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국민세금으로 외국호텔룸 흡연벌금까지

 한 맹인이 한밤중에 등불을 들고 걷고 있었다. 누군가 물었다. “보이지도 않는데 왜 등불을 들고 가나요?” 그가 답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보고 부딪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죠. 내가 먼저 피하기 힘드니까요.” 
  ‘배려’란 무엇인가에 대해 얘기할 때 자주 인용되는 내용이다. 
 
 우리 모두 바란다. 다른 사람들이 내게 신경써주고 작은 일까지 배려해주기를. 그것도 내가 입 밖으로 꺼내 말하기 전에 알아서 해주기를. 친구, 연인, 부부 사이에선 더하다. 모르는 사람에겐 바라지 않을 일까지 아는 사람, 특히 가까운 사람에겐 더 요구하게 되는 까닭이다. 겪어본 사람들은 다 안다. 얼마나 많은 싸움과 이별이 “그런 것도 안챙겨주고” 내지 “나한테 어떻게 그럴 수가”에서 비롯되는지.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가 아니라 ‘사람이어서 그런가’. 배려라고 하면 많은 이들이 ‘내가 상대나 다른 사람을 위해 어떻게 얼마나 배려할 것인가’가 아니라 ‘상대가 혹은 남이 내게 어떻게 얼마나 배려하는가’를 먼저 생각하는 듯싶다. 그렇지 않다면 사람 사이, 특히 가깝다는 사람 사이에 그토록 많은 오해와 갈등이 생겨날 턱이 없을 것이다.

 난생 처음 2주에 걸친 긴 여행을 다녀왔다. 출장 아닌 휴가론 닷새 이상을 떠나본 적이 없었던 만큼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시작된 여행이었다. 여름엔 세계 최고 휴양지 중 한 곳으로 꼽힌다는 밴프 등 이른바 캐나다 록키산맥 일대를 둘러보는 일정이었다. 뱅쿠버에서 빅토리아섬을 거쳐 캘거리까지 갔다 돌아오는 동안 버스 이동거리만 5000km가 넘는다고 했다.

 한 여름에 눈과 빙하가 쌓인 산, 곳곳에 푸른 물이 넘쳐나는 호수, 어디나 빽빽한 삼나무와 자작나무 숲, 밤중엔 추울 정도로 서늘한 날씨 등 부러운 것 투성이었지만 9월이면 눈이 내리기 시작해 이듬해 5월까지 춥다는 말엔 “어이쿠” 싶었다. 평소 가깝게 지내던 네 부부가 함께 한 여행은 즐거웠지만 서로 잘 모르던 부분이 드러나면서 마음 고생도 하게 했다. 배려에 대한 생각이 각기 달랐던 탓이다.

  작은 오해들이야 풀리면 그만이지만 마음에 생긴 상처와 앙금까지 가시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여행 중 놀라움을 넘어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국민세금으로 나랏일을 하러 왔던 이들 가운데 호텔룸에서 담배를 피워 벌금을, 그것도 상당액수를 낸 이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캐나다도 모든 호텔은 ‘실내 금연’으로 돼 있었다. 우리가 묵었던 호텔은 별 3개짜리로 호텔방에서 담배를 피우면 하루 200달러의 벌금이 부과된다고 명시돼 있었다. 
  
 한국어 일어 중국어로만 표기돼 있는 걸 보는 기분은 언짢았다. 서양인들은 절대 피우지 않는다는 건가. 아무튼 호텔에 따라 벌금도 다른 모양이었다. 중대한 나랏일을 보러 왔던 고위인사가 묵은 호텔은 흡연 벌금이 하루 400달러였다고 했다. 그런데 그 고위인사는 한 달 가까운 기간동안 계속 방에서 담배를 피웠다는 것이다. 

 일에 따른 스트레스가 심해서 어쩔 수 없었으니 그 또한 나랏일을 하는데 든 비용이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실내 흡연을 금하는 건 담배 냄새와 니코틴의 해로움이 주위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 뿐만 아니라 카펫과 소파 등 곳곳에 담배 냄새가 스며들기 때문이다. 

 자신은 스트레스 해소도 되고, 마음의 안정도 얻었는지 모르지만 그가 담배 피우는 동안 옆에서 역한 냄새를 맡았을 이들의 고통과 그 방을 청소하면서 얼굴을 찌푸렸을 이들의 심정과 이후 그 방을 사용하면서 어디선가 나는 담배 냄새에 코를 킁킁거리며 불쾌해 했을 이들의 마음, 그 일로 생겨날 한국인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같은 건 전혀 감안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가 책임을 맡았던 그 일은 일단 잘된 것으로 끝났고(궁극적인 결과는 두고 봐야겠지만), 그는 국내에서 영웅 대접을 받았다. 호텔방에서 담배를 피워 벌금을 물었다는 사실 따위는 그 어디에도 보도되지 않았다. 

 정치인을 비롯한 고위 인사들은 흔히 자신의 일을 ‘봉사’라고 표현한다. 봉급을 받거나 혹은  봉급보다 더 많은 판공비를 쓰고 막강한 권력을 누리면서도 걸핏 하면 “제 마지막 봉사로 알고” 운운한다. 호텔방에서 담배를 피워 국민세금으로 막대한 벌금을 문 그 고위인사의 마음과 머리 속에 과연 ‘배려’란 단어가 있는지 궁금하다. 주위사람에 대한 배려, 나라에 대한 배려, 국민에 대한 배려 등.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봉사 운운하는 건 실로 듣기 거북하다. 

원칙이란 지키라고 있는 것이다. 힘 없고 돈 없는 사람들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지켜야 하는. 아니 ‘공인’이라 이름 붙은 힘 센 사람들이 더 앞장서서 지켜야 하는 것일 게 틀림 없다. 여행 내내 아니 지금도 생각한다. “잘못 전해진 얘기일 지도 몰라. 누구 다른 사람 얘기가 와전된 것일 수도 있고. 설마 그 분이 그랬겠어. 오해일 거야.” 모쪼록 그랬으면, 내가 잘못 들은 것이었으면 좋겠다.   

35년반의 언론인 생활 끝에 늦깎이 훈장이 된 글쟁이.
나이에 상관없이 지금이 화양연화요, 내 인생의 꼭지점이 아직 남아 있겠거니 믿으며 매사 열심히 대드는 철 안든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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