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제일 낯선 나라들 중에 하나는 투르크메니스탄이다. 이름도 어려운 투르크메니스탄은 사실상 터키처럼 투르크족의 조상인 돌궐의 후손자이다. 각국 화폐를 수집한 필자가 투르크메니스탄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정서적인 유사성보다는 투르크메니스탄 화폐의 인물들 때문이다. 투르크메니스탄 중앙은행이 2009년에 발행한 신권에는 신화나 문학 속의 가공인물들의 사진이 실려있다. 제일 대표적인 예는 100마나트 앞면에 사진이 있는 오구즈 카간(Oghuz Khagan)이다. 오구즈 카간이 누군지를 설명하기 위해서 먼저 돌궐 시대로 돌아가야 된다.


출처 : 위키피디아

 

8세기 중순에 돌궐 카간국이 내부 봉기와 중국의 압박으로 멸망했다. 그 당시 돌궐 지역에 있던 일종의 부족이었던 오구즈 사람들이 오늘날 카자흐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이 위치한 곳에 오구즈얍구국(Oghuz Yabgu State)을 세웠다. 오구즈 사람들을 중국어로 오고사烏古斯, 영어로 오구즈 투르크(Oghuz Turks) 혹은 투르크멘(Turkmen)이라고 한다. 오구즈 카간은 역시 오구즈 사람들의 시조이며,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한국으로 예를 들자면 단군과 같은 인물이다.

오구즈 카간 신화에는 오구즈 카간이 어떻게 태어나고, 어떻게 나라를 세우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신화는 성서처럼 인류의 탄생까지 올라가는 것은 아니고, 단군 신화처럼 오직 오구즈 씨족이 어떻게 탄생 했는가에 관한 이야기만 나온다. 대다수 신화 속 인물들처럼 오구즈 카 간은 매우 일찍 말을 하고 무척 빠르게 성장한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인 카야 카간이 관례에 따라 자신에게 넘겨줘야 할 권력을 동생에게 물려주려고 하자 오구즈는 아버지를 일부러 소리가 나는 화살을 쏘아 살해했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이 이야기가 실제로 일어났던 한 사건과 매우 비슷하다는 점이다.

흉노의 왕인 두만 선우(頭曼 單于)는 전통대로라면 장남인 목돌 선우(冒頓 單于)를 왕세자로 정해야 하지만, 관습을 무시하고 중국계 후궁에게서 태어난 차남에게 뒤를 잇게 하려고 했다. 이를 알게 된 목돌 선우는 반란을 도모했고 아버지를 소리가 나는 화살로 살해했다. 이 흉노의 목돌 선우는 중국의 역사에도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목돌 선우의 일화와 오구즈 카간의 신화가 닮아있다 보니 투르크 역사학계에서는 이 두 인물이 같은 사람이 아닐까라는 의문을 계속 제기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모든 신화가 그 지역의 전설과 실제 이야기가 혼합되어 전해지는 것이니 이 정도 유사점은 가능한 것이 아닌가 싶다.


출처 : 위키피디아

 

투르크메니스탄 화폐에 사진이 있는 가공인물 이야기들 중 50마나트의 앞면에서 소개된 '데데 코르쿠트(Dede Korkut, 투르크멘어: Gorgut Ata)'를 잊으면 안 된다. ‘할아버지’는 터키 말로 ‘데데dede’, 투르크멘어로 ‘아타ata’이다. 따라서 데데 코르쿠트는 코르쿠트 할아버지라는 의미다. 데데 코르쿠트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제일 오래된 문서는 바티칸 도서관과 독일의 드레스덴 도서관에 있는데, 그 도서들은 15세기에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바티칸 도서관에 있는 《오구즈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여섯 가지 이야기가 들어가 있다. 드레스덴 도서관에 있는 《코르쿠트 할아버지의 책》에는 바티칸 버전에 있는 여섯 가지 이야기를 포함해 총 12가지 이야기가 담겨 있다. 데데 코르쿠트의 책을 보면, 대다수가 10세기쯤에 오구즈 사람들의 삶을 배경으로 하는 신화이면서도 실화 같은 이야기들이고, 시나 산문으로 쓰여 있다. 모든 이야기에는 코르쿠트 할아버지가 무조건 마지막에 나타나고, 그 이야기의 핵심 사건을 다시 요약하여 교훈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책들이 유럽에서 19세기에 발견되면서 처음 알려진 것이 아니고, 이미 중앙아시아 구비문학의 일부로 데데 코르쿠트 이야기들이 존재하고 있었는 점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할아버지는 누구인가. 역사 속에서는 전설들을 전해주고 교훈적인 이야기를 하고 다니는 데데 코르쿠트가 살았다는 공식적인 근거가 없다.  또 흥미로운 것은 이야기들을 보면 주로 10 세기에 일어나는 사건들 같은데, 일부에서는 5세기나 6세기의 시대적 배경도 있다. 또한 그 이야기들 속에서 데데 코르쿠트는 무슬림인지 샤만 교인지도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중적인 모습을 취한다. 일부 이야기에서 데데 코르쿠트의 설교를 들으면 이슬람 학자의 발언으로 들리지만, 나머지 일부는 샤만교 종교인의 말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투르크메니스탄의 일곱 가지 화폐 중 세 가지의 인물 인적사항은 애매모호하다. 실제로 살았던 사람인지, 아니면 가공인물인지 확실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데데 코르쿠트는 역대 투르크계 문화에서 공동체에게 올바른 길을 보여준 어르신을 상징하는 가설 인물인지, 아니면 오구즈 사람들의 신화들을 모아서 구비문학을 발전시킨 현인인지 오늘날에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현재 수많은 나라에 데데 코르쿠트의 무덤이라고 알려진 장소들이 있고, 지역 시민들이 그 장소들을 방문하기도 한다. 현재까지 이어지는 이런 관심들만 봐도 코르쿠트 할아버지가 진짜로 존재했던 사람이라면 얼마나 특별한 인물이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알파고 시나씨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2004년 한국으로 유학 온 알파고 시나씨는 충남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터키 지한(Cihan)통신사 한국특파원으로 활동했으며, 각국 화폐들에 대해서 강연을 하고 있다. (저서 : 누구를 기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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