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삼성의 장충기 사장을 만났습니다. 호암상 축하만찬에서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됐지요. 호암상 축하만찬은 시상식과는 별도로 저녁에 이뤄집니다. 매년 신라호텔에서 열렸는데 올해엔 신라호텔이 리모델링 중이어서 서초동 삼성 사옥 강당에서 마련됐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강당의 음향시설은 호텔보다 훨씬 좋더군요.

장 사장의 정확한 직함은 삼성 미래전략실 실차장으로 돼 있더군요. 잘은 모르지만 미래전략실이 중요한 건 확실한 듯하니 삼성 사장단 중에서도 비중이 큰 분일 게 틀림없겠지요. 식사하는 동안 물었습니다. "삼성에서 사장이 되려면 어떤 덕목(요소)들이 필요한가요? " 장 사장은 선뜻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지 말고 팁을 좀 알려달라고 독촉하자 도리 없다는 듯 말했습니다.
 
"운이 좋아야죠." 전같으면 이 대답에 속상해 했겠지만 요즘엔 그러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나름대로 뭔가 이룬 이들 중 상당수가 그 자리까지 가게 된 요인으로 '운'을 꼽으니까요. '운칠기삼'이니 '운칠복삼'이니 하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셈이지요. "그럼 그 다음 요소는 뭔가요?" "두번째도 운이에요." 이번엔 다소 언짢아지려고 했습니다. 진지하게 묻고 있는데 대강 대답하는 건가 싶어서지요.
 
꾹 참고 다시 물었습니다. "세번째는요?" "퍼포먼스(성과)가 좋아야죠." 장 사장이 알려준 네번째 팁은 '조직에 대한 헌신'이었습니다.  첫째도 둘째도 운, 셋째는 성과, 넷째는 조직에 대한 헌신이라는 게 장 사장이 알려준 삼성의 사장이 되기 위한 팁이었습니다.

다시 붙들고 늘어졌습니다. "운이 좋다는 건 어떤 건가요?"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사람을 잘 만나야지요. 좋은 상사를 만나면 배우는 게 있고, 좋은 부하를 만나면 성과가 좋아지니까요." 

문득 제 오랜 직장생활이 떠오르면서 "그렇지" 싶었습니다. 직장생활의 성패는 어떤 상사를 만나느냐에 달려있는 거니까요. 실력 있고, 리더십도 있어서 승승장구하는  이를 만나면 그야말로 인생이 펴는 거지요. 어떻게 일해야 좋은 결과를 내는지도 배우고 조직을 관리하는 법도 알게 되니까요.안그러고 실력은 별로면서 아랫사람만 달달 볶는 상사를 만나면 고달프기 짝이 없습니다. 결국 못 견디고 그만 두는 이들도 있지요.

그러나 좋은 상사 밑에 있던 이들은 다 잘나가고, 고약한 상사 밑에 있던 사람들이 다 망하느냐 하면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객관적으로 아무리 좋은 상사라도 나와 잘 맞지 않을 수도 있고, 남들은 싫다고 해도 나와는 왠지 궁합이 맞을 수도 있으니까요.

사람을 만나는 게 '운'이라고 한다면 그 운은 자신이 만드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입니다. 좋은 상사, 튼튼한 동아줄이 돼 줄 수 있는 상사가 있는 부서에 배치됐다고 해도 그에게 인정받느냐 못받느냐는 전적으로 자신의 몫이니까요. 부지런하고 책임감 있고 일도 잘해서 상사를 빛나게 하면서도 큰 체하지 않고 예쁘게 굴어야 데리고 있으면서 기회를 주고 싶을 테니까요. 

우리들 대부분은 아랫사람일 때 아랫사람의 덕목이 어떤 건 줄 잘 모릅니다. 윗사람이 돼 봐야 어떤 사람이 예쁜지를 알게 되지요.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세상보는 눈이 다르다는 얘기도 되구요. 그것도 모르고 아랫사람의 가치관과 눈만 갖고 윗사람을 대하면 기껏 애쓰고도 인정받긴커녕 "그래, 네 팔뚝 굵다"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삼성의 사장이 되려면 '운이 좋아야 한다'고 합니다. 삼성의 사장뿐이겠는지요. 어떤 일을 하든 잘 나가려면 운이 좋아야지요. 운이 좋으려면 사람을 잘 만나야 하구요. 편안한 사람과 잘 지내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까다로운 사람과도 잘 지낼 수 있어야지요. 그건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린 거구요.

인사와 보고, 상사의 업무 스타일과 가치관을 파악하는 일을 뒷전으로 미룬채 자기 방식대로 아무리 열심히 일해봤자 헛수고만 하기 십상입니다. 운도 당연히 날아가는 거지요. 운이 날아가면 조직에 대한 헌신과 성과도 무의미해질 수 있습니다. 장충기 사장의 짧고 단순한 팁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






 
늦깎이 훈장이 된 글쟁이. 내 인생의 꼭지점이 아직 남아 있겠거니 믿으며 매사 열심히 대드는 철 안든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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