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이 세상에서 옮길 수 없는 단 한 가지

  장례박물관에 다녀왔다. 경기도 용인(처인구 백암면 삼백로 785번지)에 자리잡은 ‘예아리박물관’이 그곳이다. 예아리란 ‘예(禮)가 있는 아름다운 울타리’라는 뜻. 2003년 처음 들렀을 때만 해도 금세 오픈할 것같던 박물관은 10년 뒤인 지난 4월 24일에야 비로소 개관식을 가졌다.
 
  장례박물관 설립을 기획한 임준 ‘삼포실버드림’ 회장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탓이다. 고인은 장례 관련 사업을 하며 번 돈으로 상례와 죽음을 통해 살아있음의 의미와 산 자의 도리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박물관을 설립하겠다고 했다. 땅을 사서 건물을 짓고 개관 준비를 하던 임 회장은 그러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심장마비로 이승을 떠났다.

  임 회장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의 심정은 솔직히 ‘장례 박물관은 물 건너 갔구나’였다. 박물관은 원래 수익성과는 거리가 먼데다 관리와 유지가 어려운 까닭이다. 그런데  들려오는 소식은 뜻밖에 고인의 부인과 아들이 계속해서 추진한다는 것이었다.

  그 일이 마침내 결실을 본 셈이다.용인시장을 비롯한 지역 관계자와 주민, 문화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개관식은 오랜 기다림에 대한 하늘의 보상이었을까. 화창한 날씨 속에 성대하게 치러졌다.

  박물관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상례 관련 용품과 유물을 모아놓은 ‘세계 문화관’과 아프리카의 상례 문화를 보여주는 동시에 특별전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획전시관’, 카페테리아와 영상교육관을 갖춘 ‘문화상품관’ 등 세 건물로 이뤄져 있다. 

  세계문화관엔 자동차 위에 상여 모양을 얹은 독특한 형태의 일본 운구차와 세계 각국의 관, 비석과 무덤 앞 석상, 킬링필드를 연상시키는 해골더미와 미이라 복제품 등 갖가지 유물과 상례 물품이 전시돼 있다.

  개중엔 도대체 저걸 어떻게 가져왔을까 싶은 것들도 많다. 문득 서울 광화문 흥국생명 건물 앞에 놓인 대형 조각(손에 망치를 들고 있는)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 그곳에서도 스쳤다. 궁금한 나머지 함께 간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에게 물었다.
 
  “저런 건 어떻게 옮기나요?” 천 관장은 대답했다. “콘테이너와 트레일러로 옮기죠. 물건은 뭐든 옮길 수 있어요. 사람 마음만 못 옮기죠.” 

   순간 가슴이 뻐근해졌다. 그렇구나. 사람 마음만 못 옮기는구나.도대체 무게가 얼마나 되길래. 나이 들면서 수시로 다짐하게 되는 일들이 있다. 너그러워 져야지. 화내지 말아야지. 여유 있게 굴어야지.

  그러나 다짐 뿐, 실제론 작은 일에도 노여워지는 수가 많다. 컴퓨터나 휴대폰 사용법을 몰라 물으면 ‘해주겠다’면서도 귀찮은 듯 미루는 아이들을 볼 때는 물론 누군가 다소 소홀하게 대하는 듯할 때도 마찬가지다.부모라고, 나이 들었다고, 전에 무슨 일을 했었다고 대접 받으려 들지 말아야지 생각하면서도 섭섭하게 느껴질 때가 적지 않다.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동안 온갖 상념들이 머리 속을 맴돌았다. ‘나는 과연 어떤 마음으로 죽음을 맞게 될까. 관 속에 누워서도 누군가를 미워할까. 눈을 감는 순간까지 이승에서 못다한 일들에 대한 아쉬움과 누군가에 대한 원망을 지우지 못하는 건 아닐까.’

  답은 간단했다.남의 마음을 옮길 수 없다면 내 마음을 옮겨야지. 가슴 깊이 들러붙어 있는 앙금도 털어내고, 시간이 흘러도 없어지긴커녕 더 두꺼워지는 듯한 상처 딱지도 떼어내 마음의 무게를 줄여야지. 함께 사는 사람에게건 남에게건 “도대체 왜 그러냐”고 따지기 전에 “나는 왜 그러는지” 돌아보고 내 마음을 옮겨야지.

  쉽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애써볼 참이다. 혹시 아는가. 그러다 보면 남의 마음도 옮길 수 있을지.

      

늦깎이 훈장이 된 글쟁이. 내 인생의 꼭지점이 아직 남아 있겠거니 믿으며 매사 열심히 대드는 철 안든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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