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화폐로 바라 본 이슬람 여성

입력 2017-05-12 17:34 수정 2017-06-12 09:51
2014년 가을, 무슬림들에게 가장 중요한 축제 중 하나인 이드 알아드하(Eid al-Adha)를 취재하러 인도네시아의 서부에 위치한 아체 주(Aceh)에 갔다. 한 때 아체는 분리주의 운동 때문에 심각한 치안 문제가 있었다. 아체 사람들은 다른 인도네시아인들에 비해 강력한 종교적 색채를 지니고, 민족도 달랐기 때문에 자유 아체 운동(Free Aceh Movement)이라는 무장단체가 나타나 분리주의를 주장해 오랜 시간 중앙정부와 투쟁을 벌였었다.

필자는 아체에 가기 전, ‘테러 문제가 있어서 가난할 거고, 가난해서, 더러울 거다!’라는 편견이 있었다. 하지만 아체 주의 수도 반다 아체(Banda Aceh)에 도착하자마자 그 이미지는 바로 무너졌다. 더군다나 반다 아체가 2013년, 인도네시아에서 제일 잘 운영되는 깨끗한 도시로 뽑혔다는 것을 듣고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아체에는 분리주의 운동이 심하게 벌어지는 다른 지역과 매우 다른 분위기가 있었는데, 이 비결은 무엇일까 무척 궁금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아체의 위치

 

2004년, 인도양 지진 해일은 스리랑카, 몰디브, 인도,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아프리카의 소말리아까지 큰 피해를 입혔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재해를 입었던 나라는 인도네시아였다. 인도네시아에서도 제일 큰 피해 지역은 다름아닌 아체였다. 이 재앙이 아체에 한 가지 덕을 가져왔다면, 그때 일어난 대규모 홍수로 극단적인 세력이었던 자유 아체 운동 대원의 대다수가 죽어 지역 주민들이 중앙정부와 협상의 길을 택했다는 것이다. 자치권을 얻은 아체는 이러한 계기로 분리주의 운동을 끝낼 수 있었다.

사실 이 글을 통해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아체의 역사가 아니다. 바로 이슬람 여성주의다. 독자들이 아체 이야기를 하다가 뜬금없이 왠 이슬람 여성주의라고 놀랄지도 모른다.

이슬람교를 대표하는 세 명의 여성이 있다. 첫 번째는 카디자(Khadija)이다. 모함마드 사도의 첫 부인인 그는 큰 돈을 번 사업가로 전 재산을 남편의 종교를 위해서 바친 후, 가난에 허덕이다 이 세상을 떴다. 두 번째로는 아이샤(Aisha)이다. 카디자가 별세한지 5년 후 모함마드 사도와 결혼한 둘째 부인이다. 아이샤의 제일 큰 특징은 무함마드 사도의 언행록을 전달하며 초기 이슬람 학자들을 직접 키웠고, 이슬람 신학의 건립에 큰 공을 세웠다는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특징도 있었다. 모함마드 사도의 사망 이후에 이슬람 신앙들의 지도자로 부상하여 제1대 정통 칼리파가 된 아부 바크르(Abu Bakr)의 딸인 아이샤는 제4대 정통 칼리파 알리(Ali) 시절에는 반란군을 모의해 일종의 쿠데타를 시도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슬람교의 마지막 대표적인 여성은 파티마(Fatimah)이다. 모함마드 사도의 딸이었던 파티마는 알리의 부인이었다. 늘 기도하고 예배한 그는 성실하고, 헌신적인 이미지가 강했다. 이 세 명의 여성 중, 전통 이슬람 신학계는 파티마를 대표적이라고 강조해 왔다. 왜냐하면 이슬람의 경전인 코란에서 이름이 가장이 많이 언급된 여성은 예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이고, 성모 마리아의 모습과 제일 유사한 사람이 파티마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슬람 역사에서 여걸을 몇 명을 제외하면 카디자나 아이샤 같은 여성들을 찾기란 매우 어렵다. 그 여걸 중에 하나가 바로 인도네시아 화폐 천 루피아 앞면에 사진이 있는 주트 냐크 메우탸(Cut Nyak Meutia)이다.


1만 루피아 앞면 (출처: banknote.ws)

 

인도네시아 정부는 다양한 민족이 살고 있는 나라에서 사회 통합을 위해 여러 가지 정책을 펼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자국 화폐에 다양성을 담아내는 것이다. 각 지폐마다 앞면에 한 지역의 역사적인 영웅을, 뒷면에는 한 지역의 자연 경관지와 전통 춤을 소개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인도네시아 중앙 은행은 이슬람을 보수적으로 믿는 아체 사람들을 대표하는 영웅으로 여성인 주트 냐크 메우탸를 선택했다.

주트 냐크 메우탸의 삶을 보시면 그녀는 그야말로 여걸이었다. 그의 첫 남편이 독립 운동가였으며, 네덜란드군에게 사형당했다. 메우탸는 얼마 이후에 또 다른 독립 운동가와 결혼했지만, 두 번째 남편 역시 전쟁 중에 전사했다. 이 사건 이후, 메우탸는 남편의 병사들을 재편성하고 전쟁을 계속 벌여왔다. 직접 민병군을 지휘한 메우탸는 여성 장군으로써 1910년까지 네덜란드군을 골치 아프게 만들었다. 전쟁 중에 포로로 잡힐 위기에 처한 그녀는 칼로 저항하다가, 한 네덜란드 병사의 총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아체의 식민지 역사에는 메우탸 같은 용감한 여자 장군들이 있었다. 그리고 아체 술탄국에도 여술탄들이 정권을 잡은 시절도 있었다. 인도네시아 화폐를 통해 아체 역사를 공부하다 보니, 메우탸를 비롯한 아체 여자들이 현대의 이슬람식 여성주의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연구 대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파고 시나씨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2004년 한국으로 유학 온 알파고 시나씨는 충남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터키 지한(Cihan)통신사 한국특파원으로 활동했으며, 각국 화폐들에 대해서 강연을 하고 있다. (저서 : 누구를 기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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