이다. 알아즈하르 모스크도 이 대학교의 사원부분이다. 애초에는 시아파의 자랑스러운 교육 기관이었던 알아즈하르는 오늘 날 수니파 세계 핵심 교육 기관이 됐다. 그렇다면, 이집트에서 북아프리카 시아파 지배가 어떻게 종결되었을까?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서 25 피아스터로 넘어가야 된다.


25 피아스터 앞면 (출처: banknote.ws)

제일 작은 이집트 화폐인 25 피아스터의 앞면에 아예샤 모스크(Ayesha Mosque)의 사진이 있다. 아예샤 모스크는 아이유브 왕조 시대에 세워진 사원이다. 아이유브 왕조가 파티마 왕조의 강력한 장군 살라흐앗딘 아이유브(Salah ad-Dinn Ayyub)가 세운 나라이다. 십자군을 몰아낸 후, 파티마 왕조를 폐위시키면서 이집트에서 수니파가 회복됐다.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이집트의 새로운 군주가 된 살라흐앗딘 아이유브 역시 이집트 현지인이 아니고, 필자와 같은 혈통을 가진 쿠르트족이었다. 이집트에서 외부 지배는 아이유브 왕조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1 파운드 앞면 (출처: banknote.ws)

1파운드 앞면을 보면, 카이트바이 모스크(Mosque of Qaitbay)의 사진이 담겨 있다. 아이유브 왕조의 후계자인 맘루크 술탄국의 가장 화려한 건축물로 꼽히는 카이트바이 모스크는 북캅카스 출신 체르케스계 술탄 카이트바이의 지시로 15세기 말기에 완성된 것이었다. 여기서 던질 수 있는 질문은 이집트에는 왜 북캅카스 출신 술탄이 있냐는 것이다.
맘루크 왕조 시대에 이집트 군주는 중앙아시아 출신 킵차크계 아니면 북캅카스 출신 체르케스계이었다. 아랍어로 ‘노예’라는 뜻에서 유래된 맘루크 왕조에서 포로 출신 군인들이 실력에 따라 군주가 되기도 했다. 즉, 돌궐의 손주들이 세운 오스만 제국이 1517년에 이집트를 정복할 때가지 이집트는 현지인이 아닌 이집트와 전혀 상관없는 지역에서 온 사람들에 의해서 통치를 받았던 것이다. 그 이후에도 비슷했다. 약 3백 년 동안 이집트는 오스만 제국이 파견한 도지사들에 의해서 지배를 받았다. 그렇다면 이집트는 언제 독립했을까?


20 파운드 앞면 (출처: banknote.ws)

20 파운드의 앞면에 보이는 사원은 무함마드 알리 모스크(Mosque of Muhammad Ali)이다. 이 사원은 오스만 제국의 이집트 도지사 무함마드 알리(Muhammad Ali) 퍄사의 지시로 1848년에 완공된 것이다. 여기서 핵심적인 것이 무함마드 알리 퍄사의 사연이다. 원래 도지사로써 무함마드 알리 퍄사 공무원이고, 오스만 제국 중앙 정부의 파견 안에 따라야 했지만, 그는 중앙 정부의 힘이 약해졌을 때, 이집트에서 자치권을 얻어냈다. 이를 계기로 이집트 무함마드 알리 가문의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이집트는 1차 대전 계기로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했다. 다만 이 독립의 의미는 현지인에 의한 독립 아니었다. 무함마드 알리 퍄사는 이집트 출신도 아니었고 아랍 사람도 아니었다. 사실은 무함마드 알리 퍄사의 민족 계통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이 진행 중이다. 일부 학자들은 그를 알베니아족이라고 주장하고, 많은 학자들은 그를 투르크계라고 한다. 그의 생가는 아직도 그리스에 있으며, 관광객들이 방문할 수 있다. 결론을 내리자면, 가말 압델 나세르(Gamal Abdel Nasser) 쿠데타를 일으키고, 왕권을 무너뜨릴 때가지 이집트는 천 년 넘게 외부인들에 의해서 지배를 받아 왔다는 것이다. 지금도 이집트는 중동에서 지역 정세를 가장 예민하게 받아드리는 나라 중 하나다.
2004년 한국으로 유학 온 알파고 시나씨는 충남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터키 지한(Cihan)통신사 한국특파원으로 활동했으며, 각국 화폐들에 대해서 강연을 하고 있다. (저서 : 누구를 기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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