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신사의 품격, 숙녀의 로망

어지간히 급했던 모양이다. 지상파 TV 주말 드라마가 한두 명도 아닌 네 명의 남자 주인공을 내세우다니. 그것도 넷 중 셋을 주연급으로. 장동건이 멀티 톱에 포함된 걸 보면 그 역시 세월의 굴레를 비껴가진 못하는 듯싶다. 김민종도 다르지 않다.

결과는 괜찮아 보인다. 일일, 월화, 수목, 주말 드라마 할 것 없이 10%도 어렵다는 마당에 24%가 넘는 시청률을 올렸으니까. 본방을 놓치면 재방을 찾아보는 건 물론 IPTV 등을 통해 지난 방송분을 몰아보는 사람까지 있다니(그것도 유료로) 진짜 대박이다.

SBS 주말드라마 ‘신사의 품격’(이하 신품) 얘기다. 극은 재미 있다. 남녀 네 쌍의 사랑 얘기니 특별히 새로울 게 없는데도 극중 나이와 실제 나이가 같거나 비슷한 배우들(남자 넷의 극중 나이는 마흔하나, 장동건은 1972년생) 덕인지 연기는 자연스럽고 대사는 실감난다.

도진(장동건)과 이수(김하늘), 태산(김수로)과 세라(윤세아)의 밀고 당기는 사랑은 물론 사별남 윤(김민종)과 열여덟살 연하 메아리(윤진이)의 안타까운 사랑도 흥미롭고, 작업의 귀재 정록(이종혁)과 연상녀 민숙(김정난) 부부의 끊어질 듯 질긴 사랑도 은근히 눈길을 끈다.

드라마가 뜨려면 몇 가지 요소가 필요한 법. 괜찮은 배우와 화려한 볼거리, 탄탄한 얼개와 기억에 남는 대사가 그것이다. ‘신품’엔 이런 요소들이 두루 담겼다. 배우는 말할 것도 없고 배경을 중상류 사회로 설정함으로써 자동차와 가구,의류,액세서리 등 온갖 눈요기거리를 제공한다. 간접광고(ppl) 모음드라마라는 지적에도 불구, 도진의 옷핀이 얼마짜리라는 등이 얘깃거리가 되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그러나 신품을 보게 하는 힘은 뭐니뭐니 해도 대사다. 추상적이거나 붕 떠있지 않고 ‘아, 그렇지’ 싶은 살가운 대사야말로 신품의 일등공신이다. 바람둥이 남편에게 잠들 때까지 등을 두드리라며 ‘내가 바라는 건 대단한 게 아니다. 그저 이렇게 옆에서 토닥거려주는 것’이란 민숙의 대사나, 구두를 선물하며 ‘나 만나러 올 때 신어달라. 날 좋은 날 예쁘게 차려입고’라는 도진의 대사는 사람의 마음을 적시는 건 결코 요란한 구호가 아님을 일깨운다.

드라마가 말하는 신사의 품격은 거창하지 않다. 상대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도진 & 윤), 상대의 태도와 행동에 관계없이 감싸안고 기다리는 여유와 너그러움(태산), 상대의 어려움을 말 없이 해결해주는 능력과 푸근함(도진&태산), 그리고 조용한 배려가 그것이다.

그건 바로 사사건건 밑지진 않을까 계산하느라 바쁜 이들 때문에 지친 수많은 여성들의 희망사항이다. 신사의 품격은 곧 숙녀의 로망이란 얘기다.

따뜻한 마음, 다그치지 않는 여유와 너그러움, 믿고 기댈 수 있게 만드는 능력과 푸근함을 지닌 사람. 이게 어디 숙녀의 로망에 그치는 것이랴. 남녀를 떠나 우리 모두 그립고 그리운 모습이다. 드라마는 허구요, 때로 황당하기까지 한 판타지에 지나지 않지만 그래도 뜰 땐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사람들의 간절한 희망사항을 담아낼 때가 바로 그 때다.

35년반의 언론인 생활 끝에 늦깎이 훈장이 된 글쟁이.
나이에 상관없이 지금이 화양연화요, 내 인생의 꼭지점이 아직 남아 있겠거니 믿으며 매사 열심히 대드는 철 안든 아줌마.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