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훈의 사운드 오브 뮤직] (3) 아재들의 놀이터가 된 '서울레코드페어'

입력 2017-06-21 10:56 수정 2017-06-21 14:41
제7회 서울레코드페어 가보니… LP 애호가들의 축제 한마당


2017 서울레코드페어가 열린 녹번동 서울혁신파크 2층 행사장.

 

"카트리지는 슈어가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됩니다. 가요나 팝은 슈어로 충분히 커버됩니다. 클래식은 오토폰이나 데논 MC 쓰면 좋지요."

지난 17일 턴테이블 전문업체 진선오디오 관계자가 행사장을 찾은 50대 중년 남성에게 '아이리스' 신제품을 소개하면서 건넨 말입니다. LP(바이닐)로 음악을 듣는 이들에게 턴테이블 카트리지를 선택하는 일은 커피 애호가들이 자신이 선호하는 커피 브랜드를 고르는 것과 비슷하지요.

지난 주말 40~50대 아재들은 모처럼 신이 났습니다. 국내 유일의 레코드 중심 음악 축제가 열렸기 때문인데요. 올해로 7회째를 맞은 서울레코드페어가 은평구 녹번동 서울혁신파크에서 열렸습니다.


◆ 비틀스부터 닥터 드레까지…LP 파라다이스

이날 찾아가 본 서울레코드페어는 아재들의 놀이터나 다름 없었습니다. 학창시절 LP로 음악 감상에 푹 빠졌던 아재들에게 추억이 새록새록 되살아 나는 장소였죠. 독립 음반사, 음반 판매상 등이 중고 음반을 저렴한 가격에 방출하는 이벤트가 열린 날이었습니다. 비틀스의 명반 레퍼토리부터 힙합의 대부가 된 닥터 드레의 솔로 앨범까지 다양한 음반을 LP로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1990년대 가요계를 휩쓸었던 공일오비, 윤상 LP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지요.

밥 딜런의 명곡 '라이크 어 롤링스톤'이 흘러나오는 부스에선 클래식, 재즈, 포크, 소울 등 장르별로 1960년대부터 최근까지 다양한 레코드판이 음반 수집가들의 눈을 즐겁게 했습니다. 최근 내한공연을 한 콜드플레이의 음반도 LP로 만나볼 수 있었죠.

특이한 건 LP를 취급하지 않았던 가수들도 이 행사를 통해 최근 새롭게 LP를 선보였지요. 1990년대 후반 인디록 열풍을 주도했던 언니네 이발관은 1집 음반을 700장 LP로 제작해 이틀간 행사에서 완판을 했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데뷔 초 언니네 이발관은 CD만 제작했는데 뒤늦게 LP를 선보인 것이 레코드 수집가들의 시선을 끌었던 모양입니다.

이렇듯 행사장에는 나만의 콜렉션 아이템이 될 LP를 찾는 인파들로 북적거렸습니다. 아재들은 진땀을 흘리면서 레코드판을 찾느라 손가락 움직임이 분주했습니다. '내가 고를 판을 옆 사람이 먼저 고르면 안되는데…'라는 생각이 가득했던 아재들.

LP가 다시 인기를 끌자 가격도 치솟고 있습니다. 포장을 뜯지 않은 새 LP는 3만~5만원 선, 중고 LP도 가요는 5000원에서 1만원대, 팝은 1만~2만원 선에 팔리고 있었습니다.

디지털 모바일 시대가 열리면서 밀려나고 있는 CD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했습니다. 중고 CD는 3000원~5000원이면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날의 주인공은 역시 CD가 아닌 LP. CD 판매 코너보단 LP 코너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몰렸지요. 그 풍경은 마치 LP 시대가 다시 부활한 듯한 장면이었습니다.


◆ 다시 부활한 바이닐

LP는 1990년대 초중반 음반 시장이 CD로 대체되면서 카세트테이프와 함께 사라져 간 아날로그 시대를 대변하는 물건입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유럽과 미국 시장에서 LP를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고 국내에서도 최근엔 LP를 찍는 공장이 다시 등장했지요.

마장뮤직앤픽처스는 최근 서울 성수동에 LP공장을 세우고 다시 LP를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2004년 서라벌레코드가 LP 생산을 중단한지 13년 만에 다시 LP 제작이 부활한 셈이 됐지요.

한동안 LP가 생산되지 않는 틈을 타고 고 김정호 김광석 한대수 김민기 등 절판이 된 가요 레코드판은 온라인 중고시장에서 수십만원에 거래되기도 했습니다. 혹시나 싼 가격에 그런 음반들을 LP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아재들뿐 아니라 젊은 LP 수집가들이 행사장으로 몰려들었던 게 아니었나 생각해 봤습니다.

첫 행사 때부터 줄곧 찾았다는 음악애호가 김성환 씨(45)는 "중고 음반을 수집하는 사람들에겐 규모가 크든 작든 간에 서울레코드페어가 매력적인 공간"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평소 제이팝에 관심이 많아 이번에는 안전지대와 핑크 레이디 LP를 구했다"고 즐거워 했습니다.


20대 대학생들도 눈에 띄게 많았습니다. 박재범, 브라운 아이드 소울 등 젊은세대가 좋아하는 가수들이 한정판 LP를 선보였기 때문이지요. 무료음악 다운로드 사이트를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스트리밍 서비스로 음악을 소비하는 시대가 됐지만, 아직도 나만의 콜렉션을 갖길 원하는 젊은층들이 행사장을 찾았습니다.

디지털 시대가 된 지금, 그 옛날 아날로그 방식이 세상을 바꿀 순 없을 겁니다. 하지만 아날로그 감성은 시대가 변해도 사라지지 않을 거란 믿음이 생겼습니다. 1960년대를 수놓은 비틀스의 음악이 21세기에도 잊혀지지 않고 흘러나오는 것처럼.


 

김정훈 lennon@hankyung.com
필자는 한경닷컴 뉴스국에서 자동차 업종을 취재하고 있다. 자동차 드라이브를 무척 좋아하지만 음악과 공연을 더 즐긴다. 글방을 통해 음악 이야기를 다룰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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