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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 중심으로 본, 남아공의 변화

서구 열강의 대항해 시대 초반에는 미주를, 후반에는 아시아를 그다음에는 아프리카를 식민지화했다. 이 지역 중에서 제일 늦게 식민지를 벗어난 곳이 아프리카다. 아프리카 국가들의 대부분이 1960년대 이후가 되어서야 독립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들과 달리, 다른 운명을 걸어간 두 개의 국가가 있었다. 2차 대전과 함께 생긴 국제기구 유엔의 회원국 명단을 보면 그 답을 알 수 있는데, 하나는 라이베리아, 다른 하나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전신인 남아프리카연합이었다. 라이베리아는 서구 열강으로부터 독립한 것이 아니라, 미국계 흑인 이주민들이 세운 나라이며, 남아프리카연합은 서구 이민자들이 세운 국가였다.
라이베리아는 어디서 독립된 것이 아니고, 미국계 흑인 이주민들이 세운 나라다. 남아프리카 연합의 경우에는 서구 이민자들이 해방 시킨 것으로 아프리카에서 유럽계 백인들이 독립을 시켜 준 유일한 나라라고 할 수 있다.
1909년에 체결된 남아프리카 조약으로 1910년에 출범된 남아프리카연합은 오늘날의 캐나다나 호주처럼 영국 연방 왕국의 일부였으나, 1961년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이라는 국명으로 완전히 독립했다. 그렇다면 남아공이 왜 캐나다나 호주처럼 영국 연방 왕국을 떠난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남아공이 발행 첫 화폐의 앞면에 실린 인물의 삶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92년까지 모두 화폐에 얀 반 리베크의 사진이 있었다. (출처: banknote.ws)

남아공이 1961년에 독립하자마자, 자국의 화폐를 발행했고 모든 화폐의 앞면에는 얀 반 리베크(Jan Van Riebeeck)의 사진을 넣었다. 남부 아프리카에서 생긴 첫 유럽 식민지인 게이프 식민지의 첫 총독부를 지냈던 리베크는 남아공 백인들에게 있어 국부 같은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신기한 것은 영국에서 독립한 남아공 백인들의 국부인 리베크는 영국 출신이 아닌, 네덜란드 출신이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다시 말해 남부 아프리카에서 가장 먼저 식민지를 만든 나라는 영국이 아니고 네덜란드라는 것이다.
1800년대 초기까지 네덜란드 사람들이 남부 아프리카를 통치했지만, 영국계 이민자들의 수가 늘어나자 영국도 이곳에 식민지를 세웠다. 19세기 동안에는 네덜란드계 이주민들이 북쪽으로 밀리게 되자, 이 지역을 영국이 다스리게 되었다. 영국계와 네덜란드계 이민자들의 경쟁은 결국 전쟁으로 귀결되었다. 1차(1880년-1881년) 보어전쟁, 2차(1899년-1902년) 보어 전쟁(Boer War) 때에는 네덜란드계 이민자들의 패배로 끝나면서 남부 아프리카는 완전히 영국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남아프리카 연합에서 처음으로 정권이 만들어질 때는 영국계 이주민한테 있었지만, 민주주의적인 절차로 2차 대전 이후의 정권은 소위 보어 쪽 즉, 네덜란드계 주민들에게 넘어갔다. 특히 1948년 총선 때는 보어 쪽이 다수인 재통일 국민당(Reunited National)이 정권을 잡으면 영국과 관계가 악화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1960년대 실시된 국민투표로 공화국이 선포되고, 1961년 영국 연방 왕국을 탈퇴했다.
그 당시에 남아공이 영국을 비롯한 대다수의 서구 세계와 관계가 악화됐던 것은 아파르트헤이트 정책 때문이었다. 백인정권하에서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정책이었던 아파르트헤이트 때문에 월드컵이나 올림픽과 같은 수많은 국제 대회에 참가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이 언제 사라졌을까? 남아공의 모든 화폐에서 얀 반 리베크의 사진이 제거되니 90년대 초다.

1992년에 발행된 신권에 남아공의 5대 동물(Big Five)을 실었다. (출처: banknote.ws)

 

남아공 흑인들은 오래전부터 반아파르트헤이트 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정권이 백인들에게 있었고, 흑인들은 입법을 위한 권리가 없어서 반아파르트헤이트 운동이 중앙 정부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다만, 흑인들의 저항으로 남아공의 일부 지역들이 1975년 이후로부터 잇따라 독립했다. 남아공 흑인들에게 이 과정에서 정신적으로 큰 도움 주는 영웅이 있었는데, 바로 유명한 넬슨 만델라다.
반아파르트헤이트 운동에서 활동하고, 민족주의의 색채가 짙은 아프리카 민족회의(ANC)에 입당한 후, 50년대에 들어 의장은 맡은 만델라는 남아공 흑인들을 조직화 시켜, 큰 반란을 일으켰다. 남아공 정부는 그를 1962년에 체포했지만, 흑인들의 저항은 멈출 줄을 몰랐다. 국내외 압박에 오래 버티지 못하고, 결국 남아공은 1990년에 만델라를 석방했다.
만델라는 아프리카 민족회의 의장으로서 1991년 이후 정계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백인 정치인들과 협상하여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본격적으로 해체하려고 했으며, 이러한 과정에 전에 1975년을 전후로 독립했던 흑인계 공화국들이 다시 남아공과 통일했다.
1992년에서 1994년 사이 있던 정치적 사건들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남아공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시기는 남아공 시민들이 인종과 상관없이 서로 평등하다는 원칙으로 선거법을 비롯해 이와 관련된 모두 법들이 수정된 시기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수정된 것 중에 신기한 것 중 하나도 바로 화폐 디자인이었다. 1992년에 발행된 신권에는 ‘백인들의 국부 얀 반 리베크’가 없앤 후, 남아공의 5대 동물(Big Five)을 실었다.
1994년에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남아공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이 된 만델라는 취임 직후 바로 아파르트헤이트를 해체했다. 만델라는 재선하지 않았지만, 만델라 이후부터 남아공에서는 오로지 흑인들만 대선에 당선되고 있다.

신권 앞면에는 모두 만델라의 초상화가 실려 있다. 출처: banknote.ws)

2013년에 별세한 만델라를 기념하기 위해 남아공에서는 많은 정책이 펼쳐지고 있다. 예를 들어, 남아공에서 만델라의 동상이 세워지고, 그의 삶이 교육 과정에 포함됐다. 이 정책에서 필자의 관심을 끈 것 역시 화폐이다. 2012년에 발표된 신권 앞면에는 모두 만델라의 초상화가 실려 있다. 이것이 다시 말해, 남아공의 국부는 백인들의 국부로 칭송받던 얀 반 리베크가 아닌, 만델라라는 것을 증명한 것이나 다름없다.

2004년 한국으로 유학 온 알파고 시나씨는 충남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터키 지한(Cihan)통신사 한국특파원으로 활동했으며, 각국 화폐들에 대해서 강연을 하고 있다. (저서 : 누구를 기억할 것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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