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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 설로 뒤숭숭한 카타르의 정치 상황을 화폐로 분석하기

요즘 중동이 카타르 문제로 매우 시끄럽다. 중동 국가들이 사우디의 결정을 따라 카타르와 단교 선언을 잇따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는 카타르가 중동의 세력 균형을 위해 비밀로 시아파인 이란의 편을 들며, 테러 단체들을 지원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두 국가 사이 긴장감이 돌자, 카타르 편을 든 터키는 국회에서 벌써 ‘카타르 군사 파견안’을 통과 시켰고,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뜻을 내비쳤다. 카타르의 경우, 사우디의 주장을 부정하고 있지만 이미 중동에서 고립되어 버렸다. 게다가 카타르에서는 이미 쿠데타 설이 나돌고 있다. 필자는 이 외교 문제를 계기로 카타르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카타르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은 카타르 화폐에 실린 사진으로 충분히 얻을 수가 있다.

1 리얄 앞면 (출처: banknote.ws)

카타르 화폐의 앞면을 보면 디자인이 매우 흡사하며, 모든 화폐에 카타르의 국장이 담겨 있다. 카타르 국장에는 역시 쿠웨이트 국장이나 UAE의 옛 국장처럼 ‘다우(Dhow)’라고 불리는 아랍 상인들이 전통적으로 사용했던 배가 있다. 다우라고 하는 이 배가 자주 사용되는 것으로만 봐도, 바닷가로 둘러싸인 아랍 국가들이 과거 어업으로 먹고 살았음을 알 수 있다.

50 리얄 뒷면 (출처: banknote.ws)

카타르는 다른 걸프 아랍 국가들과 달리 눈에 띄는 점이 하나 있다. 카타르는 오직 낚시나 해상무역으로만 먹고 산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50 리얄의 뒷면에 보이는 진주 기념탑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카타르 사람들은 과거 진주 무역에는 앞장섰었다. 다만, 카타르도 나머지 걸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2차 대전 전에 석유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국가 경제의 절대적인 부분을 석유에 의존하게 되었다.

카타르의 독립 이야기를 하자면, 1차 대전으로 돌아가야 된다. 1차 대전 때, 아랍 민족주의를 이용했던 영국이 아랍 반란군과 함께 오스만 제국을 중동에서 철수시켰다. 이 결과로 1916년 카타르는 영국 지배 하에 들어갔다. 그러나 영국의 지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경제 위기로 영국은 더 이상 걸프 지역으로 군사를 파견할 수 없다고 판단했고, 1968년에 이 지역에서 철수 한다고 선언했다. 3년동안 사전 준비 과정이 진행됐고, 카타르는 UAE과 바레인과 함께 1971년에 영국에서 독립했다.

카타르는 독립 때까지도 인도 중앙은행에서 발행된 걸프 루피를 사용하고 있었다. 독립하고 2년 후에 50 리얄 뒷면에서 보이는 중앙은행을 세운 카타르는 1973년에 처음으로 자국 화폐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500 리얄 뒷면 (출처: banknote.ws)

카타르의 독립 과정을 설명했으니, 이제는 카타르 왕가에 대한 이야기 할 차례다. 카타르 화폐의 최고액인 500리얄 뒷면에는 아미르 디완(Amiri Diwan)이라는 건물이 보인다. 아미르는 토후[土侯] 혹은 추장[酋長]를 의미하고, 디완은 국무 회의이다. 즉, 이 건물은 궁전이 아니고 정부 청사이다. 그렇다면 국명이 ‘카타르 국가’인 이 나라는 도대체 어떤 형태의 왕국인가?

카타르는 2003년에 실시된 국민 투표까지 공식적으로 전제군주제였기 때문에 국회가 없었다. 국민 투표로 입헌군주제에 넘어간 카타르에도 국회가 생겼지만 국회의원들은 선출직이 아니었으며, 아미르 즉, 왕이 임명한 인물들이었다. 카타르의 국회를 어떻게 국회라고 말할 수 있을까?

2006년, 2007년에 총선이 열릴 것이며 45석인 국회의 30석을 선거로 선정할 거라는 발표가 있었다. 그러나 선거의 날짜는 자꾸만 미뤄졌다. 왕가 내에는 자꾸만 분열이 생겨서 정치적으로 안정을 느끼지 못한 카타르 정부가 선거를 미뤘고 그 결과 2019년까지 연장했다. 여기서 핵심적인 질문이 왕은 세습으로 결정되는데 무슨 분열이 있을 수 있냐는 것이다.

카타르의 정권은 1850년부터 알사니 가문에 있다. 독립 이후부터 알사니 가문 내에는 외교-안보 문제를 둘러 싼 의견 충돌이 수시로 생겨나 쿠데타가 발생했다. 현직 국왕이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Tamim bin Hamad Al Thani)의 할아버지 칼리파 빈 하마드 알사니(Khalifa bin Hamad Al Thani)는 1972년 국왕인 사촌형에게 쿠데타를 일으킨 후 정권을 잡았다. 그러나 1995년에 또 쿠데타가 일어나 왕세자 아닌 왕자 하마드 빈 칼리파 알사니 (Hamad bin Khalifa Al Thani)가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1980년생인 현직 국왕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도 아버지가 사망해서 왕이 된 것이 아니다. 중동 왕들에 비해 훨씬 젊은 타밈은 아버지에게 정치적인 압박을 가했고 그 결과 2013년에 왕이 되었다.

1972년은 중동 왕국들이 잇따라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시기였고 1995년 1차 걸프 전쟁 직후였으며, 2013년 시리아 내전이 터진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다. 이 3개의 시기는 중동 전반에 걸쳐 중요한 정치적인 변화들이 일어난 시기이다. 2017년에는 중동에서 또 다시 어떤 변화가 일어지 모르지만 이번에 불거진 외교-안보 문제를 통해서 카타르에서 또 쿠데타가 일어날지 궁금증이 커져만 가고 있다.

알파고 시나씨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2004년 한국으로 유학 온 알파고 시나씨는 충남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터키 지한(Cihan)통신사 한국특파원으로 활동했으며, 각국 화폐들에 대해서 강연을 하고 있다. (저서 : 누구를 기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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