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초보' '초보 운전' '할머니 초보' '면허 막 땄어요'. 요즘 자동차 뒷유리창에 이런 걸 붙이고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앞에서 영 속도를 못내거나 브레이크를 자주 밟고, 차로 변경을 못하고 쩔쩔 매거나 무작정 끼어든다 싶으면 "초보인가 보다' 생각하고 알아서 피해가는 수밖에 없다.

  자동차는 문명의 가장 큰 이기 가운데 하나지만 편리한 만큼 한순간에 무기로 돌변하는 일도 잦다. 정면 충돌같은 끔찍한 일은 말할 것도 없지만 추돌사고도 싫고 무섭다. 몸이 다치는 건 물론 사고로 벌어지는 시비 또한  겁나고 귀찮다. 그런 게 싫어 앞차와 적당한 안전거리를 두고 달리면 어느 틈에 옆에서 끼어드니 최소한의 안전거리도 지키기 힘든 게 현실이다.

  내가 조심하는 것과 상관없이 뒤에서  부딪치는 수도 있다. 가만히 서 있거나 조심해서 달리는데 뒤에서 쌩 달려오다 "쾅!" 박으면 보통 일이 아니다. 차가 망가지는 거야 그렇다 쳐도 몸이 앞으로 기울어지거나 튕기면서 목 등 여기저기를 다치기 십상인 까닭이다. 뒷좌석에서도 안전벨트를 매라지만 실제론 안매는 수가 더 많으니 추돌사고를 당하면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도 후유증이 남기 일쑤다.

  추돌사고의 경우 거의 100% 뒷차 잘못으로 여겨진다. 안전거리를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다. 그러나 때론 앞차에서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고 멈춰선 탓에 일어나는 일도 있다. 초보운전자 뒤에서 달리기 겁나는 이유다. 초보운전자들이 뒷유리창에 자신이 초보임을 알리는 이유도 ‘차로를 바꾸기 힘드니 좀 봐달라’거나 ‘무서워서 브레이크를 자주 밟게 되니 조심하라’는 뜻이 함께 담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초보운전자가 아니면서도 뒷유리창에 각종 문구를 써붙이는 경우 역시 뒷차에게 “조심해달라, 부딪치지 말고”라는 부탁의 뜻일 것이다. 초보든 아니든 앞에서 미적거리거나 옆에서 함부로 끼어들면 답답하고 언짢다. 그래도 “답답하시면 먼저 가세요”라거나 “당신도 초보셨잖아요” “나도 내가 무서워요”라고 써붙인 걸 보면 그만 웃음이 나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비껴가거나 들어오고 나가도록 양보해주기 마련이다.

그런데 요즘 길엔 이렇게 써붙인 자동차가 눈에 띈다. “까칠한 아이가 타고 있어요!” 까칠한 아이가 타고 있다고. 그래서 어쩌란 건가. 부딪치지 않도록 조심해달라는 얘기일 텐데 이쯤 되면 부탁이라고 할 수 없다. 자기 자동차가 소중한 건 누구나 마찬가지다. 벤츠 S500이나 마티즈를 타는 사람 모두에게 자동차는 보물이다.

부딪치지 말라는 건 서로 자동차도 아끼고 그 안에 탄 사람들도 다치지 않도록 하자는 얘기다. 그런데 내 차엔 까칠한 아이가 타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건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알기 어렵다. 일단 자기 아이 성격이 까칠하다는 건데 그게 대놓고 남들에게 자랑할 일인가. 또 내 아이는 무서우니 조심하라는 말인 듯도 한데 부모가 자식을 무서워하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데 남들에게까지 제 자식을 조심하라니, 이게 무슨 경우인가.
어린아이가 타고 있다는 걸로 봐서 운전자는 젊은층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 문구를 볼 때마다 식당이나 백화점, 마트 등에서 이리저리 뛰고 소리지르는 아이를 나무라긴커녕 대견한 듯 바라보고 있는 젊은 부모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처럼 다른 사람에 대한 예의와 배려를 찾아볼 길 없는, 이기적이고 막무가내인 부모와 아이들이 만들어갈 세상이 너무 두렵고 걱정스럽다.

갑과 을 논쟁이 한창이다. 양극화 해소를 위해선 기득권세력, 가진 사람들이 변해야 한다고도 한다. 하지만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하지 않는가. 어려서부터 남이야 어떻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남 생각같은 건 안중에도 없이 제 성질 마음대로 부리면서 자란 아이들이 과연 나이 들어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한 도리를 알고 실천할 수 있을까.

부모가 다른 사람들을 향해 협박성 문구를 써붙여야 할 정도로 까칠한 아이가 자라서 과연 어떤 인물이 될지 궁금한 걸 넘어 무서워지는 세상이다. 라면상무와 빵회장은 약과려나. 재미 삼아 붙인 문구 하나를 두고 너무 과대해석하는 것 아니냐라는 물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말은 생각을 담는다. 차에 붙인 말은 남들을 향한 것이니 단순히 재미나 농담이라고 치부하기 어렵다. **



  
 
 
늦깎이 훈장이 된 글쟁이. 내 인생의 꼭지점이 아직 남아 있겠거니 믿으며 매사 열심히 대드는 철 안든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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